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우리나라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지난 3월에는 대구의 한 10대 청소년이 머리와 목을 크게 다쳐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엔 부모들이 자녀의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위한 접수대기표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우리나라 필수의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수의료란 적절하게 제공되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다. 이러한 필수의료에는 응급의료·외상·암·심뇌혈관질환·중환자·중증감염병 등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의 의료서비스뿐 아니라, 임산부·신생아·소아 질환 등 반드시 필요함에도 지리적 문제 또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의료서비스들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저수가, 의료분쟁에 따른 민형사상 부담 가중, 장시간 근무 등 열악한 근로여건으로 의사들의 필수의료과 기피 현상이 뚜렷하다. 올 상반기 진료과목별 전공의 충원율을 살펴보면, 안과(175%), 성형외과(161%), 피부과(158%) 등은 정원 초과인 반면, 소아청소년과(16.3%), 흉부외과(51.4%), 산부인과(71.9%) 등은 정원 미달이다. 심지어 2020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필수의료 전문과목을 취득한 기존 전문의들마저 ‘인기과’로 전향해 다른 진료과에서 진료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의 경우 필수의료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2022년 국토연구원 발표 자료에 의하면 가임여성 인구 10만 명당 산부인과 의원 수와 소아청소년 인구 10만 명당 소아청소년과 의원 수는 서울이 각각 16.6개와 31.7개인 반면, 전남은 각각 5.5개와 8.5개로 지역별 필수의료 격차가 상당히 크다.
지역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화가 지역 필수의료 악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설립 경쟁은 지역 내 환자와 의료인은 물론 지방의 인력까지 무분별하게 흡수해 지역 의료체계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단순한 의대 정원 확대는 수도권·지방 간 필수의료 격차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지역 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의대 교육이나 수련 과정에서 지역 의료 경험 과정을 더 늘려야 한다. 출신 지역이나 의대·수련 지역이 지방인 경우 근무지 역시 지방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역의 상관성을 고려해 지역 개원의원이나 거점의료기관에서의 수련경험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비수도권 의대에서 지역 출신 학생 선발 비율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 선발비율을 30%에서 40%(강원·제주 20%)로 확대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선발비율을 탄력적으로 적용·운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 지역 의료 수련 시 주거, 임금, 복리후생, 해외학회 참가, 학술활동비 등 안정적 생활 및 수련환경을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수련의의 도시지역 집중을 통제하기 위해 지역별 수련병원 정원을 재검토하며, 지역별 수련 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