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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악의적으로 창의적인 사회를 막으려면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2022년 02월호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제 2년을 넘기고 있다. 혹자는 세기의 구분을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설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우리 삶의 수많은 곳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혼돈과 불안은 이제 일상화됐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사회 구성원들 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변수의 격차다. 소득, 학업 및 취업의 기회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상하위 계층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격차를 줄이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심리학자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그것은 격차 확대가 사회를 더 위험하고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사회가 더욱 악의적으로 창의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과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협동과 공존을 거부하고 약자들을 배신하면 악의적으로 창의적인 시대가 온다

학창시절이나 군생활을 할 때도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본 적이 있다. 이른바 나쁜 짓을 할 때만 머리가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듣는 자들 말이다. 세계적인 창의성 전문가인 제임스 카우프만(James Kaufman)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는 이처럼 나쁜 일이나 파괴적인 일에 사용되는 창의력을 ‘악의적 창의성(malevolent creativity)’이라고 이름 붙였다. 참으로 당혹스러운 두 단어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폐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코로나19 확진 현황 사이트를 위장한 스미싱 사이트는 이제 흔하게 볼 수 있고,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를 사용한 사기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굳이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신문 사회면만 봐도 정말 어이 없는 방법으로 사회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행태들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악의적으로 기발해지는 것일까? 이를 매우 절묘하게 보여준 연구 결과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심리학자 마타이스 바스(Matthijs Baas) 교수 연구진에 의해 최근에 발표됐다.1) 연구진은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신경과학 연구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연구 재료인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약간의 변형을 줘서 사람들에게 부여했다. 

일단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이 게임은 두 명이 짝을 지어서 진행한다. 실험 참여자는 상대방에게 협력하거나 협력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같은 옵션을 갖게 된다. 둘 다 협력할 경우에는 보상을 획득할 수 있고, 둘 다 협력하지 않을 경우에는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한 쪽은 협력하고 한 쪽은 협력하지 않을 경우에는 협력하지 않은 쪽은 보상을, 협력한 쪽은 처벌을 받게 되는 구조다. 이 게임에 연구진은 약간의 변형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매우 절묘하다. 바로 나 자신은 협력했지만 상대방이 나를 배신한 경우 내가 입는 피해의 양을 기존보다 더 크게 한 것이다. 이를 연구진은 ‘높은 사회적 위협 조건’으로 불렀다. 그 피해를 오히려 기존 게임에서보다 줄인 경우도 있다. 즉 배신을 당해도 피해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이며 이는 ‘낮은 사회적 위협 조건’이다. 

어떤 조건의 게임이든 그 게임을 수차례 수행한 참가자들에게 게임과는 전혀 무관한 과제가 부여된다. 예를 들자면, ‘하나의 벽돌로 할 수 있는 독특한 일을 모두 나열하라’는 식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대답에 주어진 시간은 3분이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사회적 조건이 달라짐에 따라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높은 사회적 위협 조건에 있던 사람들의 경우 그 이후 그와는 전혀 무관한 벽돌 용도 과제에서 악의적 창의성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나열한 아이디어의 수는 더 적었음에도 악의적 독창성만 큰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전의 딜레마 게임에서 자신이 협력했음에도 상대방에게 사회적으로 배신당한 양이 큰 사람들은 더 적은 수의 아이디어로 매우 악의적으로 기발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더 좁아진 시야를 갖고 그 시야 내에서 악의적으로 창의적인 사람들로 돌변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냥 배신도 아닌 협력한 결과로 배신 당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방치하면 사회에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 초래되는가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그 결과는 악의적 창의성의 급증이다. 최악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은 명확하다. 협동과 공존을 지향하지 않아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사회는 악의적 창의성이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극히 높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는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그 기본 원리는 결국 공정과 공평에 있다. 그 원칙이 깨졌을 때 느끼는 것이 ‘사회적 배신감’이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공정함과 공평함이 심리적으로 서로 구분되는 경험이며 따라서 각기 다른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공평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이란 사전적 정의를 갖고 있으며 일종의 평등함에 가깝다. 하지만 공정함의 의미는 약간 다르다. 사전적으로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즉 그 공평함이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헌한 바에 따라 보상을 올바르게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니 그 상황에 맞게 무언가를 부여하는 것도 역시 공정함에 속한다. 예를 들어, “형은 키가 더 크고 몸집이 크니까 빵을 3개 주고 동생은 형에 비해 더 작으니 빵을 2개 가지라”고 말하는 부모는 공정한 판단을 지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공평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공평, 즉 평등한 것은 모든 사람이 말 그대로 똑같은 것을 받는 것을 뜻하니 말이다.

