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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지역과 주민이 서로의 ‘비빌 언덕’이 되어 삶을 바라보고 자치(自治)할 수 있길”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 2023년 02월호


『월간 옥이네』(이하 『옥이네』)는 충북 옥천군에 있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발행하는 잡지다. 옥천의 ‘비옥할 옥(沃)’을 가져온 이름처럼, 옥천 땅 위에서 지역을 일궈온 이웃의 삶, 계절과 들녘, 역사와 문화를 담는다. 다들 서울로 떠날 때 옥천으로 와 지역을 기록하는 청년 박누리 『옥이네』 편집장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편 인터뷰가 끝난 후 찾은 식당에는 청년들로 가득했는데, 대부분 박 편집장과 지역을 위한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는 동네친구라고. 도시에 사는 기자에겐 퍽 부러운 풍경이었다.

인구감소 지역에 충북 옥천군도 해당한다. 체감하는 게 있다면.
옥천신문 기자로 취직해 이곳에 왔던 2010년에는 옥천군 인구가 5만4천 명 정도였는데 지난해 5만 명 선이 무너졌다. 고령화율은 31% 정도 된다. 그런데 취재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보니 내 일상에서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낄 일이 별로 없다(웃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지역의 역동성이 떨어진 것 같기는 하다. 면에 있는 초등학교 신입생이 ‘0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확실히 피부에 와닿는다.

‘시골잡지’를 만든다고 들었다.
서울만 보여주고, 서울에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는 대중매체를 접하는 우리는 지역공동체나 지역사회의 눈으로, 혹은 개인의 눈으로 지역을 보지 못하고 ‘서울의 눈’으로 동네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옥천은 스벅도 없고, CGV도 없고, 엽떡도 없다. 여기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난다. 서울에 있는 게 옥천에 없기도 하지만, 서울에 없는 것들이 여기에 분명 있는데도. 지역의 고유한 매력과 특성을 어디에서도 조명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물론 옥천신문이라는 걸출한 지역언론이 있지만, 비판저널리즘이 다루지 못하는 영역인 이웃들의 이야기를 모아 지역공동체와 사회에 공유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사는 동네가 더 이상 ‘서울 같지 않아서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고 친근한 곳으로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옥이네』를 만들고 있다. 

『옥이네』는 어떤 이웃의 이야기를 담는 건가?
평생 농사를 지으며 가족을 건사한 여성 농민, 결혼으로 타국에 와 자신의 재능으로 삶의 재미를 발견한 이주여성, 농촌 교통환경 개선을 말하는 버스운송 노동자, 초등학생 등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의 이야기가 실린다.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일상은 아니어도 어제와 같이 성실히 오늘을 살고 내일을 꾸려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 작고 평범한 것들을 도외시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리고 지역을 취재하다 보면 농촌사회, 고령화사회 등 옥천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면을 넘어 생태, 자치, 공동체 등의 키워드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농업사회의 구조적 문제, 무너진 삶의 기반, 도농 간의 격차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의제가 활발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런 이야기를 지면으로 담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실제로 무언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계속해서 폐교 이야기가 나오는 중학교가 있어 그곳의 전교생 18명과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이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을 자치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걸 목격했다. 월 몇만 원으로 지역의 청소년에게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다면,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청소년에게 ‘비빌 언덕’이 돼준다면, 과연 엽떡이 없다고 옥천을 떠나게 될까? 고향에 계속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 삶을 자치하기 위해 도시로 가는 것과 자기 뿌리인 지역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무작정 도시로 가는 것은 다르지 않나.
이참에 옥천 자랑 좀 해달라. 
‘옥천’ 하면 정지용 시인과 청암 송건호 선생의 고향, 1989년에 창간된 옥천신문 등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옥천의 자랑은 ‘공동체’다.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오랫동안 유의미한 활동을 해온 지역 중 하나가 옥천이다. 옥천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빨리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 조례를 만들었다. 선제적으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던 건 오랫동안 우리 ‘농’의 가치를 이야기해 왔던 농민들이 있고,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정서적 지지가 단단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지역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옥천 FM 공동체 라디오’ 등 공동체 간의 두터운 협력을 자랑한다.

지역살이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연고 없는 지역에 와서 정착하려면 제일 중요한 건 네트워킹이다. 비빌 언덕, 즉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가서 이야기할 수 있고 즉각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같이 염려해 주고 방법을 찾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그건 결국 지역사회에 스며들어야 가능하다. 그러려면 서로 다른 생활환경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걸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텃밭을 제대로 관리 안 하면 지나가는 어르신마다 한마디씩 하실 거다. 그것을 그저 간섭이라 생각 말고 염려를 표현하는 방식이라 여기면 좋겠다. 그리고 지역공동체에 스며들려면 지역의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라 여기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같이 해결하려 해야 한다. 여기가 있어서 나의 터전을 누릴 수 있는 거니까. 좋은 곳이라 해서 왔는데 상처받고 단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넘어서서 가다가다 보면 자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멋진 일을 도모할 기회가 올 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연결고리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 좋겠다.


지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청년들이 지역에 올 때 겪는 가장 큰 문제가 주거와 일자리다. 전북 완주군의 경우 지자체에서 오래된 빌라나 작은 건물을 매입해 수리해서 그 공간을 완주에 와서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 월 5만 원, 10만 원에 임대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지역에 머물면서 이 지역이 있을 만한 동네인지 탐색할 수 있지 않나. 그동안 동네사람들과 네트워킹할 수도 있고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동네사람들을 만나면서 “너 뭐 할 일 없냐? 그러면 우리 회사 와서 일해.”라든가 “우리랑 이거 해볼까?”라는 제안들이 오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지역으로 정착하는 사례들이 꽤 된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잘 벤치마킹해 지역에서 청년들을 위한 셰어하우스나 공동체주택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편집장님이 생각하는 ‘인생 로컬’이란?
내게 인생 로컬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것을 통해 사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옥천은 내 인생 로컬이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내가 있는 곳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옥천신문 기자가 되고 싶어서 여기 왔던 건데, 그 일이 지역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고 지역을 알아가고 애정을 갖게 해줬다. 내가 사는 동네,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가려 한다면 그곳이 인생 로컬이 될 수 있다. ‘이 동네 이름은 왜 이거지?’로 시작해 지역을 알아가다 보면 재미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테니. 

 
신정아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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