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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머무르지 않은 30년, 변신은 계속됩니다”
신경숙 초방 대표 2020년 09월호

 

『나라경제』 창간호가 나온 1990년 12월, 이화여대 후문 주택가 골목에 ‘초방’이 문을 열었다. 서점 하면 종합서점이 대부분이고 대학가엔 사회과학 서점이 건재했던 시절, 초방은 국내 최초의 어린이 전문서점으로 출발했다. 이후 온라인서점의 등장과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의 확장, 향토서점의 잇단 폐업, 지금의 동네책방 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센 변화의 물살을 헤치고 ‘서른’을 맞았다. 초방을 “공간이자 생각의 주체,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기며 꾸려왔다는 신경숙 대표를 서면으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초방은 코로나19로 현재 임시휴업 중이다.

당시로선 드물게 어린이책방으로 시작했는데.
학창 시절부터 대학생을 위한 인문·문학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다. 그러다 두 딸의 엄마가 된 후 미국으로 가 2년간 생활하며 그림책이라는 세계를 만났고, 그 경험이 ‘어린이와 함께 누리는 책방’으로 꿈의 방향을 바꿨다. 대학생들은 학교 서점, 대형 서점도 있고 학교 도서관도 곳곳에 있는데 어린이를 위한 서점은 거의 없다는 게 동기가 됐다. 기존 책방과는 다른 분위기 때문에 처음엔 손님들이 “여긴 뭐하는 곳이에요?”라고 묻기 일쑤였다. 그러다 전문서점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비슷한 꿈을 가진 분들의 호응으로 초방 이후 전국에 100여 개 어린이책방이 생겨나면서 노력에 비해 크게 칭찬받은 느낌이다.

책방으로 머무르지 않고 변신해온 걸로 안다.
30년간 선택의 길목마다 내가 바라는 방향 중에서 가장 가능한 방식으로 역할과 모양을 바꿔가며 지금까지 왔다. 책방이면서 전시장으로, 갤러리 카페로, 워크숍 연구실로, 작가공동체와 작은 교실로, 출판사 작업실로 실험을 거듭했다. 특히 2003년 공간을 넓히면서 책방 성격을 많이 바꿨다. 출판도 시작했고, 그림책 문화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전시공간을 만들고 ‘그림책 정원’이라는 별호를 부여했다. 씨앗을 심어 그림책을 키워내는 사람, 그림책을 알아보고 즐기는 사람, 우연으로라도 그림책을 만나게 되는 사람, 그 모든 삶이 어우러진 공간이 되길 바랐다. 또 여러 방식의 작가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다양한 작가의 활동공간으로 기능하고자 했다. 작가들이 맺는 열매가 다양할수록 그것을 선택하며 향유하는 사람들의 삶도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출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림책 기획자로만 있고 싶었는데 처음 몇 권 이후로는 초방 기획 작품을 출판하려는 출판사를 찾지 못해 독립출판을 시작하게 됐다. 책을 소개하는 형식 중에 책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강력한 권유의 방식이다. 그림책을 통해 ‘이런 세상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주체이고 싶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아름다움과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목표를 두고 “같은 검은색이라도 그 출판사의 검정은 다르면서 멋져”라는 평을 목표로 섬세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초방의 책은 한국적인 미감으로 유명한데, 독자 반응은?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소수의 독자는 매우 좋아하지만 대체로는 그림책의 논리에서 벗어났다고 보는 듯하다. 또 어른 취향의 책으로 평가하는 분도 많다. 그래서인지 어린이 독자들이 『지하철은 달려온다』를 들고 지하철 여행을 했다거나, 『도산서원』을 읽고 해당 장소를 방문하고, 글 없는 숫자 그림책인 『한조각 두조각 세조각』에 글을 지었다는 등의 리뷰를 보면서 어린이를 위한 기획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 감동과 보람을 느끼곤 했다.

대표님을 이야기할 때 2005년 한국인 최초의 볼로냐국제 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 심사위원, 2004년 최초의 라가치상 수상(『지하철은 달려온다』)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그림책의 위상은 어땠나?
1991년부터 20여 년간 볼로냐를 오가면서 처음엔 해적판이 많은 경계 대상이었다가 도서전 주빈국으로 초대받으며 그 분야의 일원이 돼가는 모습까지 함께했다. 2009년 주빈국 행사 이후로는 다양한 그림책 상의 수상자를 배출하는 나라가 됐다. 심사위원을 했던 당시를 떠올려보면 ‘한국인의 미감과 솜씨는 어디서 왔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때였다. 그들이 아는 한국은 해적판이 많은 나라이고 그제야 정식으로 저작권을 허겁지겁 사들이는 소위 ‘가벼운’ 존재였는데 한국 그림책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접하며 호기심을 갖게 된 거다.

그림책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세상의 모든 것은 의미가 있고 어떤 공통점으로 연결돼 있다’라는 신념이 아이디어이자 영감의 기초다. 우선 대상을 정한 뒤 집중할 요소를 찾아가는 ‘자세히 보기’와 ‘다르게 보기’도 영감에 도움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만큼 보인다’는 신념으로 같은 대상을 자세히 볼 때 다른 것이 보이고 창작의 기초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장에서 지켜본 한국 그림책시장의 변화는?
그림책은 크게 세 가지 군으로 나눌 수 있다. 성장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어린 시절에만 보고 더 이상 찾지 않는 그림책, 어린 시절에 만났지만 평생을 간직하고 싶고 기억하는 그림책, 소수의 사람들, 특히 어른들이 선호하는 그림책이 그것이다. 외국에서 신기해 할 만큼 한국에서 그림책이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계기가 바로 두 번째 군에 속하는 그림책들이 대량으로 수입·출판되면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약 5년간 외국 저작권을 경쟁적으로 수입했기에 한국 에이전트를 여럿 모아놓고 저작권료를 입찰에 부치는 볼썽사나운 일도 있었다. 시장 규모로는 첫 번째 군이 아직도 어마어마하지만 교육열, 유치원 등의 기관 수요로 이뤄진 반면 두 번째 군의 성장은 어른인 나를 위해 기꺼이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그 취향을 짐작한 창작공동체(작가, 기획자, 출판사 등)가 열정적으로 호응해 이뤄진 것이 지금의 우리 그림책시장이다.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논픽션 소재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의 더욱 다양한 존재가 아름다운 그림책 형식으로 나타나길 바란다. 각자의 위치(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물, 인물, 역사 등의 다채로운 소재와 각각의 소재에 어울리는 표현 방식, 즉 그림만큼이나 다양한 그림책 문체의 출현을 기대한다.

언제 다시 문을 열 계획인가?
코로나19로 쉬게 된 것이 장기휴가로는 세 번째다. 1997년, 2009년 두 번 모두 폐업을 고려하다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열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리 생각 중이다. 일주일에 두 번 여는 책방으로 이어가면서 100% 예약제로 운영하거나, 오프라인으로는 열지 않고 SNS나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해 그림책을 전시하고 소개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가상현실의 초방을 구현해보고 싶기도 하다.

동갑내기 『나라경제』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규모가 작거나 수익성이 낮은 비영리조직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무엇보다 마을공동체가 무르익어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공유해주면 좋겠다. ‘경제(economy)’의 어원이라고 하는 ‘집안살림(oikonomia)’의 주체가 우리 경제의 바탕임을 널리 알려주길 바란다.

 
양은주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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