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정부에서 아동돌봄정책을 확대해 왔음에도, 현재 초등돌봄정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양적으로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 변화에 발맞춘 질적 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초등돌봄교실로 대표되는 ‘오후 돌봄’은 수요가 공급을 훨씬 넘어서고 있고, 보완 수단으로서의 지역아동센터는 여전히 저소득층 아동 대상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확장력을 상실했다.
영유아의 경우에는 10명 중 9명이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사정이 있는 경우 저녁 7~8시까지도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오후 시간 학교 공간에 머물 기회는 10명 중 2명 정도에게만 허용되는 게 현실이다. 가히 ‘초등돌봄 절벽’이다. 아이는 학원을 전전하거나 학교 밖 돌봄교실로 변신한(?) 태권도장에서 부모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분절화되고 수요 충족하지 못했던 초등돌봄,
돌봄·교육 융합과 함께 양적·질적 변화 중
그간 국가가 초등생 ‘온종일 돌봄’ 시행에 나섰지만 교사·돌봄전담사 등 이해관계집단을 중재하려는 용기는 없었다. 듣기 좋은 말은 많이 나왔지만, 온종일 돌봄은 온종일 기다림으로 끝났다. 돌봄체계 확대는 이뤄지지 않았고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 보건복지부의 지역아동센터와 다함께돌봄센터,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서비스와 청소년방과후 아카데미가 제각기 운영됐다. 특히 파편화한 초등돌봄체계를 개혁하겠다며 보건복지부·교육부가 공동 사업으로 시작한 ‘학교돌봄터’는 또 하나의 파편이 됐다.
분절적이며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초등돌봄 체계를 개혁하겠다는 시도는 정치 진영을 떠나 수년 전부터 정치 어젠다로 사실상 합의를 본 채 담론 차원에서 지속됐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라’를 자신의 20대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으며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 실현’을 위한 3대 영역을 제시했다.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자녀 돌봄부담 해소, 육아휴직 확대, 아빠·엄마가 함께하는 더불어 돌봄이 그것이다. 이 공약에 근거해 초등학교 ‘온종일 돌봄체계 모델’ 구축이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가 됐다.
2018년 8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가칭)더놀이 학교’ 도입 필요성과 쟁점을 논하다’라는 포럼을 개최해 국정과제 실천을 시도했다. 초등학교 과정 오후 돌봄·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한 것이다. ‘더놀이 학교’는 독일의 전일제 학교를 비롯해 다른 선진국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초등 오후 돌봄·교육 프로그램의 한 유형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 ‘저출생대책 특별위원회’도 ‘전일제 교육 도입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통해 ‘한국형 전일제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국정과제인 ‘온종일 돌봄체계 확대’를 완수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전일제 학교 도입 논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결국 국정과제로서 온종일 돌봄은 제대로 확대되지 못한 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됐다.
이와 함께 단순한 돌봄이 아닌, 초등학생의 성장기 욕구에 걸맞은 교육을 서비스로써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도 나타났다. 돌봄과 교육의 융합서비스로 초등돌봄체계, 아니 초등교육·돌봄체계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양대 거대정당 후보는 인식의 일치를 보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돌봄국가책임’을 5대 비전, 20대 핵심 추진과제 중 12번으로 선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제안한 더놀이 학교 개념을 이어받아 초등돌봄에 교육을 더한 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지고 제공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부모의 육아 재택근무 지원, 유보통합, 초등전일제 교육 실시, 초등돌봄 8시까지 확대’를 약속했다. 이는 미래통합당이 제안했던 전일제 학교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전일제 학교는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가 됐으며 ‘늘봄학교’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됐다. 2023년부터 늘봄학교 시범운영을 시작했는데, 학부모의 좋은 반응과 교사들의 업무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서서히 확대되고 있다.
초등돌봄교실 근본적 개혁 위한 첫 단추는
‘늘봄학교 지원특별법’ 등 법률적 토대 마련하는 것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춰 교육과 돌봄을 융합한 ‘늘봄학교’는 교육을 하는 돌봄, 돌봄을 하는 교육이라는 매우 낯선 개념을 실천하는 변화다. 늘봄학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행복이다. 부모의 일가정 양립, 사교육비 부담 경감, 공교육 정상화 등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수적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늘봄학교 도입 및 확대 과정에서 무엇보다 아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새로운 가치의 교육으로서 문화예술, 체육, 기후환경, 창의과학, 심리정서 분야 등에서 양질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의 실천 과정에서 지역 격차를 해소하고 교육·돌봄의 융합서비스라는 개념을 지속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교육 허브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교육부가 ‘늘봄허브’를 구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늘봄허브의 효율적·효과적 운영을 위해서는 현재 늘봄학교 프로그램 개발·운영 사업자 선정 등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적극적이며 효율적인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교육기부 여건 개선을 통한 기업의 적극적 참여도 요구된다.
그런데 아이들이 행복한 성장 환경을 만들어갈 때 그 환경에서 함께하는 교사들의 부담이 증가해 결국 행복하지 않은 교육서비스가 제공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아이들의 지속 가능한 행복도 실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학교 공간의 재구성, 지원체계 구축, 교사와 돌봄전담사 간 명확한 역할 정립 등을 통해 교사의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예방할 뿐 아니라 부담을 더 줄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 도입돼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하려면 가칭 ‘늘봄학교 지원특별법’ 등 관련 법 제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법률적 토대 없이 2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는 초등돌봄교실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변화의 첫 단추를 새로운 법률 제정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부모가 만족하며 교사의 부담이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면서 돌봄전담사 및 방과후강사의 처우가 개선되는 늘봄학교가 아동돌봄정책의 게임체인저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