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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의 네 얼굴: 분노, 혐오, 불안, 우울
박한선 서울대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신경인류학자 2022년 05월호


기원전 43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반 아테네에 엄청난 역병(아테네 역병, Plague of Athens)이 유행했다. 약 10만 명이 죽었는데, 심지어 지도자 페리클레스도 죽었다. 스파르타와 싸우기 위해 아테네 주민은 성안에 복닥복닥 모여들었다. 감염병이 유행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없었다. 전염병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테네는 결국 패전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빼앗겼다. 전체 인구의 25%가 죽었으니 말 다 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도 당시 아테네에 있었다. 덕분에 감염병 유행에 따른 집단 반응에 관한 인류 최초의 기록이 남게 됐다. 투키디데스는 이렇게 말한다. “감염병 재난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법이나 규칙, 종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감염병으로 인해 주변 사람이 죽기 시작하면, 사실상 살아 있는 사람도 사형선고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 재산이나 명예도 다 소용없다.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물론 병자를 정성껏 돌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부터 감염병에 걸렸다. 아픈 이를 돌보는 사람이 모두 죽자, 각자도생의 세상이 됐고 시신은 마구잡이로 묻히거나 불탔다. 

종종 생존에 유리한 행동 유발하는 불안과 우울

인류의 역사는 감염병의 역사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감염병에 대처해 왔다. 거리 두기도 하고, 치료법도 개발하고, 백신도 만들고…. 그러나 더 오래된 대처 방법이 있다. 바로 불안과 우울이다. 좀 이상한 말 같다. 불안과 우울이 감염병에 대한 대처라니? 

불안과 우울은 분명 고통스러운 감정이지만, 종종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유발한다. 오염된 사물이나 사람을 피하게 하고, 낯선 곳을 꺼리게 하며, 안전한 집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게 해준다. 적당한 불안과 우울은 위험한 상황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한 행동을 하도록 돕는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불안과 우울은 어느 정도 ‘정상’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선을 넘는 불안과 우울은 도리어 건강을 해친다. 엉뚱한 이에게 분노하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불안과 우울이 오래되면 오히려 면역 반응이 떨어진다. 감염에도 취약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흥청망청 유흥에 빠지기도 한다. 

코로나19 유행이 처음 시작될 때,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 분노와 혐오 속에서도 의료진을 응원했다.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마스크가 부족하자 직접 천을 잘라 마스크를 만들고 기증하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가게 문을 닫고, 방역에 적극 협조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방역에 반대하는 이가 늘어난다. 매일 수백 명이 죽는데도 술집을 열어 달라고 요청한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마음이다. 지쳐서 그렇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에 걸려 죽으나, 파산해서 죽으나 매일반이라는 막막한 심정이다. 

코로나가 부른 마음의 병

코로나19 대유행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감정 반응을 유발한다. 

첫째, 분노다. 회사는 어려워지고, 장사는 안된다. 오랫동안 부어온 적금을 깨고, 가족 같은 직원을 해고하는 자영업자의 마음은 바싹바싹 타들어 간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전 세계 상황이 다 비슷하다. 아마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분노의 에너지를 극복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둘째, 혐오다. 처음에는 감염이 발생한 지역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가 들끓었다. 외국인도 피하고, 이태원도 피하고, 대구도 피하고, 중국 사람도 피하고…. 그런데 이젠 한국의 확진자 수가 세계 1위다. 

일부러 감염을 퍼트리는 사람은 없다. 위생과 방역에 대한 인식 수준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감염병이 먼저 유행한 곳에 살았다고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혐오로 감염병 전파를 막을 수 있었다면, 나부터 혐오에 앞장섰을 것이다. 

셋째, 불안이다. 조금만 피곤해도, 목이 갑갑해도,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혹시 코로나?’라는 걱정이 앞선다. 어린아이를 키우거나 노약자를 모시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더 불안하다.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극도로 삼가게 된다. 이렇게 점점 고립된다. 그리고 불안에 이은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온다. 

안전한 집이나 개방된 넓은 장소에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밀집된 곳이 아니라면, 외출해도 괜찮다. 코로나19와 관련된 과도한 뉴스 검색을 피하고, 불안을 야기하는 유언비어에 귀를 닫는 것이 좋다. 적당한 불안은 약이지만, 과도한 불안은 독이다.

넷째, 우울이다. 좀처럼 사람을 안 만나게 된다. 취미 생활도 못 하고, 사교 생활도 줄었다. 또 집에서 홀짝거리며 술을 마시는 일이 늘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운동 부족, 불균형한 식사는 마음의 균형을 깨트린다. 점점 부정적, 절망적인 기분이 들고 무기력해진다. 코로나 블루다. 

하지만 그럴수록 활기를 찾아야 한다. 역발상이 필요하다. 거리 두기와 재택근무를 재충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영어 공부도 좋고, 독서나 음악도 좋다. 몰입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지만 분주한 일상으로 그간 미뤄두기만 했던 버킷리스트에 본격적으로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과 더 가까워질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표 1>은 우울증 자가 평가표다. 지난 2주 동안 겪었던 일이나 느꼈던 기분을 돌이켜 보자. 점수를 모두 더해서 5점이 넘으면 우울한 상태다. 10점이 넘으면 상담을 예약해야 한다. 20점이 넘으면 즉시 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한다.

<표 2>는 불안 자가 평가표다. 지난 2주를 돌이켜 보자. 점수를 모두 더해서 15점이 넘으면 심한 불안 상태다. 정신과 방문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도 희망

고고학자 로버트 애덤스(Robert Adams)는 자원의 집중화 뒤에 따르는 불규칙하지만 불가역적인 쇠락의 순환 주기를 설명하면서, 이를 탈집중화를 향한 압력이라고 했다. 아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도 거대한 인류사의 흐름을 바꿀 순환의 변곡점일지 모른다. 

신석기에 시작된 수많은 전염병은 생산력을 과도하게 증대시키려는 시도에 따른 대가였다. 현대사회의 신종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생태계 파괴, 도시화, 세계화, 환경 오염…. 단지 경제적 효율성만 따지던 현대사회는 이번 역병을 통해 깨달은 바가 많을 것이다. 다자무역체제와 함께 단종 재배와 공장형 사육, 생태계 파괴, 세계화 등에 대한 대중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집중화와 탈집중화는 감염병의 주기적인 유행과 더불어 늘 반복돼 온 인류사적 레퍼토리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줬다. 국가나 인류 전체에도 그랬지만, 아마 당신 개인의 삶에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대충대충 코로나19가 끝나기만 하면 얼른 2019년의 방식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국가나 기업이 있다면, 코로나19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우울과 불안, 분노와 혐오 속에서 어떻게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지난 2년간의 고통들. 그러나 그 고통의 의미를 굳이 찾는다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미래인지도 모른다. 위드 코로나의 미래다. 이미 발 빠르게 그 새로운 미래, 탈집중화의 시대를 먼저 만들어가는 국가도, 기업도 그리고 개인도 있다. 이제 당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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