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출신 알파고 시나씨는 2004년 유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외신 특파원, 방송인, 유튜버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귀화해 한국인이 된 뒤로 나라 걱정에 근심이 늘었다며 ‘프로한국인’ 면모를 보이는 그를 만나 조금은 전형적이지 않은 한국 정착기와 한국 사회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한국으로 유학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4년에 대학 공부를 하려고 왔다. 당시에는 미국 9·11테러 사건 이후라 중동 출신 유학생들이 서양 국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나는 동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나라를 갈까 고민하다가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 대해 알게 됐고, 한국에 유학 오기로 결정했다.
어린 나이에 혼자 한국에 왔는데 적응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튀르키예에서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한국에 왔을 때 16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오면 아직 배우고 습득하는 성장 과정이라 주어진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음식도 첫 주에만 ‘뭐야, 음식 문화가 너무 다르네. 그럼 앞으로 뭘 먹지?’ 했다. 할랄 인증 고기를 구하기 어려워 고기를 못 먹는 게 불편했고, 김치를 먹는 데 좀 오래 걸렸지만 나머지 음식은 빠르게 적응했다. 내가 특수한 사례라 어쩌면 한국에 사는 이주민을 대표해 하는 이 인터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웃음). 뭔가 정착 과정에서 겪은 불편한 경험에 대한 얘기를 기대할 텐데, 어려운 점은 그다지 없었다.
외국인이 한국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솔직히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평소에 뉴스도 안 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가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나 몰랐어” 한다. 대학 시절에도 주변 외국인 친구들이 그렇게 반응하면 나는 그랬다. “너 관심 없었어, 애초부터.” 그래서 나는 외국인들이 이런 말들을 하면 별로 동의하지 못하겠다. 더욱이 요즘엔 온라인에 정보가 많이 올라와 있고 번역기도 잘돼 있다. 외국인들 스스로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정착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인가?
대학원 석사 과정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오래 살 생각은 없었다. 석사 끝나면 미국이나 중국으로 가 박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2010년 여름에 모든 게 달라졌다. 직장이 생긴 것이다. 당시 튀르키예 대통령과 같이 온 기자들의 통역을 맡았는데, 그 후 지한통신(Cihan News Agency, 튀르키예 최대 민영통신사)의 특파원 제안을 받았다. 대학원을 다닐 때 돈이 필요하니까 ‘여기서 벌이가 괜찮으면 박사도 한국에서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기자 생활이 너무 재밌어서 발이 묶였다. 그래서 일단은 여기서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여기저기 취재 다니면서 한국과 한국인에게 정이 들었다. 2012년쯤에는 ‘혹시 튀르키예에 돌아가기 전에 한국에서 죽게 되면 내 무덤을 여기에 둬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8년에 귀화했다.
귀화 스토리를 자세히 들려 달라.
2016년 튀르키예에서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이걸 핑계로 언론사 탄압이 있었고 내가 속한 통신사 포함 130여 개 언론사가 폐쇄됐다. 튀르키예 외교부가 특파원들을 모두 소환하려 시도했다. 한국에는 해당 요청이 오지 않았지만 언제 불려 갈지 몰라 불안했다. 튀르키예에는 갈 수가 없었고 직장도 잃어 여권이 만료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2016년 귀화를 신청했고 2년 뒤 한국인이 됐다.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결혼을 했는데, 한국 청년들의 결혼, 출산 양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유교 전통 때문에 조직화·서열화가 심해서 직장 생활이 꽤 힘들어 보인다. 집단주의적이고,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직장에서 숨을 쉴 수 없어서 거기서 누적된 수많은 이상한 감정을 사적 공간에서 분출한다. 그것 때문에 결혼을 미루게 되고,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개인주의적으로 흘러 결혼을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만 접근하면 결혼은 잘 안 하게 되고 결혼해도 쉽게 이혼한다. 좀 더 개인을 존중하는 직장 문화라면 가족의 영역에서 이처럼 극단적으로 개인주의를 찾지 않을 것 같다.
튀르키예는 어떤가?
튀르키예도 요즘 출산율이 많이 떨어졌다. 예전에는 기본적으로 농구팀(5명) 하나는 만들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하나 아니면 둘이다.
노동 인구 감소에 대응해 이주민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결론적으로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다. 문제의 본질이 그게 아니지 않나. 한국인들이 원래 살아왔던 삶의 패턴이 변해서 인구가 감소하는 건데 그 문제를 이민으로 극복하는 게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이주민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한국에는 이민자 문제를 미화하는 사람도, 악마화하는 사람도 많다. 가령 유럽에서 발생하는 이민자 문제를 두고 “유럽에서는 이민자 문제가 심각해서 이제 난민을 받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 사실 이민자를 너무 빨리,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지만, 그렇다고 유럽에서 이들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금 유럽에서 이민자 문제가 있는 국가들은 1년에 몇만 명씩 받는 곳들이다. 한국은 1년에 난민을 몇 명 받나? 1천 명도 안 된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이민자 문제를 두고 지나치게 미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악마화하면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는데, 정부 담당 부서들이나 연구자들의 대응이 없다. 이 부분은 개선돼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20년 차인데 그동안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한 것 같나?
포용적으로 바뀌었다. 2004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그때 한국에는 외국인 국적을 기준으로 나름의 등급이 있었다. 미국, 영국이 최고고, 다른 유럽 국가, 일본, 중국 그리고 기타 국가 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옛날만큼의 차별은 없다. 또 외국 문화에 배타적인 모습이 있었는데 사라졌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데, 많이 달라졌다. 여러 면에서 한국이 글로벌화됐다고 느낀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유튜브 채널 키우기다.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기자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됐는데, 그러면 이제 역할을 바꿔서 한국 사람들에게 튀르키예, 중동을 알리자고 생각했다.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중동지역에 관한 가짜 뉴스, 편견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