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이 팽창일로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우리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경제학자이자 교육연구자인 김희삼 GIST 기획처장을 만나 인구구조 변화 속 우리 교육시스템과 미래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의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사교육비 부담과 저출생이 어떻게 연관돼 있다고 보시나?
우리 교육시스템은 모두가 대입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점집중형’이다. 이런 구조에서 ‘우리 아이가 사교육을 덜 받으면 혼자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불안감이 크다. 게다가 뒤처진 아이들이 아니라 명문대 사정권에 들었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이 사교육을 더 많이 받고 있는데, 그게 사교육 효과처럼 보여 모방 사교육을 상당 부분 부추기고 있다. 평범한 부모 입장에서 사교육비는 상당한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될 것이다. 아이를 이미 키우고 있더라도 이런 부담에 아이를 더 낳기보다 1명에 투자를 집중하게되고,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혹은 사교육의 당사자였던미래의 부모는 아이를 낳아 교육을 시킨다는 것 자체를 인생에서 매우 도전적인 과제로 느끼게 된다.
결국 우리 교육시스템이 문제일까?
우리나라는 경제발전 단계에 맞춰 초·중·고·대학 순으로 공교육을 확대했다. 교육 인프라는 부실했지만 산업 발전 단계에 맞는 인력을 적절하게 공급했고, 이것이 성장에 큰 동력이 됐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은 질적으로 담보가 안 됐다. 또한 공교육은 효율성·형평성·타당성 면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효율성 면에서 보면 OECD 학업성취도(PISA) 평균 성적은 높지만 투입 시간당 성적은 하위권이다. 선행·반복 학습을 유발하는 경쟁체제가 원인이다. 형평성은 평준화나 사교육 금지로 상당 부분 이뤘으나 그런 조치가 어떤 면에선 획일화를 가져왔고, 이를 보완하려던 시도는 일점집중형 경쟁체제하에서 수평적 다양성이 아닌 수직적 서열화를 만들었다. 고도성장의 시대에 계층 사다리 역할을 했던 교육이 지금은 오히려 계층 대물림의 통로가 됐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지금 배우고 가르치는 내용과 방식이 미래 사회의 인재를 길러내는 데 적합한지를 의미하는 타당성에도 문제가 있다.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할까?
과거에는 학교보다 효과적인 지식 습득 방법을 찾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사교육 학원뿐 아니라 무료 온라인 강의, AI 기반 맞춤형 학습, 생성형 AI 등 배움의 경로와 방식이 기술 발달과 함께 다양해졌다. 이런 대안들이 있는데 왜 애들을 굳이 학교로 불러 모았는지에 대한 답을 학교가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공교육의 초점이 과거 지식의 전달·전수에서 ‘사회 자본’과 ‘심리 자본’의 함양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심리 자본은 자아 존중감, 회복 탄력성 같은 것이다. 사회 자본은 인적 네트워크를 포함해 신뢰, 협력, 연대의식, 규범 준수 등 사회생활과 사회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합친 개념으로, 본질적으로 사람 간 관계에서 파생하는 만큼 또래 집단이 배움의 과정에서 중요하다. 그 또래 집단을 체계적으로, 연속적으로 만나기 가장 좋은 공간이 바로 학교다.
학교에서 사회 자본을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은?
스포츠·음악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공동체 의식과 협동심을 키울 수 있겠지만, 사실 수학·과학 등의 교과 수업에서도 그런 교육을 구현할 수 있다.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를 보면 수업이 일방향 강의식인지 모둠활동 등을 통한 학생중심형·소통형의 수평적 수업인지에 따라 수업을 통한 학생들의 사회 자본 혹은 사회 자본에 대한 의식의 함양 정도가 달라졌다. 평가도 절대평가로 가야 한다. 사회 자본의 기초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선 학생들이 ‘무임승차’를 우려해 팀 과제에 거부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때 제도적으로 평가 등을 잘 설계해 친구들과 과제를 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교사가 이끌어줘야 한다.
미래 인재는 경쟁보다는 협력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인가?
굴지의 IT 기업 인사 담당 임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원하는 인재는 T자형(융합형) 인재인데, 실제로는 찾기 어렵고 거의 I자형이라고 한다. I자형은 전공 분야 지식은 뛰어나나 다른 분야의 상식이나 지식이 부족해 새로운 일에 매우 취약하다고 한다. T자형을 조금 확장하면 막대사탕형, 거울형이 된다. 막대사탕형 인재는 누구와도 접점이 있어 협업이 가능하다. 학생들이 세상의 변화에 직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이질적 학생들 간 다양한 활동을 통한 교육을 시도해 봤으면 한다. 문·이과 학생들과 예·체능계 학생들, 나아가 살아온 지역이나 환경이 다른 학생들 간 협업을 통해 종합적 사고를 하고 서로 간의 접점들을 찾아낸다면 이들이 바로 미래의 인재상인 막대사탕형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시스템 전체로는 어떤 변화가 가장 중요한가?
‘출발선’을 ‘출발원’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일점집중형 경쟁은 동일한 출발선에서 누가 더 빨리 선호하는 직종, 직업에 골인하느냐다. 정원이 한정돼 있으니 명문대, 의대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목표가 한 방향으로 정해져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한 출발선에서의 단선적인 경쟁이다. 그런데 이것을 출발원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해진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출발원에 서 있는 아이들이 기본적인 것들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학력뿐 아니라 미래 인재에 요구되는 비판적 사고, 창의성, 소통, 협력, 시민의식에 소위 ‘3L’이라고 하는 인간·기술·데이터 리터러시가 교육돼야 한다. 이처럼 출발원을 만들어주는 교육을 ‘햇살형 교육’이라고 부르고 싶다. 출발원 안에서는 360도 방향으로 뛰면 모두 1등 할 수 있는데 우리는 한 방향으로만 뛰니까 “너는 0.5점 부족하니 불합격이야”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가 바뀌어야 할까?
먼저, 유치원 교육은 양질의 교육으로 의무교육화해야 ‘영어 유치원’으로 시작하는 사교육 경쟁을 낮출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는 교육과 돌봄을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선 저녁에 아이를 데려가도 됐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1시면 끝난다. 그러니 저학년 때부터 아이들이 학원 뺑뺑이를 돌고, 엄마의 경력 단절이 생긴다. 늘봄학교가 안착하면 차라리 선진국들처럼 초등학교 시수를 오후 3~4시까지로 늘려 사회 자본과 심리 자본을 함양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많이 할애하면 좋을 것이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변화도 중요해 보인다.
교육시스템의 성과가 높은 핀란드의 특징 중 하나는 중학교 과정의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9명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나 고등학교보다도 낮은데, 이렇게 교사 수를 확 줄여놓은 것은 그때가 그래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중2병’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특히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중학교 때 “나는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가, 뭘 할 때 몰입할 수 있는가”를 알게 해줘야 한다. 중학교로 교사를 많이 보내 각각의 아이들이 세심한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 시행 시 전문적인 외부 강사와 외부 교육자원의 활용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학은 지역의 평생학습 기관으로서, 실업자·재직자·시니어까지 포함한 성인학습자들에게까지 다양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