 

공평과 공정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사회가 돼야

흥미로운 점은 이 공평과 공정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으며 이후에 어떤 일을 앞두고 있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공평 혹은 공정해야 할 때와 상황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함수관계를 갖고 있는 공평과 공정을 가장 쉽고도 분명하게 풀이해 주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의 저명한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 교수다. 그의 결론은 명확하다. 공평은 협동의 질을, 공정은 경쟁의 질을 향상시키는 힘이 강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변수가 있는데 바로 집단이나 사회의 크기다. 작은 집단이기에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는 경우일수록 평등, 즉 공평함이 더 효과적이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 이유는 자명하다. 이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잘하고 못함에 따라 차등된 보상이 계속해서 주어지면 끈끈한 협동심을 어찌 발휘할 수 있겠는가. 상대적으로 더 큰 기여를 한 가족 구성원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다른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공을 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그 혜택을 받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 역시 그에 따른 고마움을 항상 곁에서 표현할 수 있으니 다음의 협동을 위해서도 평등은 좋은 미덕이 된다. 

하지만 그 조직이나 사회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이제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고마움을 서로 표현할 접점도 없고, 내가 본 손해로 누가 혜택을 보는가 역시 보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평등보다는 공정함이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구성원들 간의 경쟁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평함보다는 공정함이 더 우선시돼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이나 사회 구성원들이 더욱 힘을 내서 일하고 건전한 경쟁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를 거꾸로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작은 조직에 무리하게 공정함을 강조하거나 매우 큰 집단에 무작정 공평함을 강조하게 되는 것 말이다. 

또다른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는 협동 게임은 이전에 그 게임과 무관한 일에 있어서도 공평했을 때 더 잘하게 된다. 반면 공정하게 무엇을 배분받고 난 뒤에는 사람들이 경쟁 게임을 더 잘한다. 이것도 거꾸로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협동을 당부하면서 공평하지 못하고, 선의의 경쟁을 강조하면서 공정하지 못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말이다. 공정함을 강조해야 할 때 평등을 실천하면 이른바 무임승차하는 사람들만 키워낼 것이다. 반면 평등을 보여줘야 할 때 공정함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사회의 단결력을 해칠 뿐만 아니라 많은 시기와 질투를 양산해 각자도생의 마음을 갖게 할 것이다. 작은 조직에서 큰 조직으로 발전해 나갈 때는 공정함을 이전보다 더욱 부각시켜야 한다. 큰 조직이 위기를 만나 작은 조직으로 축소될 때는 평등함이 잘 이뤄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를 거꾸로 하면 큰일 난다. 이로 인한 배신감이 결국 악의적 창의성을 사회 내에서 키울 테니 말이다. 2)  



1) Baas, M., Roskes, M., Koch, S., Cheng, Y., & De Dreu, C. K. W. (2019), “Why Social Threat Motivates Malevolent Creativity,”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5(11), 1590–1602. 
2)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협동하게 만들려면 우리가 매우 작은 조직(혹은 가족 같은 조직)이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 반대로 더 경쟁하게 만들려면 우리 조직도 매우 큰 조직이 됐음을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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