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몰입한 탓일까. 『나라경제』 동년배인 김연지 베브릿지(Be:Bridge) 대표를 만나자 실사판 〈이태원 클라쓰〉인가 싶었다. 사업으로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다는 김 대표는 액세서리 노점 아르바이트부터 창업에 도움이 될 만한 건 뭐든 했다. 성격도 딱 ‘박새로이’를 닮았다는 조현우 공동대표의 아이디어로 김 대표가 22살 때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외대 동아리방에서 시작해 지금은 세계음료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착한 프랜차이즈로 거듭났고 전 세계에서 가맹 문의가 들어온다. 인건비를 고려하면 사실 적자나 다름없던 매출은 지난해 19억원으로 뛰었고 가맹점은 19개가 됐다.
동아리방에서 커피를 판매했던 게 시작이었다던데.
창업동아리이다 보니 각자 창업의 꿈이 있었다. 여기서 해보면 사회에 나가 창업하더라도 뭐든 잘하지 않겠나 싶었다. 당시 동아리건물 1층에 정말 잘되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는데 거길 이겨보자 하고 ‘착한 커피’를 전략으로 삼아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 4~5잔밖에 안 팔렸다. 그것조차 부원들이 사 먹은 거였고. 그게 첫 실패였다.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외대생인만큼 ‘세계’음료에 착안했다. 버블티, 마차프라페 등 각국의 유명 음료 5가지로 시작했는데 하루 100잔씩 팔리며 매출이 20배로 뛰었다.
외대라서 가능했겠다 싶다.
아무래도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고 한국 학생들이 세계로 나가는 관문이니까. 지금도 외국인 고객 비중이 30~40%로 높은 편인데 당시에도 향수를 느끼던 외국 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오르차타를 마시고 “엄마가 해준 맛과 똑같다”며 울었던 멕시코 친구도 있었다. 그러다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을 연결해주는 언어교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음료 구매자에게 친구를 소개해주는 대신 해당 국가의 음료를 추천받는 식이었다. 그렇게 ‘한국인이 찾는 맛’과 ‘외국인이 그리워하는 맛’을 매칭해 메뉴를 개발하고 그들에게 맛을 보여준 뒤 수정을 거쳤다. 6개월 동안 200쌍을 연결시켜주면서 메뉴 개수도 늘어났다.
장사가 잘돼서 학교 밖으로 나왔다고.
처음엔 학교 안에 입점하고 싶었지만 허가가 안 났고, 학교 밖으로 나오려니 권리금이 너무 높았다. 가지고 있는 돈은 부모님께 빌린 2천만원. 그걸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원래 카페였던 매물을 찾다가 운 좋게 홍대 한 카페에 전전세 개념의 위탁운영으로 들어갔다. 10만원이던 하루 매출을 200만원까지 올렸다. 홍대에서 목표는 단 하나였다. 외대로 돌아올 수 있게 투자자를 찾는 것. 찾다 보니까 우리가 잘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우릴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더라. 바로 협력사인 물류업체 사장님이었다. 그분이 일부 투자하고 우리가 1년간 모은 돈을 합쳐 2015년 5월 외대 앞에 문을 열었다.
홍대 장사에서 많이 배웠겠다.
홍대는 ‘정글’이다. 온갖 프랜차이즈들이 플래그십 매장을 내는 곳이고, 모두가 테스트하려고 뛰어들다 보니 가게들이 정말 많이 바뀐다. 또 계절 변화에도 민감하다. 우리도 메뉴를 때에 맞춰 빨리 출시하고, 홍보물도 바로바로 내고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더라.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아니까 고객을 패스트 팔로잉해서 매출 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베브릿지의 차별점은 메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 손님 비율이 높지만 주 고객은 한국인이다. 그들이 세계를 체험하고 낯선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하면서도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한다. 더운 그 나라에서 먹을 땐 엄청 달아도 괜찮지만 우리나라에선 입에 안 맞을 수 있다. 음료 모양도 이국적으로 다가오면서 거부감 없도록 손본다. 꽉 찬 맛, 러프한 모양, 스트리트 감성을 최대한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 유행하기 전에 소개했던 메뉴들, 칭와좡나이(흑당버블티)나 망고빙수처럼 이미 갖고 있는 메뉴들을 언제, 누구에게 노출시킬지 계속 고민한다. 많게는 33개까지 선보이면서 시즌 메뉴로 로테이션해 더 많은 변화를 주려고 한다.
