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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1990년생 우리들은 ‘나’다운 서른을 살고 있습니다”
김종헌, 신정아, 이나경, 최용훈 2020년 12월호

 


올해로 서른 살을 맞게 된 『나라경제』 동년배인 1990년생 실제 친구들이 저녁에 모여 ‘서른’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취업, 진로, 결혼, 미래 등 많은 것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나이인 서른 살. 가치관, 직업관, 소비관, 결혼관, 서른의 의미 등 각자 고민하고 있는 것을 다른 서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공유해보는 자리였다. 서른을 앞두고 있거나 겪고 있는, 이미 겪은 독자들과도 이 자리를 통해 우리들의 고민과 생각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때: 2020년 11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장소: 공유공간 모멘토스(서울 마포구)
참석자: 신정아(『나라경제』 기자/나), 김종헌(직장인/나의 대학원 동기), 이나경(직장인/나의 인턴 동기), 최용훈(직장인/종헌이의 친구)
* 이 모임은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습니다.



나의 가치관
신정아 첫 번째 질문은 ‘행복’이다. 이것은 다른 친구가 요청한 질문인데, 다른 서른 살들의 행복이 궁금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취업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는데 막상 취업이 되고 나니까 행복하지 않았다고. 친구는 어쩌면 사회적 안정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다들 언제 행복한가? 

김종헌 나는 ‘발견’할 때 행복하다. 과거에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해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해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행복하다. 

신정아 그렇지만 발견의 결과가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김종헌 맞다. 발견의 결과가 무조건 다 행복하지는 않지만 ‘아, 나는 이런 걸 안 좋아하는구나. 그럼 다음엔 안 하면 돼.’라는 것을 또 ‘발견’한다. 그것도 행복인 거다.

이나경 ‘행복’이라는 단어에서 조금 슬퍼졌다.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고 도움이 될 때 행복함을 느낀다. 직장에서도 내가 이것을 해야지 다른 사람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집에 가지 못하고 늦은 저녁까지 일을 붙잡고 있는 거고(모두 웃음).

최용훈 반대로 나에게 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도구’고,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기 위한 ‘수단’이다. 요즘에 MBTI검사(성격유형검사) 많이 하지 않나. 난 ‘사교적인 외교관(ESFJ)’이 나왔다. 내가 그 유형이 맞는 게,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는 행복이 가장 크다. 공감대를 갖고 생각 등을 공유하는 것. 그래서 회식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와의 교류로 시너지 효과가 커지기도 하니까.


나의 직업관
신정아 직업관에 대해 물어보려던 참인데 용훈이가 화두를 잘 던져줬다. 다들 『90년생이 온다』 읽어봤나? 책에서는 90년생 직장인이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 단체보다는 개인주의, 불필요한 형식보다는 실용적인 업무 스타일을 추구하며, 일터가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을 경우 이직을 고려하는 것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 인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책 속 90년생들과 같은 인물일까? 각자의 경험과 생각은 어떤가?

최용훈 그 90년생의 속성과는 대부분 일치한다고 본다. 회사에는 상하관계가 존재하지만 회사의 일원인 내 의견도 존중받을 수 있는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한다. 그리고 주변에도 가치관이 안 맞으면 이직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나도 이직을 한 번 했으니까. 그런데 무작정 이직한다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이직할 필요가 없는’ 안정적인 일터를 찾는 거다.

김종헌 내 직업관은 내 성향에 맞는 일이면 난 오케이! 그리고 일은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야 당당하게 워라밸을 요구할 수 있으니까. 회사와 나는 계약관계니까 지켜야 할 사항은 반드시 지키고, 내 역량을 발휘해 회사에 최대한 많은 수익을 가져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워라밸을 깨면서까지 투자해야 한다? 그건 선택이라고 본다. 나도 회식이 싫지 않다. 다만 회식이라는 게 정례화된 ‘일’이 되면 곤란하다. 내 라이프를 즐겨야 할 시간에 워크가 침입하는 거니까.

이나경 야근에서도 윗세대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엔 업무가 많든 적든 정해진 근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오래 앉아 있는 것, 즉 야근하는 것에 대한 ‘미덕’을 높게 샀던 것 같다. 물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은데 집에 가버리면 그건 진짜 문제가 되지만.

