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살이를 위해 제주로 이사 오기 전, 잠깐 살았던 도시는 새벽이면 싸한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가구공단 때문이라고 했다. 몸이 가려웠고, 당시 세 살이었던 아이도 그랬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공기가 좋은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번개가 치듯 섬광처럼 떠오른 곳이 제주도다. 공기 하면 제주 아닌가. 마침 제주가 고향인 후배가 있어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동네를 물어보고, 인터넷으로 집 몇 곳을 알아본 후 비행기를 예약했다. 1박 2일 일정으로 집 세 곳을 둘러보고 첫 번째로 봤던 해가 잘 드는 집을 연세로 계약하게 됐다(제주는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연세가 보편적이다).
후배와 함께 부동산에 가서 계약서를 쓰려는데 테이블 위에 귤이 보였다. “귤 하나 먹어도 될까요?” 후배도 부동산 직원도 웃었다. 제주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육지사람뿐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식당 앞에도, 문구점에도, 빵집에도, 심지어 우체국에도 가져가라고 놓아둔 귤이 콘테나(플라스틱 박스)에 담겨 있다. 귤을 사 먹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결심에서 이사까지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제주 일년살이 붐이 일 무렵이었고, 제주 집값이 꿈틀댈 때였다. 대기가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육지와는 달리 여유 있던 어린이집 상황.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나는 집 근처 올레길을 반 코스씩 걸었다. 제주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녹색이 얼마나 많은 색을 담고 있는지, 파란색은 얼마나 많은 색을 품고 있는지 이곳에 와보면 안다.
처음 1년은 관광객 모드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매일 바빴다. 금세 한 해가 지났는데 제주에 못 가본 곳이 너무 많았다. 그동안 알던 제주 맛집이 블로그 홍보업체에 놀아난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가 이때쯤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1년을 연장했고, 또다시 1년의 끝이 다가오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제주만큼 유년 시절을 보내기 좋은 곳이 있을까? 아이를 제주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샀다. 지금은 제주에 내려온 지 10년이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됐지만 우린 아직도 제주를 떠나지 않았다. 아이는 제주어를 간간이 쓰며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내 고향 서울에 갈 때면 복잡하다고 빨리 집에 가자고 하는 제주 아이로 자랐다.
10년을 살았으면 이제 제주사람이 아니냐는 말을 듣지만, 여전히 육지사람은 육지사람이다. 태어난 곳이 그렇고 살아온 방식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나를 보는 제주 토박이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무뚝뚝하다 느꼈지만, 지금은 정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과거엔 제주를 즐기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제주를 탐구한다. 제주의 자연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해녀, 4.3 사건, 제주어, 식문화, 화산과 지질학, 돌고래와 환경, 감귤, 신화 등으로 이어지며 제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다.
오늘은 제주 토박이 언니와 육지에서 온 네 명이 모여 제주음식을 만들고 왔다. 메뉴는 갈치호박국과 구쟁기적갈(소라적)이다. 함께 요리하고 음식을 먹으며 육지와 제주의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소라적 때문에 자연스레 ‘식게’(제주어로 제사) 이야기로 흘렀다. 제주의 제사상에는 소라적이나 전복적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잔치나 제삿날에 ‘반’이라는 작은 접시에 음식을 조금씩 담아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똑같은 양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 누구든 온전히 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점이 인상 깊다. 식문화에 담긴 배려와 공평함에서 오래된 미래를 본다. 육지사람의 호기심은 계속된다. 내가 제주에 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