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베이비부머 정착촌으로 알려진 충북 영동 상촌면 도마령마을. 마을주민 약 70명 중 85%가 도시에서 은퇴 후 이주해 온 베이비부머들이다. 이들이 도마령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윤여생 둔전리 이장(60)과 이미선 부녀회장(59)을 만나 물어봤다.
도마령마을에 온 계기는? 윤여생(이하 윤) 부산에서 사업을 하며 바쁘게 지내다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오게 됐다. 2008년 내가 들어올 때만 해도 산이 깊은 데다 포장도로도 없어 오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10여 년 만에 외지인이 급격히 늘어 오지 이미지를 많이 벗었다. 이미선(이하 이) 포항에서 수학 교사로 일하다 쉰을 전후해 제2의 인생을 계획하며 남편과 전국 곳곳을 다녔다. 그러다 남편이 이곳 상촌면에만 들어오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해 2013년 여기에 집을 마련했고 주말마다 오다 2016년 나만 먼저 이주했다.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이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인간관계다.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모두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 옛 분들 말씀처럼 마을의 정기라는 게 있는 것 같다(웃음). 윤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좋은 지형도 한몫했다. 마을이 하천을 따라 8km 정도 길게 형성돼 있다 보니 다른 농촌과 달리 집들이 2~3km에 4~5가구씩 떨어져 있다. 은퇴한 교사, 공무원, 사업가 등 한적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간섭받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 이곳을 택한 분이 많다. 마을에 소속감은 느끼면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띄엄띄엄 살면 활발한 마을활동은 어려울 것 같은데. 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마을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라고는 1년에 딱 두 번, 어버이날과 연말 모임이 전부였다. 그러다 2018년부터 영동군의 ‘마을 만들기 사업’ 등을 통해 공동체활동을 했고, 정서적으로도 풍요로워지고 자기효능감도 오르는 등 개인에도 도움이 된다고 느끼니 주민들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어떤 건가? 윤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이다. 1단계 참여마을의 사업을 평가해 2단계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등 단계별 평가를 통해 사업비를 점차 늘려 가며 지원해 준다. 마지막 3단계에서 당시 우리 마을이 1위를 해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의 5억 원 규모 자율개발 사업에 선정됐다. 그 지원금으로 오는 6월 60평짜리 마을 문화센터가 완공된다.
도마령산촌문화축제도 유명하던데, 시작이 궁금하다. 윤 2015년 7월 비오는 날 원주민 한 분이 술 한잔 하자며 오셔서는 나더러 내년부터 마을 축제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내년엔 내가 여기 없을지도 모르니 올해 하자고 답했다. 귀촌인 중심으로 12명이 50만 원씩 모아 그해 9월 축제를 개최했는데, 230명 정도가 와서 소위 대박을 쳤다. 그다음부터는 도마령으로 경계를 이루는 용화면과 같이 8월 둘째 주마다 열고 있고, 축제가 더 잘 알려지면서 600명까지 모이기도 했다.
축제가 흥행하는 이유는? 이 공연 퀄리티가 높다고 자부한다. 현악단, 합창단, 국악, 밴드 등 수준 높은 다양한 음악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보라빛 노을이 일었다 질 때 공연의 대미를 맞게 되는데, 음악과 자연의 조화가 너무나도 근사하다. 부녀회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도 있다. 그간 음식이 무료였는데, 6회 때부터는 일정 금액을 받아 수익금을 영동군민 장학회에 기부했다.
지난해 도마령영농조합법인이 전국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윤 법인은 당초 내가 운영하는 민박 손님들에게 마을 농산물을 판매하다가 필요성을 느껴 설립했다. 마을 주민 개개인이 자기 농산물을 법인을 통해 팔고 그 수입을 수수료 없이 100%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법인 관리비는 민박 소득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번 우수마을기업 선정으로 받은 사업 개발비를 활용해 지역 자원인 감을 원료로 양갱을 만들었다. 건강을 생각해 당도를 낮췄는데 반응이 좋아 거의 완판됐다.
더 계획하는 사업이 있나? 윤 아이스홍시를 개발해 보려고 고민 중이다. 대량 생산해야 하고 냉동창고를 설치해야 하는 등 여러 애로가 있다. 이 향수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향수의 경우 물이 가장 중요하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이곳의 향, 힐링이 되는 향을 담고 싶다. 귀촌인 중 역량이 우수한 사람이 많다. 각자 능력을 다시 활용해 소득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그래서 마을과 개인이 윈윈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되면 연금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도 이곳에 들어오고, 또 그 사람들이 떠나온 도시는 젊은 사람들이 메우고, 길게 볼 때 지역사회가 훨씬 잘 돌아갈 것 같다.
소득기반을 확충할 또 다른 계획이 있다면? 윤 폐교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영동군에 요청했다. 우리 마을사업과 공동체활동이 활발하다 보니 군에서 적극 나섰다. 군에서 약 20억 원을 투자해 폐교를 리모델링하고 있고, 이웃 마을 고자리와 함께 캠핑장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삼봉영농조합법인을 새로 만들어 현재 두 마을 주민 30명 정도가 4천만 원 정도의 출자금을 만들었다. 올해 하반기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귀농·귀촌인들이 더 잘 정착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경제활동 기반이 더 단단히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귀촌인들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문화·의료·교육 기반도 필요하다. 공동체의 힘을 활용해 유명 학원이 없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교육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건강보험료, 세금 감면 같은 지원도 필요하다. 윤 각각 지역 특성에 맞는 핀셋정책이 필요하다. 일례로 영동군은 와인 특화사업을 하는데, 은퇴한 베이비부머 중 발효 등 와인 관련 일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귀촌해 경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군에서 귀촌한 전문가들에게 직책을 만들어주고, 민간 기업이 일정 비용을 내고 자문을 받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마을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윤 봄이 되면 지나가다 민박집에 들러 귀촌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마을인구가 70명 정도인데 1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본다. 외지에서 우리 마을로 관광버스가 오는 꿈을 꾸고 있다. 지난해 팜스테이(farmstay) 마을에 선정됐는데, 우리 마을만의 체험 프로그램을 잘 갖춰 그 꿈을 이뤄보겠다. 이 우리 마을이 면 소재지보다 생활이 더 편리하고, 볼거리 많고, 더 중추적 역할을 하는 마을로 변모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