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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다문화·다민족 사회라는 사실 인정하고 마음의 문 열어야”
유해근 몽골울란바타르 문화진흥원장 2020년 06월호


한국과 몽골 교류의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활발한 교류의 흔적은 한국인이 즐겨먹는 소주와 설렁탕, 전통혼례식에서 신부가 양 볼에 찍는 연지 등 우리의 풍습과 음식, 어휘에 많이 녹아 있지만, 정작 오늘날 우리가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양국은 1990년 3월 26일 정식 국교를 맺었고, 올해로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30여년간 국내 몽골인들과 가까이 일해온 유해근 몽골울란바타르 문화진흥원장을 만나 양국 관계와 국내 거주 몽골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몽골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우선 몽골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몽골은 1921년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북한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교할 만큼 깊은 관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몽골 외교관 가운데 우리말을 잘하면 대부분 북한 근무 경험이 있는 거다. 몽골과 우리나라는 1990년에 수교했는데, 그전까지 우리 입장에서 몽골은 가볼 수 없는 나라였다. 지금은 작은 나라라고 무시당하고 있지만 사실은 남북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이 가능해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또 ‘투르크벨트’라 불리는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진출하는 데 교두보 역할도 할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부터 자원 개발을 비롯한 경제적 측면까지 몽골은 사실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이런 나라를 우리는 너무 모른다.

수교 이후 30년간 한·몽골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몽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개방정책을 펼치게 되면서 주변에서 진출할 수 있는 국가는 유럽 외에 사실상 우리나라밖에 없었다. 중국과는 역사적으로 관계가 안 좋고 일본은 틈새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1993년 이후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몽골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나라의 개발모델을 정치인들이 배우러 오고, 우리나라의 많은 지자체가 몽골의 지자체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몽골의 문화가 많이 녹아 있는 만큼 문화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몽골인들은 한국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몽골인들은 외모가 우리와 비슷하기도 하고, 어순이 같아 우리말을 빨리 배우기 때문에 외국인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가장 잘 적응하는 편이다. 체력이 좋아서 힘쓰는 노동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이삿짐센터는 몽골 사람들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할 정도다. 이들이 여기서 한 달 일해서 버는 돈은 몽골에서 1년 일해서 버는 돈과 맞먹는다.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로 들어와서 벌어가는 돈이 몽골경제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몽골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우리가 경제적으로 조금 잘산다는 이유로 몽골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몽골은 우리나라를 ‘솔롱고스(무지개가 뜨는 나라)’로 부를 만큼 우리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한국에 노동자 혹은 결혼이민자로 왔다가 한국인에 대해 가졌던 동경이 분노가 되는 경우를 봤다. 이 다문화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사회적으로 돼야 한다. “적을 만들지 말고 친구를 만들라”는 것이 징기스칸의 중요한 리더십 조건 중 하나였는데, 우리는 친구로 온 사람들을 오히려 적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목회활동을 해왔는데, 특별히 몽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92년 구로공단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했다가 1995년에 뚝섬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거기서 우연히 나를 찾아온 몽골 사람에게 도움을 준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몽골 현지 신문에 “한국에 가면 뚝섬역 1번 출구에 있는 유해근 목사를 만나라”는 광고가 실릴 정도였다. 그 인연으로 1999년과 2001년 몽골학교와 문화원을 각각 설립하게 됐고, 매년 몽골을 방문하고 있다.

재한몽골학교는 몽골 밖에 있는 유일한 몽골학교라고 들었다. 어떻게 설립하게 됐나.
이주노동자가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오는 국가는 몽골이 거의 유일하다. 원래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문화이고, 교육열이 매우 높다. 그런데 외국인이라 국내 학교는 다닐 수 없어서 몽골 이주민을 위한 학교 설립에 나서게 됐다. 1999년 당시에는 공부방 개념의 작은 규모로 운영했고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한국과 몽골 교육당국에서 인가를 받고 정식 학교가 됐다. 지금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300여명의 이주노동자·주재원·유학생 자녀가 다닌다.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한 비전이 있다면.
우리가 동북아를 넘어 세계적인 민족으로 자랄 수 있는 좋은 기지가 몽골에 있다. 우리나라의 자본과 기술, 몽골의 자원과 북한의 노동력을 잘 융합해 평화경제공동체를 만들고, 투르크벨트와 터키까지 새로운 실크로드의 개념으로 엮을 수 있다면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창간 30주년을 맞은 『나라경제』에 한마디 부탁드린다.
한·몽골 수교와 같은 해에 창간했다니 아주 좋은 인연이다(웃음). KDI에서 발간하는 매체로서 신뢰성이 있고 기여할 영역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다문화·다민족 사회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나라경제』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아내는 잡지로서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이지연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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