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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기후위기, 공동체 붕괴 등 대안으로 떠오르는 로컬, 30년 내다본 상생 전략 필요
조희정 더가능연구소 연구실장, 『로컬, 새로운 미래』 저자 2023년 07월호
현장 인터뷰·조사 등 현장연구를 통해 지역(local)의 현실을 자세히 알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역은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면 목가적인 풍경과 나른한 여유가 느껴지지만, 현미경으로 가까이에서 보면 그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시도가 나름의 유쾌한 신선함과 우리 사회의 문제를 선도적으로 포착하는 능동적인 부지런함도 갖추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과거에는 환경 문제를 논하는 것은 먹고사는 여유가 해결된 후에 가능하다거나, 귀농귀촌도 은퇴 후 넉넉한 자본과 여유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창업도 대도시 벤처캐피털의 투자금을 종잣돈으로 해 ○○밸리에서 눈부신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몇몇 선지자만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제는 기후위기, 부동산 문제, 실업과 고용불안, 공동체 사회의 붕괴 등과 같은 문제의 대안으로 ‘지역’이 떠오르고 있고, 거기서 새로운 움직임들이 전개되고 있다.

‘보고 느껴라, 지역의 맑은 공기를!’, ‘나는 해변으로 출근한다’ 같은 캐치프레이즈나 “도시의 조직생활에선 직원에 불과했는데 이곳에서는 자기주도적으로 성공도 실패도 할 수 있어서 좋다”, “매일 여러 가지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느라 바쁘다. 흥미진진하다”, “이주자가 너무 많아져서 현지인과 이주자를 구분하는 게 의미 없다” 등의 말을 현장에서 자주 듣고 있다. 이렇듯 사람들이 지역생활을 통해 바라는 것은 자존감, 평화, 건강 그리고 (빠르지 않더라도) 미래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두근거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바람을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실현할 수 있기에 지역에 관한 관심이 점점 느는 것이다.

경기 파주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숲 농장 ‘DMZ숲’을 창업한 임미려 대표의 목표는 지역의 특성과 장점인 DMZ라는 공간을 알리면서 임업과 환경보호 가치도 전파하고 수익 창출도 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요리 레시피를 청년들에게 전하는 경남 함양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는 단지 할머니가 알려주는 손맛의 비법을 전수하는 것만 목표로 하지 않는다. 세대 공감과 연결, 독거노인의 외로움 해소 그리고 누구든 원하면 소통할 수 있는 건강한 커뮤니티를 꿈꾼다. 한편 아버지의 감자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생활을 접고 밭에서 방금 캔 감자처럼 생긴 ‘감자빵’을 만들어 연 매출 300억 원을 거둔 강원 춘천 농업회사법인 ‘밭’의 이야기는 지역창업자들 사이에서 성공 신화가 됐다.

비단 이들 사례뿐이겠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디자인·IT·콘텐츠 특장점을 갖춘 이들이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대체로 초기 자본이 부족한 데다 주로 낯선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보니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은 중앙정부, 지자체 그리고 중간지원 조직이 맡아야 한다. 요즘처럼 인구 감소와 지방 침체가 심화하는 환경 속에서 지역의 새로운 플레이어, 혹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시도를 공간 마련과 사업비 지원 등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제도의 몫이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로컬의 방향을 고민할 때 지난 30년의 지방자치제도 성과보다는 앞으로의 30년을 생각해야 한다. 도시도 중요하고 지역도 중요하다. ‘우리 지역 인구를 늘리기 위해 다른 지역 인구를 끌어오자’, ‘공간을 크게 지으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제로섬 사고로는 앞으로의 30년에 대응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수평적으로 연결하며 삶의 질을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 끌어올리는, 실용적인 윈윈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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