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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세 가지 ‘백신’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2022년 08월호



캠퍼스에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축제가 3년 만에 다시 열렸다. 언제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었냐는 듯 모두 밝은 표정이다. 병원 입구 임시 선별진료소도 철거했고, 코로나 전담병동도 일반병동으로 전환됐다. 암흑 같던 코로나19의 긴 터널 끝이 서서히 보이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동안 우리 삶의 방식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불러오지 않았는가? 

의료사학자 프랭크 스노든은 “역병은 우리가 누구인지 비춰주는 거울”이라 했다. 우리의 코로나19 방역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약한 고리’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 짧은 주기의 감염병 대유행이 예고되는 지금은 냉철한 복기를 통해 기존의 ‘노멀’을 평가하고 새로운 노멀, 즉 ‘뉴노멀’을 준비해야 할 때다. 코로나19 1차 대유행 당시 방역 최전선이었던 대구의 선별진료소와 코로나 전담병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을 그려본다. 

공공의료 중심 의료체계, 
유사시 우리 사회의 ‘의료안전망’


“우리 병원 응급실이 폐쇄됐어요.” 대구를 강타한 코로나19 1차 대유행은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대구에는 4만 개나 되는 병상이 있지만, 환자 발생 초기부터 병실이 부족했고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무엇보다 공공의료 인프라가 부족했다. 대부분의 병상이 민간병원 병상이었고 정부 방침에 따라 신속하게 전담병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공공병원은 사실상 495개 병상을 가진 대구의료원 하나뿐이었다. 대구 적십자병원은 적자를 이유로 이미 문을 닫았다. 코로나19에 맞서기엔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공공병상 부족은 비단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공공병상은 전체 병상의 9.7%로 OECD 국가 평균 71.6%에 비해 기형적으로 적다. 1977년 의료보험 도입으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자 국가는 공공의료 확충에 투자하는 대신 민간자원을 동원했다. 결국 ‘재벌 병원’까지 등장하면서 병원 간 시장적 경쟁이 심해졌다. 1960년대 50% 이하였던 민간병상은 2000년 무렵 90%에 육박하게 됐다. ‘강한 민간병원’과 ‘약한 공공병원’의 구도가 더욱 공고해졌다. 

그동안 민간병원을 주로 이용해 온 많은 국민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공공병원의 소중함을 처음 체감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 있는 전국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입원 환자의 80%를 감당했다. 환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병상 동원령’까지 내렸지만, 민간병원의 병상 동원은 쉽지 않았다. 결국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 마당에 컨테이너 임시 병상까지 설치해야 했다. 

이번 코로나19 파도는 ‘공공병원의 헌신’으로 겨우 막았지만, 다음 파고는 더 높을지 모른다. 공공병상 확충이 시급한 이유다. 공공병원은 유사시 우리 사회의 ‘의료안전망’ 역할을 한다. 과잉진료가 아닌 적정진료로 초고령화 사회의 의료비 폭등도 막는다. 아울러 취약계층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마지막 보루’ 역할도 한다.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의 가치를 존중하는 공공의료 중심의 의료체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이 돼야 한다.

온난화로 이미 고온에 적응한 바이러스들…
기후위기 대응이 곧 감염병 예방의 길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감염병 창궐은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등 인간의 자연 생태계 훼손과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기후변화는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치명적인 기후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더운 날씨 탓에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대구는 지난 2018년 극심한 폭염에 시달렸다. 최고 기온이 33℃를 넘는 폭염 일수가 무려 40일을 기록했다. “올해 폭염은 메르스 유행과 같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이다.”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급증하자 대한예방의학회는 폭염 성명서를 통해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지금 추세라면 21세기 말 폭염 일수가 현재의 3.5배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산불과 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이 인간 거주지 가까이로 서식지를 옮기며 인수공통감염병의 발생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모기 서식지가 확대돼 말라리아, 뎅기열 등 모기 매개 감염병의 확산도 우려된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수만 년간 잠들어 있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체온을 높여 방어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이미 고온에 적응된 바이러스에는 속수무책이다. 생물다양성이 줄어 생태계가 단순해지면 종간 장벽이 무너져 바이러스의 확산효과가 커진다. 지난 반세기 동안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로 야생동물 개체 수가 무려 68% 감소했다. 

