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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68세의 무모했던 도전, 무한도전이 되었습니다
이정애 정애쿠키 대표 2024년 06월호

커피향 가득한 작은 카페에서 반갑게 손님들을 맞이하는 이정애 정애쿠키 대표. 68세에 늦깎이로 시작한 창업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도, 10년 5개월 동안 매일 아침 문을 열어 손수 만든 쿠키와 정성스레 직접 내린 커피를 내놓는다. 따듯하고 푸근한 미소는 덤. 정애쿠키는 단순히 노년의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삶의 열정과 끈기의 상징이다. 이정애 대표를 만난 『나라경제』는 그가 삶 속에서 발견한 용기와 열정 그리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주는 기쁨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창업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 당시 나 자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치킨과 만두 체인점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서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이제는 큰 규모로 직원을 여러 명 두는 것은 조금 힘들고, 혼자 4~5평 정도 되는 조그마한 가게를 해보고 싶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딸이 쿠키 가게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내 방식대로 만들어주던 쿠키를 딸 지인들에게도 나눠줬는데 다들 “쿠키 너무 맛있다. 장사해도 되겠다.”라고 했단다. 내 나이 68세 되던 해인 2013년 12월 내 이름을 건 ‘정애쿠키’를 오픈했다. 

작은 가게여도 창업 시 신경 쓸 일이 많았을 텐데.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나 이대 입구 쪽 상가를 알아봤는데 너무 복잡하고 임대료도 비싸서 쉽게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상가로』에서 ‘북촌 한옥마을 4평’ 광고문구를 보고 난생처음 이 동네에 와봤다. 와보니 고즈넉하고 가게도 아담한 게 맘에 쏙 들었다. 사위도 “그 동네면 무조건 들어가세요” 하길래 망설이지 않고 그길로 계약했다. 가게 계약을 하고 나니 집기부터 포장지까지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기계는 황학동 시장, 그릇은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소품은 방산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골랐다. 여기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 다 발품 팔아가며 장만한 것이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화가인 사위 작품이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힘이 된 것 같다. 가족외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노인들이 카페에 손님으로 가도 싫어하는데, 노인이 카페를 하면 누가 오겠냐”며 말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아니다, 나이 들어서 하는 도전이 너무 좋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도 노인이 시작한 거다.”라며 격려해 주는 친구도 있었다. 이미 나는 하겠다는 쪽으로 결심이 섰기 때문에 주변인들의 반응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걱정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참 잘했다고 한다. 다만 이제 건강을 좀 챙기라는 애정 어린 조언을 많이 한다.

가게 운영의 원칙은 무엇인가. 거의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 식구들을 먹인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쿠키는 우리밀 통밀가루에 아몬드, 해바라기씨를 듬뿍 갈아 넣은데다 버터를 사용하지 않아서 건강하다. 고추부각 쿠키는 사돈댁에서 농사지어 보내준 고추부각으로 만든다. 커피는 우리 가게 옆에 카페가 있어서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쿠키에 커피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아메리카노 한 가지만 팔겠다고 이웃 가게에 약속하고 보니 아메리카노 하나 때문에 커피머신을 들이기엔 비용 부담이 크고 가게도 좁아서 핸드드립으로 한다.

SNS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비결이 무엇인가.
정말 예상도 못 했다. 처음부터 큰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고 그저 성당 교무금 낼 정도만 벌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적자 나는 달도 있었다. 집에만 있으면 환자밖에 더 되나 싶어서 계속 하다 보니 지난해 12월이 딱 10년째였다. 지난해 10월경에는 이제 그만할까 싶기도 했고, 또 10년간 값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으니 좀 올릴까 고민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딸이 엄마 가게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고 하더라. 난 SNS 같은 것은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스타그램 보고 왔다, 유튜브 보고 왔다며 이탈리아, 싱가포르, 타이완 등 해외에서까지 손님들이 왔다. ‘그만둔다는 소리 하지 말고 내 몸이 허락할 때까지 하라는 뜻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값을 올려야 하는 타이밍인데 행여라도 유명해지니까 값 올린단 소리 할까 봐 못 올리고 있는 것이다(웃음).


다양한 세대가 찾을 텐데, 기억에 남는 고객은?
오픈하고 그다음 해 연말에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한해를 보내면서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준 사람이 누군가를 쭉 나열해 봤는데 신사동 과일 찹쌀떡 가게 사장님, 홍대 카페 사장님 그리고 내가 3순위 안에 들었다고 하더라. 과일 찹쌀떡을 내게 주면서 “덕분에 1년 동안 참 행복했습니다”라고 했다. 우리 가게 쿠키를 사서 홍대 카페에 전달하러 간다던 참 인상적인 부부다. 요즘도 자주 찾아오고 있다. 한번은 서울대병원에 매년 정기검진을 오는 80대 노부부가 우연히 우리 가게에 들어왔다. “우리같이 나이 든 분이 하시네요”라고 말하더니 1년에 한 번씩은 꼭 와서 “여전히 하고 계시네요”하며 반가워 한다. 우리 가게에 오는 젊은 세대들은 내가 자신들 할머니 같다며 손을 꼭 잡아준다. 세대를 불문하고 내가 일하는 것을 보며 용기를 얻고 간다는 손님이 많다. 그 자체로 참 감사한 일이다.

초고령사회, 노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노인에 대한 시선이 변하기를 기대하기 전에 노인들이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잔소리, 간섭 안 하려 한다.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나이 많다고 으스대고 큰소리치면 안 되고, 나이가 들수록 더 고개를 숙여야 된다. 그래야지 그걸 본 젊은이들이 나이 들어서 본 대로 행동할 것이고, 이런 것이 계속되다 보면 노인들이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옳다고 고집 피우면 사회는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노인 관련 정책의 이해관계자로서 한 말씀 해달라.
다행히도 나와 내 주변의 노인들은 먹고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어렵게 사는 노인이 많아 안타깝다. 빈곤 노인들이 최소한의 의식주 걱정은 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많았으면 한다. 

80년 가까이 살아오며 후배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
나는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는 자세로 살고 있다. 30여 년 전 만성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을 때도 낙심하지 않았다. 모두들 내가 곧 죽을까 봐 병문안 오고 눈물바람이었지만 정작 나는 애들 키우면서 더 씩씩하게 살았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팔이 부러졌을 때도 상심하기보다는 다리 불편한 사람, 팔 불편한 사람이 얼마나 힘들지 깨닫는 시간으로 삼았다. 삶이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각자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긍정적으로, 매시간 충실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정미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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