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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2022년 03월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온 세상이 코로나19라는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마음속으로 되뇌곤 하는 말이다. 언젠가 이 끔찍한 감염병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른 것들이 또 찾아오리라.’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시대에나 가공할 감염병들이 창궐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질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저명한 역사가 윌리엄 맥닐(William McNeill)은 일찍이 감염병의 중요성을 강조한 선구적인 연구자다. 그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인간 집단 간의 투쟁이라는 거시 측면과 인간과 미생물 간의 투쟁이라는 미시 측면이 늘 함께 움직인다. 역사상의 중요 사건 이면에는 대개 참혹한 감염병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거대한 역사 사건 이면의 감염병

첫째는 ‘모세의 탈애굽’ 사건이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서 이주할 때 야훼가 “너희가 일찍이 이집트에서 앓던 온갖 나쁜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시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나 그 병에 걸리게”(신명기 7:15) 하리라고 약속한다. 종교적 의미를 떼놓고 이 말의 실상을 살펴보면 병원균과 면역 체계 사이의 불일치로 인한 가공할 감염병 사태를 가리킨다. 인구가 조밀한 나일강 유역은 원래 여러 질병을 갖고 있는데, 이곳에 오래 거주하던 사람들은 이 병들에 대해 충분한 면역력을 갖고 있으므로 큰 해를 입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외부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질병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러니까 이집트를 빠져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치명적인 병균들을 잔뜩 품고 있는 숙주 무리인 셈이다. 문명 지역 사람들이 이웃 지역 사람들을 쉽게 정복하는 것은 사실 이런 감염병의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맥닐의 법칙’이라 부른다.

비슷한 사건으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신대륙에 퍼진 구대륙 병들을 들 수 있다. 특히 천연두가 아메리카 주민들에게 가공할 피해를 입혔다. 당시 유럽에서 이 병은 주로 어린이들이 걸리는 유순한 풍토병 상태였으나, 이 병에 대한 면역력이 전무한 아메리카 주민들에게는 엄청난 말세의 병으로 작용했다. 천연두는 1518년 이후 에스파뇰라 섬의 아라와크 원주민의 절반을 죽였고 곧 푸에르토리코와 쿠바로도 퍼졌다. 이후 내륙으로 전파돼 기존 문명을 파괴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1521년 코르테스는 300명의 에스파냐 병사와 원주민 동맹군으로 아스테카 제국을 공격했다. 석 달 뒤,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됐을 때 지배자 몬테주마와 그 계승자를 포함한 주민의 절반이 죽었다. 사실 전투보다도 천연두 병균이 주민들을 더 많이 학살했다. 운하는 시체들로 가득 차서 코르테스는 “인디언들의 시체를 밟지 않고는 발도 디딜 수 없었다”고 썼다. 희생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름집으로 덥혀 움직일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 영향으로 생존자들은 몸에 곰보 자국이 남거나 장님이 되기도 했다. 이 시대의 천연두는 10~14일가량의 잠복기가 있기 때문에 체내에 병균을 보유했으나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주민들이 증상을 보이기 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병이 그토록 광범위하게 또 빨리 확산한 것이다. 쉽게 말해 천연두는 남아메리카 팜파스에서 북아메리카 오대호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질주하며 유럽인 정복자들의 앞길을 터줬다. 

아마도 ‘팬데믹’이라는 용어에 가장 알맞은 사례는 19세기의 콜레라일 것이다. 콜레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전 지구상에 퍼진 역사상 첫 감염병이었다. 이 병은 19세기 초 인도에서 처음 발병한 뒤 기선과 기차와 같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처음에는 동남아시아와 한국, 중국, 일본 등지로 퍼져갔으나 그다음부터는 아프리카와 유럽, 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로 전파됐다. 우리나라에는 1821년(순조 21년) 9월 9일(음력 8월 13일)부터 평안도 지방에 크게 유행했다. ‘신사년 괴질’로 알려진 이 병의 사망자가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이게 사실이라면 조선 전체 인구의 10%가 한 번에 사라진 셈이다. 이 병은 19세기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병세가 어찌나 심한지 아침에 병균에 감염됐는데 해 질 녘에 극심한 고통 속에 죽을 수도 있었다. 병에 걸리면 급속한 탈수(설사)와 모세혈관 파열로 몸이 쪼그라들고 얼굴빛이 검푸르게 변한 상태로 죽으니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의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현재도 콜레라가 가끔 발병하지만 19세기에 비하면 그나마 훨씬 유순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콜레라 병원균이 자신들의 DNA를 유지하기 위해 숙주들을 너무 가혹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고 살려두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코로나19 병원균 역시 이런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게 아닐까 하고 연구자들은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이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바이러스성 감염병들이 세계적으로 확산했다. 알려진 첫 번째 사례는 1889년의 인플루엔자다. 고열, 오한, 발한과 더불어 호흡기 증상들이 나타났고, 일부는 폐렴으로 진행하면서 높은 사망률을 보였으며, 특히 노인들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첫 번째 유행이 지나간 다음 겨울에 2차와 3차 유행이 찾아왔다. 말하자면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팬데믹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뒤를 이어 1918년의 ‘스페인독감’, 1957년의 ‘아시아독감’, 1968년의 ‘홍콩독감’, 1975년의 ‘조류독감’, 2003년과 2009년의 사스(SARS), 2012년의 메르스(MERS) 그리고 현재의 코로나19 등이 발생했다. 이 감염병들은 대개 동물들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어떤 연유에선지 인간 세계로 들어와 변이를 일으키며 확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을 통해 그야말로 며칠 내에 대륙 간 전파가 이뤄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특징을 보인다.

