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자와 SNS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전 세계 인구 중 3억6천만명은 그 당연한 일상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2016년 세계 최초의 점자 스마트워치 ‘닷워치’가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스티비 원더와 안드레아 보첼리가 선택한 제품으로도 유명한 닷워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와 연동해 정보를 점자로 구현함으로써 시각장애인들도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주목할 점은 이 기기를 만든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작은 스타트업 ‘닷’이라는 것이다. 올해 4월 군 전역 후 회사로 복귀한 서른 살 청년 김주윤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디바이스를 만들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유학할 때 창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앞서 두 번의 창업을 거쳐 세 번째 창업으로 이사하는 사람과 유휴트럭을 연결해주는 ‘웨건’이라는 서비스를 론칭했는데 이삿짐 분야에 열정이 없다 보니 힘들더라. 당시 밤새 개발하고 아침에는 수업 듣고 일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 힘들어 쉬고 싶어진 그때 후배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며 기도라도 해보라고 권유해 교회에 가게 됐다. 거기에서 일반 성경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점자성경을 접했다. 우리가 보는 1권의 성경이 점자책으로는 20권이 넘는 분량이더라. “이게 왜 이렇게 돼 있지?”라는 질문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닷을 시작하게 됐다.
워낙 기술이 발달해 점자 스마트 디바이스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모두 콘셉트로만 나와 있는 실정이었다. 사실 지금도 이런 점자 스마트 디바이스 제작에 성공한 사례가 우리 말고는 없다. 300만~500만원 정도하는 기존의 점자단말기도 글만 읽을 수 있는 수준인데, 여기에 그래픽까지 구현하게 되면 너무 비싸진다. 그래서 연구 끝에 기존 점자단말기보다 90% 이상 작고 가벼우면서 그래픽까지 구현할 수 있게 했다. 2016년 첫 제품인 닷워치를 30만원의 가격으로 출시했고, 그 기술을 활용해 인도, 케냐 등 저개발국가에서 교육용으로 쓸 수 있는 ‘닷미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주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래픽까지 구현 가능한 ‘닷패드’의 론칭을 앞두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인데 상용화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마케팅 논리가 통하지 않는 시장이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화제가 돼도 시각장애인들은 직접 만져보고 경험해보기 전에는 제품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주로 그 가족이 산다. 꾸준히 판매되고 있지만 우리가 기대한 만큼 폭발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올해부터 월마트를 통해 미국 전역에서 판매할 계획인데, 월마트와 협약을 맺기 직전 코로나19가 발생해 지금은 잠시 중단된 상황이다. 2014년 KBS 창업오디션 프로그램 <황금의 펜타곤>(이하 <펜타곤>)에 나갔을 때 심사위원이었던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너무 급하게 하려는 것 같다. 방향은 맞는 것 같으니 천천히 가라.”고 하더라.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진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이후로 5년이 됐으니까.
현재까지 얼마나 판매됐나?
닷워치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체코어, 프랑스어 등 11개 언어로 20개국에 20억원어치가 판매됐다. 패드 같은 경우는 아직 정식 론칭은 안 했지만 프랑스 회사와 협업해 북미 특수교육청 쪽에 약 120억원 규모의 공급계약이 된 상태다. 지난해 북미의 한 콘퍼런스에서 패드를 선보였을 때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고, 구글과는 닷패드 관련 소프트웨어 쪽으로 협업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유명하다 보니 코로나19의 영향이 크겠다.
코로나19로 의도치 않게 전 직원이 국내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부산시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서면역에 닷패드가 적용된 키오스크를 설치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길 안내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를 잘 해내면 부산 전역을 무장애도시로 만드는 사업을 하게 된다. 또한 최근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박물관 관람시스템이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사업으로 선정돼 박물관의 작품 형상을 점자로 보여주는 작업도 하게 됐다. 그간 닷워치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공공인프라에 존재하는 차별을 풀어내는 기업이 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왔고 아부다비, 두바이, 오만 등 관련 니즈가 있는 곳에서는 시연을 원하기도 했지만 실제 구현된 것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도시 단위 사업이 나오면 향후 한국의 스마트시티 모델로도 수출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오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펜타곤>에서 우승했을 때다. 펜타곤 시즌1 우승자인 이정수 플리토 대표를 한 창업경진대회에서 만났는데, 이 대표가 그날이 <펜타곤> 시즌2 신청마감일이라고 알려줘 지원을 하게 됐다. 마감일에 그렇게 신청한 게 서류심사와 대면평가를 거쳐 본선까지 올라가게 됐다. 그런데 TV 방송이라 제품이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때는 우리에게 제품이 없었다. 제작진의 배려로 10주 프로그램 중 8주 차에 출연하기로 하고 기술 담당인 성기광 공동대표와 밤을 새서 제품을 만들어 방송에 나갔다. 그렇게 8주 차부터 출연해 준결승과 결승까지 거치는 3주 동안 극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때가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뭔가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정받는 계기가 돼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누구보다 숨 가쁜 20대를 보냈는데.
20대를 돌아보면 힘들었던 기억이라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물론 그 시간을 통해 성장했지만 회사 식구들에 대한 책임감이나 여기까지 오면서 단계별로 느꼈던 압박감도 무척 컸다.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후회는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30대를 맞아서도 똑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테니깐.
앞으로의 인생 계획이 궁금하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생기는 ‘갭’과 관련된 창업을 하다 보니 그런 차별 같은 게 많이 보이더라. 환경적인 부분이나 인류가 발전하면서 생기는 문제점, 혹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들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그런 분야에 대한 창업을 계속 할 거다. 그렇게 연쇄 창업가가 되는 게 목표다. 닷을 상장시키거나 엑싯(exit)하게 되면 또 다른 창업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일단 닷을 잘 키워야겠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