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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혼자, 또 같이… 지역에서도 ‘나의 일’ 이어가기
조우리 로컬 일러스트 브랜드 ‘라킷키’ 대표 2023년 02월호


2018년 가을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경북 상주로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상주 귀농귀촌센터에 방문한 날, 담당자가 경상북도에는 청년창업을 위한 지원사업이 많은데 첫 번째 조건이 타 지역에 주소지를 둔 청년이니 주소를 옮기기 전 충분히 알아보라고 조언해 줬다. 지원사업이라는 개념도 ‘타 지역 청년’이라는 말도 생경했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줄곧 서울에서 살며 회사원으로만 지냈던 내가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창업’이라니.

하루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했다. 여기서도 모두의 관심사는 ‘먹고사는 일’이었다. “상주에 오면 뭐 할 거야? 서울에선 어떤 일 했어?” 얼마 전까지 화장품 패키지 디자이너였다고 답하는 내게 누군가 경상북도경제진흥원에 올라온 공고 하나를 알려줬다. 지원사업이었다. ‘지역자원과 특산품 등을 활용한 관광상품, 기념품 개발·판매’라는 내용이 보였다. 지역에서도 경력을 살려 계속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시청년 시골파견제’(현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에 지원했고, 상주 특산품인 감의 추출물로 만든 마스크 팩을 만들게 됐다.

화장품 제조사가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 물리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역자원이라는 조건에 맞춰 감 추출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러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마스크 팩은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론칭했고, 상주시청과 지역 내 관광지에서 기념품으로 사용됐다. 또한 함께 제작했던 엽서와 그림이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상주의 풍경을 그리는 것에도 흥미가 생겼다. 본격적으로 일러스트 굿즈까지 제작하게 되면서 ‘라킷키’는 상주에서 태어난 첫 번째 화장품 회사에서 로컬 일러스트 브랜드로 영역을 확장하게 됐다.

청년활동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도 기획했다.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주변에 함께하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상주에서 개인 브랜드나 공간을 운영하는 청년창업자로, 지역에 사는 이유도 업종도 달랐지만 ‘나의 일’을 하고 있다는 공감대로 이어져 있었다.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라 서로 쓰지 않는 공간을 내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출판물이나 굿즈를 제작하는 등의 협업 프로젝트를 하는 커뮤니티였다. 나와 이웃들은 회사도 조합도 아니었지만 자발적 청년커뮤니티에서 컨소시엄으로, 나아가 ‘이인삼각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 마침내 상주가 전국 12개 청년마을 중 한 곳으로 선정됐고, ‘로컬’과 ‘창업’이라는 키워드에 관심 있는 참여자를 모집해 우리의 경험을 살린 단계별 지역정착 프로그램과 창업·창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편 사업을 운영하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정체성’이었다.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중간조직으로서의 청년마을 사업과 나의 개성을 담은 일러스트 브랜드 라킷키 사업. 이 둘을 동시에 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상주에 처음 내려와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고, 지금은 다시 ‘나의 일’을 발전시켜 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지역’과 ‘청년’의 연결고리 역할을 개인이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돌아보니 때에 맞는 지원사업들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역에서 ‘나의 일’을 시작한 건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지역에 본인과 잘 맞는 지원사업이 있다면 도전해 보라 말하고 싶다. 덕분에 충분히 지역을 탐색할 기회를 얻고, 해보고 싶던 일을 ‘정말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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