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에서 빈집을 리모델링하고 콘텐츠를 기획해 도시 활력을 높이는 건축 전공의 동갑내기 청년들이 있다. 로컬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무형의 서비스를 기획하는 박우린, 목진태 마을호텔㈜ 공동대표. 각각 도시재생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고 없는 공주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박우린(이하 박) 공주와는 공영차고지 건축 설계를 하며 인연을 맺었다. 제민천변을 따라 시청에 오가며 자연스럽게 주변 동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도시가 보존되고 도보생활권이 유지되는 맥락이 좋았다. 그러다 설계뿐 아니라 공간 운영 비즈니스에도 관심이 생겨 작은 회사를 만들고 그 시작을 공주에서 하게 됐다. 그러나 작은 공간을 운영해 얻는 수익만으로는 사업 유지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지방의 유휴 공간을 원재료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상품화해 서비스하고 있다.
‘마을호텔’을 만들고 먼저 책방 운영부터 시작했다고 들었다. 박 스테이 공간부터 운영하지 않은 것은 당시 제민천 주변에 사람을 끌어들일 만한 즐길 거리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책방이다. 책은 문지방을 넘게 만드는 굉장히 좋은 아이템이다. 또한 책방 운영 이외에 사람을 머물게 할 방법이 식음료라고 생각했다. 책방에서 시작해 이제는 1930년대 수선집을 개조해 만든 다목적 공간 ‘수선집’, 카페 ‘프론트’, 스테이 공간도 운영하고 있다.
동네에 사업이 잘 자리 잡은 것 같다. 전략이 따로 있었나? 박 처음에는 동네 분들이 ‘얘네는 뭔데 여기서 책방을 하지?’ 하며 약간 거리를 두시다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좋게 봐주시고, 그러다 보니 책은 안 사도 친구가 오면 꼭 데리고 와서 자랑하는 공간이 됐다. 또 로컬의 로스터리에서 원두를 공급받고 동네 농부에게 밀가루를 받아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로컬과 연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역민을 고용하니 ‘우리 딸의 가게’, ‘언니네 가게’가 됐고 동네에서의 위상이 확 달라졌다.
박 대표님은 세컨하우스 공동소유 플랫폼 ‘마이세컨플레이스’도 운영하고 있다. 박 여가활동이 증가하는 등 공유경제 부동산 모델이 각광받을 시점이었다. 주말마다 사람들이 계속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비즈니스 모델로 찾은 게 바로 ‘세컨하우스’다. 현재 공주 인근의 빈집 두 채를 고쳐서 시범운영 중이다. 처음엔 설계에만 참여했는데, 마을호텔의 로컬 콘텐츠 비즈니스에 공간이라는 하드웨어 파트를 더한다면 훨씬 확장성 있는 모델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합류했다.
세컨하우스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운영되나? 박 몇 개월에 걸쳐서 접근성이 좋은 공주시 유구읍의 빈집을 전수조사했다. 은퇴 후 살 집으로 남겨 두거나 자녀들의 상속 문제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빈집은 많다는데 매물이 정말 없었다. 어렵게 마당 포함 100평 규모의 집 두 채를 구해 고치고, 한 구좌당 20% 지분을 소유하는 모델을 적용했다. 현재 한 채당 5구좌씩 총 10개 구좌 중 7구좌가 주인을 찾았다. 한 구좌당 1년에 70일을 이용할 수 있고 웹 플랫폼에서 예약한다. 또 소유 개념이기 때문에 이용하지 않아도 매달 세금, 관리비 등 20만 원 내외의 고정비가 부과된다. 시골집이지만 최첨단으로 운영된다. 퇴실 버튼을 누르면 공기청정시스템, 로봇 청소기가 작동하고, 매일 아침 기상 정보를 받아 자동으로 잔디밭에 물도 공급(관수)한다. 이를 통해 한 달에 한 번 대청소 개념의 월 관리만 들어가도록 해 관리비를 낮추는 게 목표다.
공동소유 개념이 흥미롭다. 이용 후기도 궁금한데. 박 공동사용의 불편함이 없도록 공동소유자 간의 연결을 끊어내야 상품 사용성이 좋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연결이 있을 때 더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 사업을 운영하면서 배웠다. 예를 들어 ‘서진이가 책을 두고 가요. 같이 읽어요.’라는 메모를 남기면 다른 가족이 놀러 와서 읽는다. 또 대부분 도시에서만 살던 분들이라 마당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시더라. 그래서 텃밭, 툇마루, 데크, 야외 테이블 등 곳곳에 건축적인 장치를 배치해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사이에서 공주 오일장이 인기다. 특히 아이들이 시장에서 지역 어른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해서 계속 찾게 된다고 한다. 오일장 물건이 대형마트보다 싸고 싱싱해서 심지어 물건을 사서 도시로 가져간다더라(웃음).
마을호텔 등 도시재생 사업으로 지역의 변화를 느끼나? 박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여기 제민천까지 안 오고 공산성까지만 머물렀다. 그런데 이제는 카페를 즐기려고 이곳에 찾아온다. 원두를 공급하는 로컬 로스터리 친구가 “아니 누나, 월드 와이드 팬츠를 입은 사람들이 여기 와(웃음)” 한다. 그만큼 홍대에서나 볼 법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거다. 또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자리 잡은 부부는 “마을호텔이 생기고 나서 동네에 노상방뇨하는 사람이 없어졌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굉장히 날 것의 얘기인데 핵심이다. 도시재생에서 말하는 ‘깨진 유리창 효과’ 같은 거다. 유동인구가 늘어나며 지역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콘텐츠 하나씩 확장해 가며 공간을 디자인”
마을호텔에는 어떻게 합류했나? 목진태(이하 목) 원래 책방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마을호텔이 조직될 때 로컬과 문화, 라이프스타일 관련 콘텐츠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마을호텔의 비전에 공감해 합류했다. 마을호텔 공간에 처음 들어선 것이 책방 ‘블루프린트북’이다.
마을호텔에서 주로 콘텐츠를 기획한다고 들었다. 목 우리가 해보고 싶던 걸 하나씩 확장해 가고 싶었고 이게 도시재생 목표와도 맞닿아 있었다. 지역엔 도시재생 관련 활동지원 사업이 굉장히 많다. 지난해 12월엔 공주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우리가 해보고 싶은 것을 집대성한 ‘올드타운 스?팅’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했다. ‘스?팅(squatting)’은 ‘점거’라는 뜻이다. 공주는 원래 직조산업이 성행했다. 지금도 직조공장 터가 많이 남아 있다. 그곳의 유휴공간 세 군데를 빌려 최소한의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 영화제, 음악회와 책 전시, 북토크를 진행했다.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본다. 크리에이터나 기업 입장에서도 결국 콘텐츠가 생존의 열쇠인 것 같다.
다른 크리에이터와도 협업하나? 시너지가 있을 것 같은데. 목 비슷한 시기에 많은 크리에이터가 주변에 자리 잡았다. 반경 2km 내 여섯 개의 책방이 모여 있는 이상한 동네가 됐다(웃음). 북토크 프로그램은 서점 간 연합이 필요하다. 같이 뭔가 해보려고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 같다. 이 외에도 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와 로컬 매거진을 제작한다. 공주까지도 관내로 포함된다. 다양한 로컬 크리에이터와의 관계가 여러 방면으로 지속되면 개성 있는 도시가 될 여지는 충분히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