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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군산시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동네기획자’ 이야기
조권능 ㈜지방 대표 2023년 06월호

학창 시절 ‘군산이 어떤 도시가 되면 좋을까?’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해왔다. 여행하며 봤던 국내 다른 지역이나 해외의 도시들에 비해 내 고향 군산은 보잘것없게만 느껴졌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기 일본과 미국에 기대 살았던 역사, 1970년대 개발 시대 때 겪은 소외 등 군산의 과거 이미지들을 돌아보면 ‘상실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최근엔 자동차 등의 대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지만 이마저도 모두 군산을 떠났다. 또 한 번의 상실이 찾아온 지금, 다시 ‘근대문화 관광도시’라는 비전을 꺼내든 도시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예술가 카페 ‘나는섬’ 등 ‘암흑의 동네’ 바꾸려는 다양한 노력,
결국 10여 년 만에 싹 띄워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단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을까,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를 자랑할까 등을 생각하다 보니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태어나고 자란 군산이라는 도시를 ‘내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어 ‘암흑의 동네’로 불리던 군산시 개복동에 2008년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작업실을 차렸다. 미술 전공을 살려 동네를 예술적으로 가꾸면 홍대처럼 바뀔 거라 생각했다. 작업실을 카페로 바꿔 ‘나는섬’이라는 공간을 오픈하고 함께할 예술가들을 모아 ‘개복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30명의 예술가와 전시회도 열고 공연도 개최하며 다양한 문화적 행위를 했다. 카페가 꽤 인기를 끌자 연이어 칵테일바 ‘앙팡테리블’이라는 공간을 열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개복동에 말 그대로 ‘올인’했는데 결과는 좋지 못했다.



당시에는 도시재생이 그다지 주목받는 이슈가 아니었고, 많았던 관심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 결과 어렵게 키워나갔던 예술가 커뮤니티는 자연스레 흩어졌고 매장을 운영하는 것도 초반처럼 즐겁지 않았다. 20~30대 청춘이 통째로 날아간 듯한 느낌도 들고 꽤 지쳐 있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군산시에서 도시재생 등을 통한 로컬 살리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군산시의 지원으로 ‘예술촌’이라는 공간이 생겼고 그곳에서 예술인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공간을 매입해 그려왔던 모습대로 재현했다. 결국 개복동에서 주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해왔던 다양한 사업들, 활동들은 훌륭한 레퍼런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오래되고 낙후된 시장이었던 ‘영화시장’을 재생하는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지금의 ㈜지방을 창업했다.

‘지방’이라는 회사명은 학창 시절에 ‘세상의 변화는 변방에서 일어난다’는 문장에 감명받아 이 일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살려 지은 것이다. 주요 사업은 국내에서는 생소한 지역매니지먼트(area management) 형태로, 공간의 기획부터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역매니지먼트는 지역을 운영한다는 뜻인데, 현재는 크게 두 가지 전략으로 군산 원도심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70% 공실 지역, 청년 창업가와 연결해 ‘영화타운’ 조성…
군산을 로컬 브랜드로 채워갈 수 있길


첫 번째 전략은 ‘영화타운’에서 활용한 마을 브랜딩이다. 영화타운은 원래 70%가 공실이었던 골목시장 영화시장이 도시재생을 통해 정비된 후 새로 얻은 이름이다. 영화시장 재생 프로젝트는 시장 내 빈 점포를 사용할 창업자를 연결해 거리를 활성화하는 형태다.

주목할 점은 기존 공공부문 프로젝트가 공무원 등이 구성을 미리 해놓고 민간 운영자를 모집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기획부터 민간과 공공이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주관 아래 여러 주체가 참여할 때, 지역마스터 역할을 제안받아 참여한 것이 나와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공간 조성에는 군산시 예산이 투입되고 운영예산은 자생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모델로 설계했다.

㈜지방에서는 지역 관리(상권 관리)라는 측면에서 부동산 관리, 공간 및 콘텐츠 개발, 운영자 성장 지원 등의 방법으로 특정 지역에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통합적으로 지역을 브랜딩해 나갔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변수가 많은 도시생태계를 관리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유통과 매니지먼트의 다른 이름은 ‘운영’이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고 ‘중간자’의 위치에서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며 마을을 가꿔나간다는 자세로 사람과 공간을 경영해야 한다.

두 번째는 술이라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마을을 구성하는 ‘술익는 마을’에서 활용 중인 로컬브랜드 전략이다. 말 그대로 군산의 로컬자원을 활용한 콘텐츠로 브랜드를 만드는 방식이다. 처음 군산에서 술을 소재로 로컬브랜드를 추진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명절 때 SNS를 뒤적이다 우연히 본 한 문장.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사케의 도시, 군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군산’이라는 도시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해 왔다고 자부하던 게 굉장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 문장에 이끌려 본 것은 바로 양조와 결부한 로컬브랜드로 군산을 혁신할 산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모종린 연세대 교수의 글이었다. 당시에는 모종린 교수를 전혀 알지 못할 때여서 무작정 연락을 취해 “군산에 사는 청년인데 영화타운 안에 사케바를 열고 양조 사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하니 바로 그 주말에 군산으로 내려와 이 사업의 초기모델을 구상하는 데 많은 도움과 조언을 주셨다.

술익는 마을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양조장이다.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제품 중심으로 확산하는 파생 사업이다. 술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쌀, 겨, 효모, 술지게미 등 다양한 소재료를 활용해 전혀 다른 형태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쌀을 활용한 입욕제와 화장품, 천연효모를 활용한 베이커리나 디저트 상품, 술을 담기 위한 도기나 목기 등의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

또 다른 축은 양조장을 중심으로 체험형 관광서비스를 연결해 오프라인 공간들을 동네 단위에서 채워나가는 것이다. 우선 생각하는 것은 ’사케바‘, ‘사케 스테이’ 등인데 술이라는 콘텐츠와 연결해 생겨나는 오프라인 비즈니스들을 통해 동네 전체를 브랜딩해 나가는 방식이다.

최근엔 양조 사업을 위해 ㈜흑화양조를 설립했다. 군산의 향토기업이자 우리나라 주류시장의 80%를 점유했던 백화양조의 기술력과 100년의 스토리는 이어가되 우리만의 방식으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술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더해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청년과 함께 군산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청년 간 커뮤니티가 점차 확산하고 있는데 우리가 운영 중인 공간 옆에 또 다른 청년이 운영하는 매장도 생겨나는 등 시너지도 나고 있다. 이처럼 ㈜지방이 다른 청년들과 함께 일구는 사업들을 통해 군산이란 도시의 산업생태계를 대기업 의존적 사업이 아닌 로컬 크리에이터가 이끄는 산업으로도 채워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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