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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다양한 촌 라이프 실험할 완충지 만들어 촌 생태계 가꾼다
유지황 팜프라 대표 2023년 07월호

 
봄엔 유채꽃, 가을엔 메밀꽃이 피는 다랑논과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경남 남해군 두모마을엔 여섯 채의 목조건물이 모여 있는 ‘팜프라촌’이 있다. 판타지 촌(farm) 라이프에 필요한 인프라(infra)를 만드는 스타트업 ‘팜프라(Farmfra)’가 만든 마을이다. 2012년부터 농촌 생태계와 청년 이주정착 문제를 들여다보며 촌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고 있는 유지황 대표를 만나 지속 가능한 촌의 모습을 생각해 봤다.

팜프라 이야기를 듣기 전에, 농촌을 들여다본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먹을 것을 키워낼 힘(食), 안전한 생활 공간(住)과 교육(學)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에 기반한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농사와 기술에 관심을 갖고 국내 농촌을 돌아다녔는데 자꾸 ‘미끄러’졌다. 시골에 청년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도 정작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농지를 빌려 농사해도 금세 쫓겨났다. 토지와 연고 없이 지역에 정착한 청년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해외에선 나 같은 청년들이 농촌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살펴보러 유럽, 일본, 호주, 동남아 등 14개국 35개 농장을 2년여간 돌아다녔다.

해외 농촌 상황은 어땠나?
우선 2013년 일본의 에가오 츠나게테라는 비영리단체를 방문했는데 농촌 자원과 도시의 필요를 연결하는 도농교류로 청년의 정착을 돕는, 당시엔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농촌 자원을 활용하고 있었다. 유럽은 청년이 지역에 정착해 농사할 수 있게 주거, 토지, 수익모델, 네트워크,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2, 3대째 농사를 지은 농업인들이 자기가 가꾼 땅과 소비자 네트워크를 청년에게 내주고 농부로 살아갈 기회를 주더라.

여행에서 돌아온 후 집을 먼저 지었다고.
한국이든 해외든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 반경을 결정짓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집이 있어야 자립할 수 있고, 또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시작한 게 6평짜리 이동식 목조주택을 짓는 ‘코부기(Cobugi) 프로젝트’다. 한 채를 짓는 데 순수 재료비가 1천만 원이고, 토목 공사나 각종 전기 설비까지 따지면 최소 1억 원이 든다. 코부기는 집을 들고 이동하는 동물인 거북이에 코퍼레이션의 앞 글자를 더한 거다. 당장 내가 살 집이 필요하기도 했고, 땅이 없으니 화물 트레일러로 이동할 수 있어야 했다. 고맙게도 한 건축가가 투자해 줬고, 기초부터 인테리어까지 총 70가지 공정을 배워 코부기를 지을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초보도 할 수 있는 ‘DIY 집짓기 워크숍’을 진행하게 됐다.

그 뒤로 ‘팜프라’를 구상하게 된 건가?
그렇다. 팜프라는 청년 당사자로서 주거, 토지(자본),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지역에 정착해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지금까지는 청년들이 도시로 갈 거라 보고 정착 시스템이 만들어졌는데, 나와 다음 세대에서는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 지역소멸이나 농촌 문제의 대안을 찾을 수 있길 바랐다.

왜 남해 두모마을에서 팜프라를 시작하게 됐나?
당시엔 청년기본조례가 제정되지 않아 지자체를 찾아가 마을의 폐교나 체험관 같은 공유지를 활용해 청년 거점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해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전혀 없었다. 그때 좌절하고 팀이 해체될 뻔했다가 마지막으로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곳, 사람들에게 ‘판타지 촌 라이프’를 경험하게 해줄 바다와 산이 있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상점 하나 없고 버스도 하루에 몇 대 안 다니는 ‘완전 시골’에서 뭐라도 이뤄내 매뉴얼화해 두면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할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두모마을 이장님을 만났는데 “10년 뒤면 이 마을에 나 혼자 남을 것 같다”며 마을에 있는 폐교(양아분교)를 이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셨다. 그곳에서 ‘팜프라촌 시즌1 살아보기’와 ‘팜프라촌 시즌2 벌어보기’ 프로젝트를 각 105일, 5개월간 진행해 볼 수 있었다. 이후 학교 옆 토지를 매입해 시즌 1·2 때 만든 코부기와 목공기술을 익히는 공방, 코워킹라운지를 둘 수 있게 됐다.

팜프라의 수익모델이 궁금하다.
스테이, 주거 공간 만들기, 작업복 판매 및 웍스(목공) 멤버십을 중심으로 수익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학교와 협업해 청소년·청년에게 지역모델을 발굴하는 창업 교육도 한다. 요즘 준비하는 프로젝트는 유형별 촌 라이프를 탐구하는 ‘팜프라 워크북’이다. 성향 테스트 후 유형별 매뉴얼에 따라 활동해 보며 소득에 맞는 주거 유형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가늠해 보는 실험 등을 한다.

어려움이나 고민도 있겠다.
고정된 수익화를 시도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1차 생산으로 판매하는 것 말고 무엇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고민했고, 현재 팜프라 멤버 3명과 함께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거기서 돈도 되고 재미도 있고 사회적인 가치도 있는 것을 발굴해 장기적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또 퍼머컬처에도 여전히 관심이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으로 유기농, 자연농이 떠오르고 있지만, 농부가 책임져야 할 생산량은 많은데 인력이 부족한 우리 농업사회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농사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해 농업법인을 고집하고 있다(웃음). 

팜프라촌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
연령과 직업, 방문목적이 다양하다. 두모마을에 정착한 사람도 있고, 다른 지역에 이주 정착한 사례도 있다. 이미 시골에 사는 청년들이 오기도 하는데, 촌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가는 것 같다. 다음 주엔 디지털 노마드 친구들이 와 텃밭에서 먹을 것을 수확하며 워케이션으로 지내기로 했다. 이런 경험서비스가 그저 숙박이 아니라 촌 생활을 삶의 유형 중 하나로 인식하고 고려하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귀촌하려는 사람은 꽤 있는데 와서 살 수 있는 집이 없다. 이렇게 빈집, 빈 땅이 많은데도 말이다. 귀농인의 집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수가 많지 않은 데다 1년 뒤면 나가야 한다. 한편으론 네덜란드처럼 휴경지를 활용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 농업을 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소비자 직거래를 통해 농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지역 네트워크 플랫폼을 만들고 싶은데, 남해에는 직거래 마켓을 운영해도 직접 수확하거나 구매할 소비자가 없다. 또 귀촌을 꿈꾸는 여러 청년을 만나며 깨달은 것은 이들에게 귀촌이 곧 농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농업 생태계 변화가 필요하고 청년들이 농업에서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이 있다면 청년들이 알아서 농업에 뛰어들지 않을까? 마을의 공유지가 이러한 귀촌 희망자들의 ‘완충지’로 적극 활용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달라.
현재 코부기를 스테이로 쓰고 있어서 멤버들 집이 없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12평 주택을 여러 채 지어 느슨한 공동체 커뮤니티도 만들고 멤버들도 분양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내년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다른 계획은 플랫폼을 만들어 전국 마을 이장님의 농사·생활·기술 정보를 모아 데이터화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회사 규모를 더 키워 생산·유통망을 개선할 수 있는 생산자 협동조합을 만들고, 다음 단계로 로컬투자회사를 설립하는 장기 로드맵을 세웠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차근차근 해나갈 계획이다. 
신정아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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