신정아 우리 사회는 많은 일을 오랫동안 수행하는 사람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반대로 퇴근 시간에도 계속 일하는 동료를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더라. 심지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떠도는 말 중에 프랑스에 이민 간 한국인이 습관적으로 야근을 하려니까 동료가 ‘우리 노동자들이 힘들게 싸워서 쟁취한 권리를 훼손하지 말라’고 했다고. 이런 일화만 들어도 외국과 우리가 바라보는 야근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 같다.


나의 소비관
신정아 우리 넷 다 직장인이네. 예전보다 소득이 늘어나니까 소비의 폭도 커진다. 이제는 지금을 위한 소비를 해야 할지 미래를 대비한 소비(저축)를 해야 할지 그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다. 다들 어떤가?

김종헌 예전에는 소비의 목적물이 되는 게 ‘빵’이나 ‘책’ 같은 명사였다면, 이제는 동사다. 빵을 먹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거고 꼭 그걸 내가 가져야 할 필요도 없는 거다. 그리고 소득 수준이 예전보다 높아지니까 소비를 하는 데 주저하게 되는 장벽이 훨씬 낮아졌다. 우리 세대가 유독 소득 대비 소비 비중이 높은 경향을 보이는 건 아마도 소비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최용훈 완전 공감했다. 바로 그거다(모두 웃음)! 그런데 소득 안에서 소비와 저축으로 나누는 것이지 않나. 현재를 위한 소비와 미래를 위한 저축은 같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대학 동기 모임에 갔다. 얘기 주제가 재테크, 투자, 부동산, 집값… 이런 것만 나오더라. 친구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런 주제들에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 집은 미래에 생길 아이를 위해 준비해야 할 필수사항이 됐다. 나는 전세 살면서 이런 집도 살아보고 저런 집도 살아보고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가족을 생각하니까 미래를 대비하는 소비가 중요해지고 있다.

김종헌 나도 집은 전세든 월세든 내가 살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된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아껴서 그것으로 더 많은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와 동시에 친구들에게 맥주 한잔 기분 좋게 사는 소비도 즐기는데 그것까지 포기하면서 집을 사기 위해, 투자하기 위해 목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결혼관
신정아 과거에 결혼과 출산은 인생에서 반드시 밟아야 하는 수순 중 하나로 여겼던 것 같다. 내 나이쯤 부모님이 결혼했고, 나를 낳으셨다. 아직 내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데 결혼에 출산이라니, 상상하기가 어렵다. 다들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를 봤는가? 거기서 서른 살의 미혼 여성인 삼순이는 ‘노처녀’ 취급을 받고, 그녀도 자신의 상태에 초조함을 느낀다. 아무래도 그땐 사회에 일찍 나가니까 결혼도 빨리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어서 그런 듯한데. 지금은 다르다. 결혼을 비롯한 출산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지 않나?

김종헌 취업이 확정되던 날 저녁에 부모님과 밥을 먹으면서 ‘저 결혼 안 할 거예요’라고 선언했다. 왜냐하면 취업의 다음 단계가 결혼이라는 어른들의 의견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가정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흔히 말하는 ‘화목한 가정의 첫째로 태어나’의 첫째다. 부모님께 받았던 행복한 경험과 애정을 내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결혼인데 ‘당연히 밟아야 하는 인생의 단계’로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다.

이나경 서른이 되니 모두 나에게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됐다’라고 정해주더라. 결혼에 대해 딱히 생각이 없던 터라 부담스러웠다. 주변을 둘러보니까 내 친구들은 ‘결혼할 나이’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을 하고 있더라. 누구에게나 그 시점이 다를 수 있는데 강요하는 것, 나는 나대로 행복한 게 많은데도 혼자인 것에 대해 무례한 질문들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겪어야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용훈이는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해졌다.

최용훈 이 질문을 진짜 많이 들었는데. 나이가 돼서, 할 때가 돼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하나가 돼서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싶어서 한 거다. 결혼을 언제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개인마다 다른 거니까. 그리고 결혼을 안 할 거라고 하는 사람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은 ‘목적’을 가지고서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해보니까 그렇다(웃음).

김종헌 이것은 연애관이랑도 비슷하지 않나. 연애도 결혼도 목적을 갖고서 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요즘 우리가 받아들이는 연애의 결말은 결혼이 아니다. 연애와 결혼이 당연한 인과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

신정아 독일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는데, 크리스마스에 아주머니의 언니네 가족이 왔다. 그때 아주머니의 언니는 나에게 함께 온 가족을 가리키며 “여기는 내 아들 크리스티안, 여기는 내 파트너 페터”라고 소개했다. 아이도 ‘엄마, 아빠’라고 불렀고 그들은 누가 봐도 평범한 ‘가족’이지만 다른 점이라고는 부모가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가 아닌 것뿐. 그 또한 가족의 형태 중 하나라는 걸 그때 배웠다.


