‘자유분방’, ‘개척자’. 흔히 90년생을 정의하는 말이다. EO 김태용 대표야말로 이 키워드들을 압축해놓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인터뷰 당일 한파에도 돌돌돌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는 모습도 그랬지만, 그의 이력이 특히 그렇다. 27살,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할 무렵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실체를 보고자 실리콘밸리로 훌쩍 떠나 구글, 픽사 등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을 인터뷰했고, 그 영상이 올라간 유튜브 채널은 순식간에 구독자 10만명을 돌파했다.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그는 아예 자신을 ‘스타트업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명명하고, 미디어 기업 ‘EO’를 만들어 카카오, 토스 등 스타트업 대표들, 엔지니어, 투자자들을 만나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지의 세계 속 환상의 동물 같았던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떴다 졌다 요동치는 척박한 스타트업 세계에서 기술도 플랫폼도 아니고 왜 ‘인터뷰’를 업으로 삼았는지, 많은 스타트업 콘텐츠 중 유독 그의 것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하는 궁금증과 약간의 부러움을 안고 1990년생, 『나라경제』의 동년배 친구, 올해 30살의 김태용 대표를 만났다.
행적이 독특하다. 학창 시절엔 어떤 사람이었나?
순수미술을 좋아해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대학 입시가 다가오자 부모님이 디자인을 권하셔서 시작했는데, 심각하게 재미가 없었다. 입시 디자인 특성상 정답이 있고 속도가 중요했다. 3학년 때 그만두고 공부해 회계학과에 갔다. 참 신기한 게 마치 운명처럼 대학 입학 후 첫 시험 기간에 맹장염에 걸렸다. 전공에 애정도 없는 마당에 복구 불가한 성적을 받게 되니 자연스레 관심 있던 창업에 몰두하게 됐다. SNS가 떠오르던 2010년대 초 친구들과 예술가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올리고 전시 정보도 공유하는 커뮤니티였는데 수익 모델 중 하나였던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핸드폰 케이스 등에 프린팅해 파는 아이템이 대박 나 투자도 받았지만, 플랫폼 자체는 잘 안됐다. 그 후에도 가구, 콘텐츠 제작 등 창업을 시도했는데 미흡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인터뷰를 연재한 ‘리얼밸리’, 시작은 즉흥적이었다고?
당시 어머니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형을 만나러 가신다기에 따라갔다. 미국에 온 김에 어디 더 갈 곳 없을까? 하다가 창업가라면 한번쯤 가고 싶은, 기술 트렌드의 중심인 실리콘밸리에 가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을 만나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얼마나 뛰어난 사람들이 있기에 저렇게 엄청난 것들을 매달 만들어낼까 궁금하기도 했고 앞으로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마음먹자마자 간단한 자기소개 영상을 만들어 여러 곳에 돌리며 인터뷰 섭외를 했다.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패기에 공감해 만나주는 분이 의외로 많았다.
실리콘밸리에서 43일, 뭘 느꼈나?
국내에서 스타트업이 낯설었던 때부터 창업을 고민했으니까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없었다. 별종이 된 느낌? 주변에서도 “이제 그만해라”, “회사 경험부터 쌓아봐라”라는 말을 많이 해서 ‘그게 맞나…’ 싶던 찰나였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 갔더니 새로운 기술과 시장에 관심이 많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천지더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리얼밸리’ 이후 크리에이터를 업으로 삼았다.
처음엔 반응이 좋으니까 신나서 계속 영상을 만들었다. 기술과 혁신을 가까이서 다룬, 즉 현직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가 필요했음을 많이 느꼈다. 사실 나도 1년 차까지는 어느 정도 하다가 다른 아이템으로 창업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작업이 정말 재밌고 보람차서 나름대로는 약간 천직이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구독자 19만명,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인터뷰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창업가의 이야기를 잘 풀기는 쉽지 않다. 내가 창업을 해봤기 때문에 애로를 예측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스타트업을 다룬 기존의 매체에서는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스피커로 나섰다. 그분들보다 기획·편집 등에서 젊은 감각이 있기에 사랑받는 것 같다.
3년 동안 약 150명을 만났다. 섭외 기준이 궁금하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게 확고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보통 상장된 회사가 아니기에 보여줄 수 있는, 투자 유치 등 소기의 성과는 있어야 한다. 또 허무맹랑한 성공 신화가 아니라 우여곡절도 있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인터뷰이 모두가 말을 잘하진 않았을 텐데.
카메라 공포증이 있는 분도 있고 다양하다. 편집을 잘하려고 노력한다. 또 인터뷰 도중에 어려운 단어가 있거나 궁금증이 생기면 “모르겠다”고 바로 말하거나 그 자리에서 찾아본다. 내가 알아듣는 척 넘어가버리면 보는 사람은 더욱 이해를 못 할 테니까.
어떤 인터뷰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토스(toss)의 이승건 대표다. 언론에는 ‘치과의사 출신 스타트업 대표’라는 타이틀로 노출됐기에 전형적인 금수저 엄친아일 것 같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정말 많이 했더라. 그래서인지 토스의 미션과 대표님이 하나된 느낌이다. 현실에 치이면 ‘내 꿈이 뭐지?’ 생각하지 않게 되는데 대표님을 만날 때마다 생각해보게 된다.
수익은 어떻게 나는지?
아무래도 광고가 메인 수익이다. 근데 일반적인 제품 광고가 아니라 스타트업 PR 목적의 광고가 대부분이다. 스타트업은 인재에 목말라 있기에 자기네 기업 철학이나 문화를 콘텐츠로 제작해 알리고 싶어 한다. 또 최근에는 LG, 한화 같은 대기업에서 직원 교육용으로 우리 콘텐츠를 임대해가고 있다.
올해 만 서른이다.
일찍 일을 시작해 하루 열 몇 시간씩 앉아 있다 보니 몸이 많이 무너졌다. 서른이 되니 피부로 와닿는다(웃음). 이제 방향을 잡은 만큼 롱런하기 위해 체력을 정비하는 게 목표다. 그리고 20대엔 ‘끝내주는 회사를 만들 거야’ 같은 그럴듯한 좌우명을 만들거나 항상 ‘이런 사람이 될 거야’라고 ‘나’를 규정하는 것의 연속이었는데, 30대가 되니 그보단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O를 세운 지 1년이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혁신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 만큼 우리도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가 되고자 한다.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도 과제다. 지금 미디어 환경이 유튜브로 한두 명, 대여섯 명이 뭔가를 하긴 좋지만 거기서 규모를 키우긴 쉽지 않다. 기존 신문사, 방송사에서는 나름대로 검증된 법칙이 있었는데 아직 이 시장엔 안정적인 모델이 없다. 많은 신생 미디어와 함께 이를 찾아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