“우리가 겪은 코로나 위기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총연습이었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말이다. 기후변화로 예상되는 피해는 코로나19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감염병은 극복될 수 있지만, 기후변화는 임계점(tipping point)을 지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지구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기 전에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기후위기 대응이 곧 감염병 예방의 길이다. 일상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영역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과도한 검사를 지양하고 일회용 의료용품 사용도 최소화해야 한다. 탄소집약적 ‘치료 중심 의료체계’에서 탄소중립적 ‘예방 중심 의료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혐오와 차별의 벽을 넘어 어떤 위기도 극복해 낼 힘은
공동체의 연대


“31번 확진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난동을 피운다.” 대구에 첫 확진 환자가 나온 다음 날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진 메시지다. 경찰이 확인한 결과 가짜 뉴스였다. 31번 확진자는 수많은 ‘괴담’에 시달렸고,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 슈퍼전파자라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역학조사 결과 대구의 첫 감염자도 슈퍼전파자도 아니었다. 미지의 감염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던 혐오와 차별을 소환한 것이다. 방역당국의 과도한 개인정보 및 동선 공개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감염보다 동선 공개가 두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WHO가 국경 봉쇄는 방역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혔음에도 일부에서는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를 비난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처음 확인됐다는 이유로 국내 중국인들은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됐다. 이주노동자들은 집 밖에 나올 수 없었고 유학생들은 자취방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중국인 출입 금지’라는 안내문을 붙인 식당까지 등장했다. ‘코로나19’라는 정식명칭 대신 ‘우한 폐렴’을 고집한 일부 언론이 미친 영향도 컸다.

그런데 대구에 확진자가 늘자 중국을 향하던 혐오와 차별이 부메랑이 돼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 봉쇄’, ‘대구 폐렴’이라는 말에 대구시민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서울의 일부 대형병원은 대구 환자의 예약을 받지 않았고, 일부 대기업은 직원들의 대구 출장을 금했다. 이처럼 팬데믹 상황에서는 차별하던 집단이 차별받는 집단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19보다 더 힘든 적은 혐오와 차별이라는 적입니다.” 급기야 권영진 당시 대구시장이 대국민 호소에 나서야 했다. 이러한 혐오와 차별은 방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방해 요소였다.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각자 노력하고, 내재된 구조적 차별에 함께 대응하는 사회야말로 뉴노멀이 아닐까?

대구에 확진자가 급증하자 시내 곳곳에 임시 선별진료소가 설치됐다. 하지만 일할 의사가 부족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안타까운 상황을 알리자 반나절도 안 돼 20여 명의 의사가 자원했다. 서울에서 병원에 휴가를 내고, 부산에서 개인 의원 문을 닫고 대구로 모였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온 2,500명이 넘는 의료진 덕분에 ‘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함께하는 많은 사람 덕분에 팽목항의 세찬 바람을 견딜 수 있었듯,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으니 힘내세요. 안산에서 은화, 다윤 엄마.” 병원에 도착한 핸드크림이 가득 담긴 택배상자에 동봉된 편지글이었다. 은화와 다윤이는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후에야 긴 수학여행을 끝내고 엄마 곁으로 돌아온 딸이다. 연일 계속된 소독으로 거칠어진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며 많은 의료진이 눈물을 흘렸다. 하루는 518개의 따뜻한 주먹밥 도시락이 병원에 도착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인 ‘오월 어머니회’ 회원들이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있을 대구 의료진을 위해 보낸 것이었다. “힘내요. 대구, 응원해요. 광주.” 도시락에 붙어 있던 응원에 힘이 났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전근대와 근대의 차이를 사회적 연대에서 찾았다. 대구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따뜻한 연대’였다. 동성로는 주말 유동 인구가 50만 명이 넘는 대구의 번화가지만 코로나19 1차 대유행 당시엔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러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 역시 타인과의 건강한 공존을 위한 사회적 연대였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의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일상의 수립이 아닐까?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혐오와 차별에 맞서고 서로 연대할 때 우리는 뉴노멀의 시대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타루는 시민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려는 욕망이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 『페스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조금 괜찮아지면 쉽게 잊어버린다. 우리는 사스와 메르스의 교훈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대비하지 못해 코로나19라는 고통을 또 겪어야 했다. 지금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전해 준 교훈을 깊이 새기고 나의 삶부터 ‘뉴노멀’의 새로운 일상으로 전환할 때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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