나의 서른에 관해
신정아 삶은 연속적이고 선형적이다. 그런데 20대와 30대는 ‘단절된’ 느낌이 든다. 무엇이든 시도해도 좋고, 놀아도 좋은 나이가 20대라면 30대부터는 ‘갑자기 어른’이 되는 거다. 스물아홉 살에서 서른 살이 됐을 뿐이고, 달라진 것은 나이뿐인데. 왜 다들 ‘서른 살’을 강조할까? 나와 같은 의문 또는 경험을 겪어봤나?

최용훈 이것은 어른들이 겪어본 인생의 타임라인에 의해 만들어진 서른 살 프레임이라 생각한다. 소득이 생기는 시점부터 정년퇴직할 때까지를 두고 보니 ‘서른 살’이 그 시작점이 된 거다. 그래서 ‘이 때 소득이 줄어드니까 저 때 돈을 좀 모으고, 이 때부터는 일해야 하니까 저 때까지는 좀 놀면서 즐겨라’ 이런 말들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인생 타임라인이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흐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모범적인 삶을 내 삶에 ‘복붙’하지 않고 각자의 선택에 따른 삶을 살고 있지 않나.

김종헌 왜 하필 ‘서른 살’일까 생각해봤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없었더라면, 계란 한 판이 서른 알이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우리가 압박을 덜 받았을까?

최용훈 요즘엔 한 판에 마흔 알도 있다던데(모두 웃음).

이나경 외국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거기서는 나이를 따로 밝히지 않는다. 하루는 나랑 팀프로젝트와 봉사활동을 함께 하던 친구가 95년생이라더라. 그렇다고 그 친구가 갑자기 어려 보이진 않았다. 그 친구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나이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정의하는 건 어렵다고 본다.

김종헌 사실 법적으로는 만 19세부터 어른인 건데, 사회적으로는 만 서른 살이 돼야만 비로소 어른으로 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문제는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웃음).

신정아 우린 모두 어른이 될 준비가 안 됐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부모님이라는 인생 선배가 있지 않은가. 부모님께 부모님의 서른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김종헌 우리 엄마는 당시에 자신이 서른 살이고 뭐고 간에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주6일 근무에 육아까지 해야 하는,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키워내느라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셨다는 거다.

최용훈 그 당시에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셨을 거다. 우리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이셨을 텐데. 유튜브에 옛날 뉴스 영상을 찾아보면 ‘최용훈(30세)’인데 ‘뭐야, 40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 성숙한 청년이 인터뷰를 한다. 우리는 그에 비해 너무 어린 것 같다.

김종헌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그때의 부모님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기가 굉장히 빨랐다. 우리 부모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셨다. 난 스물여덟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까, 부모님과 8년이라는 차이가 있다. 당시의 서른과 지금의 서른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오히려 부모님에겐 서른 살보다 스무 살이 더 고민이 많은 시기였을 것 같다.


신정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가 나온 시점인 1994년의 중위연령은 28.8세였고 2020년의 중위연령은 43.7세니까 그때의 서른의 무게와 고민이 노래에 잘 반영된 것 같다. 그렇다면 2020년의 서른을 보여줄 수 있는 노래가 있을까? 나는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꼽고 싶다. 노래 가사가 꼭 지금의 나와 우리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

최용훈  난 방탄소년단의 ‘Dynamite’를 꼽고 싶다. 뮤직비디오에서 다양한 색깔을 강조해서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노래 가사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우리 서른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김종헌 나는 개리의 ‘또 하루’라는 노래를 픽(pick)했다. 가사 중에 ‘우린 성공해야 해? 아니, 행복해야 해.’ 이 부분이 가장 좋다. 우린 열심히 살고 있지만 항상 그 결과가 좋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시행착오를 겪을 때 내 주위에 그걸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행복하다.

이나경 좀 웃기긴 한데, 나랑 정아가 우울할 때마다 듣는 노래가 있다. 진주의 ‘난 괜찮아’(모두 웃음).

최용훈  그 노래 원곡 제목이 ‘I will survive’지 않나. 그 제목도 멋진 것 같다.

이나경 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으로, 사회에 나왔을 때는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열심히 했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나는 다시 힘을 내야 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럴 때 ‘난 괜찮아!’를 외쳐야 하니까(웃음). 


진행·정리 신정아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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