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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징검아는 다양한 아이를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입니다”
박혜수 징검다리 놓는 아이들 대표교사 2024년 02월호



“우리 마을에서는 아무나 붙잡고 전화를 빌려달라고 해도 되고, 밤에 어딜 다니든 무섭지 않아요.” 부산 북구 대천마을의 육아협동조합 방과후학교 ‘징검다리 놓는 아이들’(이하 징검아)에 다니는 한 아이의 글이다. 이 아이는 마을에서 어떻게 이런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19년째 징검아에서 공동육아를 실현하고 있는 박혜수 대표교사에게 그 비결을 들어봤다.

징검아는 어떻게 시작됐나.
1999년 공동육아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모여 육아협동조합을 결성했고, 동시에 쿵쿵어린이집을 설립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초등학생 대상의 방과후학교가 필요했다. 자연스레 징검아가 만들어졌다. 처음엔 어린이집의 한 반으로 있다가 수요가 많아지면서 2004년 독립했다. 현재 교사 5명과 초등학교 1~4학년생 37명이 함께하고 있다. 조합원은 학부모 및 교사로 구성돼 있고, 아이들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조합원 가입·탈퇴가 자유롭게 이뤄진다. 전국적으로 이런 협동조합 형태의 방과후학교가 14개 있다.

보편적인 돌봄모델과는 다소 달라보인다.
그렇다. 아이와 학부모의 상황이 각각 다른 만큼 돌봄 형태를 다양화해 선택의 폭을 넓혀야 돌봄 사각지대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이나 민간 돌봄이 확대돼도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학교돌봄은 고학년을 포용하지 못한다. 성향상 하루 종일 학교에 있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그러니 다양한 아이를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그릇이 필요하다고 본다. 징검아도 그런 그릇 중 하나다.

협동조합 방식의 방과후학교는 어떤 점이 다른가?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해서 부모들과 얘기하는 게 굉장히 긴밀하다. 협동조합이 아니었다면 교사와 부모가 이 정도로 긴밀했을지 모르겠다. 나도 조합원이다. 교사지만 조합원으로서 함께 이 조합을 꾸려가고 고민하고 있다. 불편한 부분이 생기거나 부조리한 게 보였을 때, 누군가한테 이걸 고쳐 달라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고칠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고 불편해 보이지만 이것이 우리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나라의 재정지원 없이 조합원의 출자금으로만 운영된다는 것도 매우 큰 차이점이다.

학교돌봄에 비해 비용도 품도 많이 들 텐데도 학부모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징검아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정말 안전하고 믿을 만한 곳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이도 아주 잘 아는 이웃이 많다는 장점이 커 특히 맞벌이 부부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직장에 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면 교사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갈 거고, 갑자기 태풍이 불어도 누구누구네가 아이를 맡아줄 거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징검아’를 선택한 큰 이유라고들 말한다.

아이들이 안전감을 느낀다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맞다. 아이들이 ‘지금 우리 엄마 아빠가 없어도 나를 충분히 돌봐줄 수 있는 어른이 이 마을에 있어’라고 느낀다. 그게 공동육아의 가장 큰 동력인 것 같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공동육아의 대명제가 실천되는 것이다. 부모는 물론 공동체 구성원이 육아의 담당자로서 우리 사회의 미래 성원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양육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로 공동육아의 핵심 개념이다.

마을이 함께 돌보는 시스템은 어떻게 가능한 건가.
과거에 조합원으로 가입해 아이를 맡기셨던 분들이 마을 곳곳에 계시고, 이분들이 마을에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마을에서 어려움이 있거나 하면 마을 분들이 이 네트워크를 통해 도움을 주신다. 공동육아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마을에서 아이가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을 사람들이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보살펴 준다.



아이들은 대천마을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
아이가 스스로를 중요한 마을 구성원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 활동을 4학년 과정에 넣었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마을의 간판을 매개로 궁금한 점을 취재해 마을 가게 이야기를 수집한 뒤 그 내용으로 마을 기록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런 활동에 마을 어
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다. 취재도 흔쾌히 승낙해 주시고, 아이들을 굉장히 존중해 주신다. 3학년은 업사이클링으로 만든 물건을 마을 사람들에게 판매해, 그 수익의 50%로 마을 도서관에 책 기부를 했다. 이런 식으로 마을과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지향하고 있다.

학습도 병행하고 있나?
1학년은 글자를 배우고 1·2학년은 수학을 놀이나 생활을 통해 배우는 활동을, 3·4학년은 다양한 주제로 프로젝트 활동을 한다. 그 외에 각자 학교 숙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습 활동 자체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공부는 자신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맥락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또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성장의 기쁨을 느끼고, 자신이 커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 진정한 자존감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중요한 목적이다.

교사 생활 동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내가 처음 담임했던 아이가 커서 지금 함께 교사를 하고 있다. 졸업한 후에도 계속 연락하는 친구들이 많고,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여름 들살이(캠프)에 보조교사로 합류할 때도 있다. 사회복지학과에 간 한 친구는 조별 발표 준비를 위해 조원들을 이끌고 와서 조사를 하고 가기도 했다. ‘이 아이들 마음속에 이곳이 꽤 괜찮은 곳으로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여기서 계속 일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방과후학교 운영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우리에겐 협동형 돌봄센터의 법제화가 큰 과제다. 초등돌봄의 다양화 등 질적 확장도 필요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단편적·피상적이지 않은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을 고민하는 집단인 징검아 같은 형태의 돌봄센터도 법적 인정을 받아서 초등돌봄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 좋겠다. 법적으로 인정이 안 되다 보니 교사 모집에도 어려움이 크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이들도, 아이들의 욕구도, 아이들의 필요도 끊임없이 바뀌니 대표교사로서 자기 동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공부할 작정이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려고 한다.

 
이정미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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