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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엄마 아빠에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주는 정책이 더 필요합니다”
고병찬 신용보증기금 기업구조조정센터 차장 2024년 03월호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잠시 직장 일을 내려놓는 육아휴직은 주로 여성의 몫이었다. 그러나 가정 내 역할분담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 최근에는 남성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가정과 직장을 균형 있게 이어나가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자신의 경우가 결코 특별한 사례로 인식되지 않길 바란다는 고병찬 신용보증기금 기업구조조정센터 차장의 육아휴직기를 통해 아빠의 양육 참여가 아빠 개인과 아이, 가족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리고 한 평범한 아빠가 일과 가정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고 있는지 알아봤다.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된 동기는?
아이를 낳으면 1년씩 번갈아 육아휴직을 쓰자고 아내와 합의돼 있었다. 맞벌이 부부인데 엄마라는 이유로 가사와 육아의 짐을 혼자 짊어지게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육아를 돕지 않았다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웃음).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통해 강한 유대감, 애착관계를 만들고 싶어서다. 2021년 7월 출산 후 아이 엄마가 먼저 1년을 휴직하고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는 내가 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부부간 합의사항이긴 했지만 아내는 내 판단에 고마워했다. 남동생은 비슷한 세대다 보니 “당연히 같이 돌봐야지”라고 했는데, 어른들은 아무래도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회사 승진엔 지장 없어? 괜찮아?”라는 염려가 좀 있었다. 직장 내에서는 아빠의 육아휴직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겠냐는 일부 시선이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격려와 응원을 많이 받았다. 특히 휴직 전 근무지의 상사는 지지의 메시지와 함께 선물까지 주시며 나의 선택에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줬다.

육아휴직을 앞두고 제일 걱정했던 건 무엇인가?
아이가 신생아일 때부터 돌 때까지 많은 것이 서툴고 어려워서 아이 돌보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호기롭게 육아를 전담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직장생활 하면서 퇴근 후에만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것과 하루 종일 육아를 전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지 않은가. 아이는 내 사정을 봐준다거나 쉴 틈을 주지 않을 것이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 될 텐데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24시간 아이하고만 함께하는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직장에서의 풍부한 인간관계와 소통의 과정이 없어지다 보니 사회적 관계의 단절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면서 가정 내 역할은 어떻게 분담했나?
우리 부부는 역할을 미리 정해놓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성향이다. 내가 청소하고 있으면 빨래는 아내가 하고, 내가 요리하면 아내는 설거지하는 식으로 서로의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하는 편이다. 다만 일의 완결성에 대한 기준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불협화음이 있을 수는 있다. 내가 육아휴직 중일 때는 주중 육아와 가사는 거의 내가 전담하고 주말에는 대체로 서로 나눠서 했다. 지금은 둘 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힘에 부치면 유료 서비스를 받는 식으로 부부간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있다.

육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기간 내내 모유수유를 했고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유식 만드는 모든 과정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직접 해냈다.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갈 때 아내가 당부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것만큼은 본인의 원칙에 따라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아이의 먹을거리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다. 아내와 가끔 ‘녹두’ 얘기를 한다. 아내가 이유식으로 녹두죽을 만드느라 몇 시간씩 공을 들였다. 나도 육아휴직 중에 녹두껍질을 하나하나 까서 녹두죽을 완성하는 데까지 10시간이 걸렸다(웃음). 다행히 아이가 엄마 아빠의 정성을 알았는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줘서 참 기뻤던 기억이 있다.

육아를 전담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했나?
아이랑 계속 붙어 있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이 매우 부족했고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았다. 이런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고 쌓이니 주말이나 휴일에는 혼자라도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장소만 바뀌어도 조금이나마 활력을 찾을 수 있으니까. 아이가 18개월이 되고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여유가 생겼다. 운동하면서 체력도 키우고 여유 있게 커피 한잔하면서 멘탈 관리도 할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육아휴직 때 꼭 해야겠다 생각한 게 아이와 둘이서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아이와 단둘이 추억을 쌓기도 하면서 아내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아이가 15개월이었을 때 단둘이 일주일간 본가에 가게 됐다. 그런데 KTX를 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1주일 치 짐을 챙겨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아이가 어리다 보니 역에서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다. 곳곳에 장벽이 산재해 있었다. 결국 본가에 도착해 어른들이 함께 아이를 돌봐주시면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직 기간이 끝나 직장으로 복귀할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었나?
어떤 상황에서든 업무에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은 휴직 전이나 후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육아휴직 후에 회사로 복귀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주변 동료들을 조금 더 배려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전에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에 대해 막연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런 상황들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고 배려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경험자로서 아빠의 육아휴직이 일·가정 양립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육아는 같이하는 것’이라고 할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아이와의 균형 잡힌 애착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데도 아빠의 육아휴직은 매우 중요하다. 엄마만의 육아휴직으로 끝났다면 아이의 애착관계가 엄마 한쪽으로 쏠렸을 것 같다. 또한 아이 엄마에게만 육아를 맡겨놓았다면 알 수 없었을 아이의 성장 과정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부부간 신뢰와 공감대도 더 강해진다.

엄마의 ‘일할 권리’, 아빠의 ‘돌볼 권리’가 잘 보장되려면 어떤 점들이 개선돼야 할까?
아직도 아빠의 육아휴직이 특별한 일로 여겨지며, 소규모 업체에서는 사용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는 아빠의 육아휴직이 유별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닌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또한 육아기의 부모에게는 근로시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 정책이 금전적 지원에 치우친 느낌이 들어 아쉽다. 우리 아이는 우리가 직접 키우고 싶다. 밤 9시까지 보육을 지원하는 것보다 부모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아빠가 육아휴직하는 게 당연한 거지, 육아기 단축근무하는 거 당연하지”라고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아울러 많은 매체가 워킹맘을 ‘아이에게 미안하고 회사에도 죄인’이라는 식으로 다루고 있어 안타깝다. 일하는 부모가 직장과 가정에서 죄책감 없이 떳떳할 수 있길 바란다.
이정미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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