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대부분의 역량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지방에 사는 사람이 자주 느끼는 감정은 소외감이다. 인구분포만 봐도 그렇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은 수도권에 똘똘 뭉쳐 사는데, 나머지 절반은 지방에 뿔뿔이 흩어져 산다.
일상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대표적인 순간은 지상파 방송을 볼 때다. 방송에서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강남에서 홍대까지의 거리’라거나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말을 쓸 때가 있는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강남에서 홍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여의도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 서울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듣고 있으면 어쩐지 서울 사람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잠시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전라남도 순천에 살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서울 인구는 약 944만 명인 반면 순천 인구는 약 28만 명이다. 서울에 비해 인구가 적으니 없는 것도 많고 누릴 수 있는 것도 적다.
가장 안타까운 건 의료시설이다. 지방에는 의료시설이 많이 부족하고 의료서비스의 수준도 떨어진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운 일이다. 의료시설이 부족하면 의료서비스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시골로 갈수록 병원이 있기라도 하면 다행인 상황이다. 시골에서 응급 사고가 나면 그야말로 응급 상황이 된다. 서울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가려면 인근 광역시까지는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 사람들은 문화생활에도 목이 마르다. 지방에서는 공연이나 전시를 볼 기회가 적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을 기준으로 이번 주말에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은 380개나 되지만 전라도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은 17개에 불과하다. 서울 사람들은 보고 싶은 공연이나 전시를 취향대로 골라 볼 수 있지만, 지방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얼마 전 서울을 환상의 도시쯤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서울에 사는 친구가 서울살이의 고충을 잔뜩 털어놨다. 그는 서울을 회색 도시라고 표현했다. 혼잡하고 탁하고 시끄러운 도시. 문화시설을 즐길 미술관, 박물관은 넘치지만 어딜 가든 길게 늘어선 줄의 끄트머리에서부터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곳. 편리함을 위해 거미줄보다 촘촘하게 서울 구석구석을 연결한 지하철도 지옥철이 되고 마는 곳. 그의 말을 들으며 지방살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장단점은 있다. 혼잡하더라도 편리하게 살 것인가, 불편하더라도 여유롭게 살 것인가. 문명의 혜택을 누릴 것인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결국, 서울에 사느냐 지방에 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디에 살든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만족하며 살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