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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일본 사회의 저출산과 젊은이들의 각자도생
김항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024년 05월호

지난해 3월 1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출산율 저하 문제에 대해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지 약 30년이 된 현재, 아무런 유효한 방책을 찾지 못한 채 지난해 출생아 수가 처음 80만 명 아래로 떨어져 기존 예상보다 11년 빠른 감소세를 보였다.

사회체제 유지될 수 없는 ‘인구격감사회’

일본 의회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 3월 결성된 ‘인구감소 시대 극복 전략을 생각하는 의원연맹’이 있다. 초당파 모임으로는 이례적으로 활발한 회동을 거듭하는 이 모임에 지난해 3월 14일 인구감소대책 종합연구원 가와이 마사시 이사장이 연사로 초대됐다. 이사장의 입에서 각종 수치로 담담하게 예측된 미래는 그저 암울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2,800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전환돼 2053년에 1억 명을 밑돌 것으로 보이며, 2042년까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한편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는 급감해 ‘최악의 20년’이 예상된다. 또한 그는 90년 후에는 출생자 수가 18만 명 규모가 돼 현재 사회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인구격감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착잡했던 의원들의 표정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이런 인구 동향에 따른 위기의 양상들이다. 우선 인구감소에 따른 사회 붕괴는 인구 과소지역에서 이미 시작됐다. 학교, 병원, 소방서, 행정센터 등 공공기관뿐 아니라 마트나 음식점 등도 지역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사회 붕괴는 동심원적으로 중앙을 향해 가속화될 것이다. 경제의 혈맥인 유통 또한 큰 위기를 맞이해 2030년에는 35%의 물류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다사사회(多死社會)’가 도래한다. 2021년 144만 명이었던 사망자가 2040년에는 170만 명가량으로 증가해 병원이나 요양시설뿐 아니라 장례식장과 화장터 등 장례시설까지도 포화상태가 될 것이다. 현재 새로운 시설의 건설을 서두르고 있으나 지금의 증가세라면 2056년 이후에는 대응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하리라 전망된다. 망자의 빈 자리를 슬픔으로 달래고 공통의 기억으로 간직함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던 의례조차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침없이 다가오는 파국 앞에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여전하다. 30년간 막대한 예산을 지출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던 출산·육아 지원에 여전히 목을 맨다. 온갖 조사와 통계가 난무하지만 비혼자와 딩크족은 보란 듯이 늘어만 간다. 젊은 세대가 자기 이익에만 몰두해 결혼을 기피한다는 가부장제의 협박도, 불평등한 남녀의 고용 및 노동 조건을 개선하자는 양성평등의 반성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복지의 약속도 백약이 효과가 없는 지경이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상황에 탈출구는 있는 것일까?

출산율 저하의 원인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여성의 사회진출이다. 일본에서는 1971년 여성의 취업률이 약 50%였던 데 반해 2011년에는 65%로 늘어났고, 여성 취업률의 증가와 출산율은 반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노동하고 여성이 가사를 책임지는 핵가족 모델이 점차 해체됨으로써 출산율이 떨어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여성의 취업률이 높아진 북미 및 유럽과 비교해 보면 일본의 출산율 저하는 현저하다. 이 차이가 말해주는 것은 일본 사회의 성역할 및 노동형태가 가부장적 문화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정부 및 지자체가 저출산 대책으로 남녀 고용 평등 및 노동형태 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는 까닭이다. 출산과 육아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보다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애석하게도 젊은이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해가 갈수록 비혼 인구는 늘어나고 출산을 계획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결혼도 육아도 매력은커녕 아예 인생의 옵션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가부장적 문화 때문만일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부장제 문화에서만 그 원인을 찾는 한 탈출구는 요원할 것이다. 가부장적 문화를 지탱하는 일본의 노동환경은 세 가지 ‘무한정성’을 기조로 조성된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직무, 근무지, 노동시간의 무한정성을 말한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얼마나 일하는지에 대해 피고용자는 대부분 고용주의 지시에 따른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부장적 문화는 이러한 기업의 무한정성에 뿌리내리고 있다. 좀처럼 전문화되지 못하고, 언제 어디로 발령 날지 모르며, 집에 갈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노동환경이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성역할을 존속시켜 왔던 셈이다. 


젊은이들은 가정과 출산, 육아 모두 회피하며
직무·근무지·노동시간 무한정성에 필사적으로 적응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함과 동시에 이러한 노동환경을 매우 자연스러운 생태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남성도 여성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회사에 적응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일과 육아를 양립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도 결혼과 출산은 기피 대상이 된다. 남성도 여성도 세 가지 무한정성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다하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성역할의 강요는 없어졌다. 그 까닭은 양성평등 정책이 유효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젊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성역할 따위에 눈길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 가지 무한정성은 과거 남성과 여성 둘 중 하나는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문화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현재 그것은 남성도 여성도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가정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한다는 관념 자체를 해체한다. 가족과 아이 이전에 본인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오래된 회사 생태계에 적응한다. 성역할을 불평등하게 나눠 적응하는 대신, 이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가정과 출산, 육아를 회피하면서 회사 생태계를 지켜나가는 지킴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출산 대책이 30년 동안 아무런 효과가 없던 까닭이다. 젊은이들이 노골적인 각자도생과 능력주의를 내면화하게 되면서 양성평등 확대와 가부장적 문화의 일소조차 출산율 제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 사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고 깊다.

일본보다 더욱 맹렬한 속도로 인구감소를 경험 중인 한국 사회는 어떨까? 이 부분에서만큼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은 굳건하게 연대하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하면 과도한 위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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