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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망해도 한국이 망하는 거지 제가 망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강윤주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2024년 05월호

인구절벽 위기에 맞서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 ‘젊은 꼰대’ 같은 질문에,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대학생은 해맑게 웃으며 응수했다. “망해도 한국이 망하지 제가 망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 말엔 대한민국에 그 어떠한 희망도 품지 않겠다는 절망과 냉소가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저출생이 이대로 계속 심화된다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라는 유명 석학의 섬뜩한 경고가 나온 지도 벌써 17년. 그러나 한껏 쪼그라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할 인구위기의 당사자인 청년들에게 국가소멸이라는 충격 요법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나라가 곧 망한다는데도 무덤덤했다. 그들에게는 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보다는 당장 연애·결혼·취업, 모든 게 다 불안정하고 희망 없는 지금의 삶에 대한 체념과 분노가 더 커 보였다.

인구감소 위기와 대응책을 조명한 ‘절반 쇼크가 온다’ 창간기획 취재를 위해 만난 20대 청년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이랬다. “연애, 결혼, 출산 그게 뭐죠? 먹는건가요?” 그러니까, 당장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막막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거다.

과거 부모 세대의 연애·결혼·출산은 각각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맞물려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과 같았다. 그러나 지금 청춘들에게 연애·결혼·출산은 각각이 ‘힘겹게 넘어야 할 높은 장애물’과도 같다. 그들이 세상에 보내는 ‘연애·결혼·출산 파업 전상서’에 가득 찬 절규를 더 살펴봤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포기를 강요당한 것”

“제 삶도 버거운데 연애는 사치죠” 점심 한 끼에 20만 원이 넘는 오마카세를 즐기거나, 기념일 때마다 호캉스 떠나기가 특별하지 않다는 게 절반 세대(연도별 출생아 수 기준으로 부모 세대의 절반인 인구 집단에 속하는 세대. 〈그림〉 참고)가 전한 요즘 데이트 풍속도다. 요즘 청춘들에게 사랑은 SNS로 중계되는 보여주기 경쟁이다. 그러나 물질에 집착할수록 비교에서 오는 피로감이 쌓인다. 연애는 그래서 버거워진다. 

“결혼이요?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권 아닐까요?” 결혼은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됐다는 소설가 김영하의 평처럼 대한민국에서 결혼·출산은 일종의 ‘특권’이 됐다. 부모가 집을 물려주거나 결혼 자금을 지원해 줄 수 있느냐에 따라 ‘수저론’이 시작되고, 본인이 전문직으로 고소득이 가능하냐에 따라 ‘라이선스 만능론’이 위력을 발휘한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만나 가정을 꾸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결혼은 한국 사회에서 대물림되는 계급을 드러내는 인증마크다.

여기에 출산은 그 자체로 불안과 공포다. “나를 잃어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커요. 몸도 망가지고, 쌓아 올린 커리어가 결혼과 출산으로 한순간에 저당 잡힐까 봐 너무 무서운 거죠.” 아이를 낳는다면 남부럽지 않게 제대로 키워야 하는데 그럴 자신은 없다거나 결국 본인도, 아이도 불행할 것 같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유치원, 초등 의대반 등 무한 경쟁에 자신을 갈아 넣고 한 번의 입시로 직장, 결혼의 ‘레벨’이 결정되며, 부모의 경제적·시간적 도움 없이는 집 장만뿐 아니라 아이 양육마저 꿈도 못 꾸는 현실. 결혼과 출산의 계급 대물림이 더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청춘들의 공포가 어리석다고만 할 수 있을까.

①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 배우자와 자녀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 ②내 커리어와 돈, 시간은 뻔히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박탈감. ③완벽한 조건에서 시작하지 못할 바에야, 처음부터 포기하고 말겠다는 중압감. 청년들이 뽑아낸 연애·결혼·출산의 마이너스 항목은 이랬다. 심리적 안정, 자녀가 주는 행복, 외롭지 않은 노후 등 결혼·출산의 이점도 분명히 있지만 절반 세대는 그 단계에 갈 때까지 감당해야 하는 비용과 손해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를 두고 일각에선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책임감 넘치는 판단을 하는 중이다. ‘아이를 낳지 않을 결심’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인 동시에 불행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그들만의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으려면

청춘들은 되물었다. “내가 살아온 생이 행복하지 않은데,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굳이 아이를 낳아서 나의 불행을 또다시 대물림해야 할까요?”

그리고 요구했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만 하지 말고 태어날 아이도, 키우는 어른도 행복한 세상을 먼저 만들어달라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갈수록 쪼그라드는 대한민국 인구 규모에 맞춰 사회 시스템을 하나하나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지금껏 기성세대가 누려온 세상의 틀을 바꿔나가며 미래 세대가 존속할 세계를 함께 준비하는 일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과 포기만을 강요해서는 결코 풀리지 않는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성세대는 “인구가 줄어 사회가 무너질 위기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라는 훈계와 호통만 반복해 왔다. 수백조 원을 쏟아붓고도 백약이 무효한 저출생 대책을 만든 건 기성세대였다. 문제 진단부터 대안까지 그들끼리, 그들만의 리그에서 정해지고 있었다. 판을 확 새롭게 뒤집어야 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저출생에 따른 인구위기가 해결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화자(話者)’의 오류일지 모른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우!” 얼마 전 방영했던 인구위기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대학교수는 2022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0.78명)을 전해 듣자마자 머리를 부여잡으며 경악했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1.59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암담한 현실이 그에게는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현실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기 위해 기성세대는 절반 세대의 이야기를 나중이 아니라 지금부터 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길이다. 청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우리 모두의 미래와 공존을 위한 작은 경청이 대한민국 소멸을 막는 큰 시작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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