가맹사업을 착실히 준비한 걸로 안다.
2015년 외대직영점을 내고 재미있게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백화점 쪽에서 연락이 와 이듬해 현대시티아웃렛에 입점하게 됐다. 유명 버블티 브랜드 바로 뒤에 우리 매장이 있었는데 거길 꺾은 곳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가맹 문의도 많았다. 하지만 준비가 안 돼 있어 전부 고사했다. 그 전부터 프랜차이즈 생각이 있어서 운영 매뉴얼을 쌓아오고 있었지만 직영점을 늘렸더니 확실히 여러 지점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매뉴얼은 다르더라. 그때부터 서류, 체계, 노하우 등 가맹에 필요한 것들을 더 확실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준비되지 않았을 때 오픈하면 사고 난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정보공개서 내용부터 가맹계약서 등 서류까지 준비해놓고, 법적인 것까지 검토를 다 마친 다음 2년 만에 가맹사업에 첫발을 뗐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있겠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가맹점을 위해 2월엔 로열티를 전액 면제했다. 매장 매출이 잘 나오지 않는 시기인 만큼 배달에 신경 쓰고 있어 3월엔 배달료를 로열티 수준만큼 지원했다.
20대를 베브릿지와 함께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열심히 준비해 2017년 가맹사업을 처음 시작하려는 때 미투 브랜드가 나왔다. 우리보다 자본력 있는 기업이고 포털 사이트에 전면 광고를 띄웠더라. 그걸 보고 앞으로 잘해낼 수 있을까 하며 조 대표와 껴안고 울었다. 소주 한잔하며 털어냈는데 그때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아직 젊으니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오히려 우리가 시장성을 인정받은 거지. 그랬으니 비슷한 업체도 나오는 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아무것도 모르니까, 모르는 게 무기여서 “잘될 거다” 하고 막연한 믿음을 가지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그런 때였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프랜차이즈로서 가장 충실해야 하는 것, 바로 메뉴 개발에 힘써 더 맛있는 세계음료를 소개하려 한다. 또 원래 우리 꿈이 소셜벤처 창업이었던 만큼 가맹점과의 상생모델을 좀 더 단단하게 구축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그게 바로 소셜 프랜차이즈니까. 정말 장기적인 비전으로는 현재 세계 10여개국에서 창업(마스터 프랜차이즈)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10년간은 한국에서 잘 준비해서 200~300개 가맹점을 내고, 내실을 다진 뒤 세계로 도전하려 한다.
어떤 기분으로 서른을 맞았나.
10년간 달렸는데도 20대를 맞으며 상상했던, 정말 산 정상처럼 뾰족하게 높은 그 목표들의 중턱에도 못 갔다는 게 느껴질 때 암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서른을 데드라인으로 봐서 그렇게 조급했구나 싶더라. 막상 서른이 되니 내려놓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래서 서른이 또 다른 시작 같았다. 다시 0으로 세팅하니 20대 초반이 된 것처럼 어딘가 즐거웠다. 이제 진짜 사업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어 기뻤고, 그동안 해온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됐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웹툰 <이태원 클라쓰>를 공감하며 봤다. 우리도 그렇게 사업하고 싶다. 사실 프랜차이즈라는 것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친근하고, 더 유명하고, 쉽게 와닿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우리도 그렇게 생활 곳곳에 녹아들면 좋겠다. 소비자들이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