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를 본 적이 있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우리 발아래 땅에 있다”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건 이 다큐멘터리는, 땅을 갈아엎는 경운 농법과 제초제·농약·비료 등 화학물질 등으로 산성화되고 사막화된 지금의 땅을 회복해 탄소를 감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땅을 회복하는 방법은 바로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 농법과 퇴비로 토양 미생물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이 미생물은 대기의 탄소를 흡수하고 식물 뿌리에 영양소를 공급하며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해충을 방제하는 역할을 한다. 미생물이 죽은 땅은 건강하지 못해 화학비료에 의존하게 되고, 점점 약해진 땅에서 키운 작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토양과 식물, 기후 그리고 인류는 서로 연결돼 있다.
미국과 남미 지역, 호주 등에는 일찍이 무경운 농법을 시행하는 농지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땅속 생태계를 지키며 건강한 먹거리를 짓는, 지속 가능한 삶터를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 나섰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전북 부안군 변산면. 그곳에 27년 전 터전을 만들어 유기농법과 생태적 삶을 이어가고 있는, 최근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변산공동체’(이하 공동체)를 방문했다. ‘별의별 이주땡땡’이라는 이주체험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3박 4일간 머물며 지속 가능한 먹거리와 생태, 지역 사회를 가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YOU ARE WHAT YOU EAT.”
공동체는 변산면에서도 깊숙이 들어간 운산리에 위치해 있다. 산허리가 꼭 구름 같은 것이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공동체 식구들의 생활공간 3천 평에는 수확한 판매용 농작물을 포장하는 택배실, 식당, 효소실, 도자기실, 과거 공동체학교 시절 쓰였던 강당과 생태화장실 그리고 공동체 식구들이 직접 지은 황토 구들방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10명이 채 안 되는 규모의 공동체지만, 과거엔 많게는 60여 명이 지냈던 곳인 데다 긴 세월 공동체를 오간 사람들(어깨동무식구)이 가까운 곳에 지내고 있어 함께 농사짓거나 공동체가 추진하는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한다. 공동체 논밭의 규모는 각 6천여 평, 5천여 평으로 과거부터 고수해 온 유기농법, 자연농법으로 일군 건강한 땅이다.
이곳에서 난 농작물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그날 수확한 게 밥상에 오르기도 한다. 기계가 아닌 태양으로 건조한 쌀로 지은 밥과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기른 각종 나물, 채소와 과일, 지역 해녀로부터 공수한 해조류 등으로 만든 유기농 밥상이다.
구들방, 아궁이, 유기농 밥상… 평소 흔하게 보지 못한 풍경이 생경하기도 했지만, 인상 깊었던 건 이곳의 정체성이기도 한 재래식 생태화장실이다. “YOU ARE WHAT YOU EAT.” 이곳에 오기 전 받은 안내문에 쓰여 있던 말이다. 내가 먹은 음식이 곧 나라는 것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자라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리고 그 음식이 나에게 무엇으로 돌아오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건강하게 길러낸 농작물을 먹고 그것을 퇴비로 만들어 땅으로 되돌려줘 다시 건강한 농작물을 길러내는 자원의 순환을 목표로 만들어진 화장실인 것이다. 편리하지만 물 낭비, 수질오염 등을 유발하는 수세식 화장실 대신 직접 퇴비를 만들며 자연을 덜 해치는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늘의 할 일은 들깨 파종하기. 키보드같이 생긴 포트에 흙을 먼저 담고, 씨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들깨 씨를 3~4알씩 뿌리고 흙을 살살 덮은 후 다시 물을 뿌리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열심히 심은 들깨가 어느 정도 자라면 공동체 뒤편에 있는 호밀밭에 심을 예정이라고. 기계(로타리)로 흙을 갈고 정리해 들깨를 모종하는 게 아니라 땅을 갈지 않고 호밀을 눕혀 그 위에 들깨 모종을 기계로 박는다고 한다.