흔히 1918년 스페인독감에 대해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큰 희생자를 냈다고 하지만 사실 이 수치를 실제로 확인한 연구는 없다. 프랑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시 3,900만 명의 인구 중 21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 비율을 20억 인구에 적용한다면 1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그다음에 발발한 인플루엔자 사례들을 보면 세계적으로 유행했지만 병세는 상대적으로 유순했다. 1957년의 소위 아시아독감은 야생 오리에서 기인한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며 인류에게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찾아온 홍콩독감 바이러스(H3N2)는 1968년 홍콩에서 발병한 후 미국을 거쳐 세계 각지로 확산했는데, 희생자는 약 100만 명에 그쳤다. 100만 명이 물론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이전 사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현재 대부분의 사람은 이 병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희생자 규모, 정치·사회·경제에 끼치는 영향의 정도, 전 세계 사람들이 병에 대해 의식하는 수준 등을 놓고 보면 이번 코로나19는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팬데믹,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변화와 발전 강제해 

이상 살펴본 팬데믹 사례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

우선 감염병의 확산은 세계화의 발전 정도, 무엇보다 교통수단의 발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대의 탈애굽 사건으로부터 14세기의 페스트 확산 등의 사례들은 사람들이 걸어서 이동하거나 낙타 캐러밴을 이용하는 속도로 확산했고, 16세기의 천연두는 대양을 건너는 범선을 통해 전파됐으며, 19세기의 콜레라는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기선과 기차를 통해 더 빨리 확산했고, 20~21세기의 인플루엔자나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성 감염병들은 비행기를 통해 순식간에 세계 각지로 퍼졌다. 과거에는 일부 지역의 풍토병으로 그쳤을 병들이 오늘날에는 급속하게 전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 

이와 함께 애초에 감염병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연구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유전체 시퀀싱(genome sequencing)을 통해 인간 병원체의 진화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우리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야생동물, 특히 박쥐와 설치류, 유인원과 조류 등이 흔히 감염병의 근원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동물들과 인간이 접촉하는 과정에서 감염병 균이 인간 사회로 들어오는 것이 반복되는 중요한 패턴이었다. 현재 우리가 겪는 코로나19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기에 우리가 고민할 점이 있다. 장차 세계 인구가 100억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며, 또 현대 사회는 지속적으로 확대·개발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곧 인간과 야생동물이 맞닥뜨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따라서 이전에 인류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병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대 사회의 급속한 확대·개발과 교통수단의 발달을 함께 고려하면 앞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해 빠른 속도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팬데믹 현상이 빈발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지나가도 또 다른 감염병이 찾아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팬데믹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14세기의 페스트처럼 사회 체제의 총체적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엄청난 감염병이 발생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런 정도의 병은 매우 드문 편이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팬데믹이 사회 균열을 심화하고, 경제와 사회 전반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안기는 것은 분명하다. 그 결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와 발전을 강제하곤 한다. 실제로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예컨대 지난 2년 동안 경험한 비대면 수업이나 회의는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사실 그런 요소들은 이전에 없던 것들이 느닷없이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대개는 이전부터 준비됐던 것들이다. 다만 새로운 변화의 수용을 거부하는 움직임 때문에 주저하다가 위기 상황에서 급격하게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팬데믹이 초래하는 현상은 이전에 볼 수 없던 파괴와 창조라기보다는 완만하게 진행되던 변화가 급격히 빨라지는 일종의 ‘가속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이 급속히 자리 잡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일상적으로 목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태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취약층에 도움을 주고자 하더라도 정책이 우왕좌왕 표류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어떤 감염병이 또 인류 사회를 위협할지 모른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에 대한 대응 경험, 여기에 더해 지난날 역사 사례들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장차 우리가 직면할지도 모를 위기들에 조금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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