이처럼 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호밀 같은 녹비작물을 의도적으로 심어 길러낸 후 무경운으로 콩, 옥수수, 들깨 등의 작물을 번갈아 심는(윤작) 방식을 ‘탄소농법’이라 한다. 녹비작물은 단어 그대로 화학비료 대신 땅에 넣어주는 녹색비료란 뜻이다. 녹비작물은 토양에 유기물을 공급해 미생물 활동을 도와 토양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고 여름철 잡초발생을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한 가지 작물만을 계속 심게 되면 땅의 피로도가 높아지는데, 이렇게 번갈아 여러 작물을 심어 땅의 순환을 돕는다.
공동체가 이런 방식의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공동체에 합류한 이정기, 장희숙 씨 부부에게 물었다. 그들은 유기농법, 퍼머컬처(permanent+agriculture) 등이 해외에서 시작됐을 것 같지만 사실 우리 선조들이 짓던 농사 방식이라고 했다. 또 유기농은 땅을 일구는 데만 쓰는 개념이 아니라 삶에서도 실천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좋은 먹거리를 섭취하기 위해 좋은 농사를 짓고, 좋은 농사를 가능케 하는 생태계를 가꾸기 위해 일상에서도 생태적 태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한 어깨동무식구는 지금과 같은 농법은 땅을 해치는 ‘욕심농법’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들바다공동체’라는 한살림생산자 공동체 일원이기도 한데, 지역 토박이와 변산공동체 출신 농부들이 만든 유기농 재배 생산공동체다. 특이한 점은 오래된 회원이든 신규 회원이든 각자 원하는 작물과 원하는 생산량을 신청해 그 약정량을 신청한 회원 수대로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다. 게다가 청년을 위해 주는 약정이 따로 있기도 하다고. 이런 사례는 흔치 않다고 하며 대농과 소농 모두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방안으로 마련한 원칙이라 한다.
지자체 지원받아 시작한 청년창업으로 공동체의 경계 허물어 지역과 상생 도모
이들은 동시에 극단적인 자연농법이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자연농법이라는 높은 가치와 수고에 비해 소비자들과 생산자를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가 많지 않고 대규모로 생산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이러한 까닭으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계를 쓰지 않는 엄격한 생태농법을 고수해 오다가 오랜 고민 끝에 최근 기계를 구매해 생태적 농법과 현대기술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장희숙 씨는 과거와 같은 방식을 유지했더라면 공동체가 흩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였다.
농사뿐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에도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 공동체 식구들을 모두 초대해 ‘변산공동체 2.0’ 포럼을 열었다. 지금껏 이어온 기술과 프로그램을 기록해 계승할 점과 개선할 점을 살펴보고, 공동체가 가진 브랜드이미지와 기반, 네트워크를 100% 활용해 공동체의 자생력과 미래를 위한 전환을 주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27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속에서 쌓아온 지혜와 가치관은 잇되 이곳 식구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고 비전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어서 시작한 도전이다. 공동체 식구들의 애정 어린 도움과 지지 덕분에 할 수 있었던 도전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두 번째 자생을 위해 가장 먼저 시도한 건 지자체 지원으로 하는 청년사업이다. 부안군에서 지역소멸대응기금으로 실시하는 ‘청춘실험실’이라는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돼 지역창업을 준비하게 됐다. 공동체와 부안군 이주청년들이 모여 도시와 농촌, 세대를 모두 잇는다는 의미의 청년단체 ‘다잇다잉’을 만들어, 읍내에 있는 공동체 생활공간을 재정비해 코워킹스페이스, 베이커리, 카페 등으로 구성된 청년 거점 공간과 플랫폼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부안으로 모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공동체의 경계를 허물고 개방해 지역과 공동체 모두 상생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 외에도 변산공동체학교 졸업생과 가족들이 공동체에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계절학교를 준비해 농사 체험과 생태교육, 자립심을 키울 손기술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혼자 실천하는 생태적 삶이 아닌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정기 씨는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이야기를 꺼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고 함께 땅을 일구고 동네를 가꾸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진 마을이야말로 미래의 희망이라고.
안건모 공동체 대표는 “도시에서 하는 환경을 위한 활동보다 여기서 하는 자원순환적 삶이 지구와 우리 미래에 훨씬 더 직접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실천하는 생태적 삶이 개인과 이웃, 마을을 지속 가능한 삶터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굳은 믿음과 확신에서 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