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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기다림을 짓는다
송승훈 잔서완석루 건축주 2013년 07월호

 

82통의 e메일을 900일 동안 주고받으며 한 땀 한 땀 지은 집이 있다. 틈틈이, 조금씩, 천천히 기다림으로 지어진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가 바로 그곳이다. 낡은 책과 다듬지 않은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의 잔서완석루를 건축주 송승훈(광동고 국어교사)은 시멘트로 지은 한옥이라고 소개한다.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었고 공간 구성은 전통 한옥과 닮았기 때문이다.


건축가 이일훈 선생에게 설계를 의뢰해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터를 잡고 지어진 집은 그의 바람처럼 바람이 잘 통하고, 그늘을 품고, 자연빛이 제대로 들어온다. 그곳은 이제 누구에게나 집을 보여주고 개방하고 책 읽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뒹구는 집이 됐다. 각종 교육이나 독서관련 모임이라면 두팔 벌려 환영하고 집을 내주며 자신은 불편하게 살고 있다. 그렇기에 잔서완석루를 말하려면 툇마루 이야기부터 꺼내는 게 마땅하다. 동서남북 네 개의 툇마루는 이러한 집주인의 바람이 모인 결정체다.


“툇마루에서 맞는 바람은 정말 시원해요. 깊은 처마 덕분에 그늘도 충분하고. 요즘은 퇴근하고 툇마루에 누워서 태블릿PC로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때마침 솔솔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건축주의 말에 믿음을 보태준다.

 

툇마루의 위력(?)은 이게 다가 아니다. 밭일을 하다 힘들면 잠시 쉬고, 손님이 찾아오면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무더운 여름엔 시원한 물만 마셔도 더위가 가신다. 빨래도 잘 마른다. 이 툇마루에서 송 선생이 빗소리를 듣는다고 했던가. 툇마루에서 듣는 빗소리는 어떨지 궁금했다.


“보통은 2층 침실에서 잠을 자는데 어제는 비가 내렸잖아요. 남쪽 툇마루에 누워서 빗소리도 듣고 아내와 달밤에 체조도 했죠. 질리지 않는 빗소리에 취해 잠들었죠.”


빗소리에 취하고 시원한 바람에 잠이 드는 곳이다.


“에어컨이 필요 없겠네요?”


“그럼요. 맞창이 나 있어서 바람이 잘 들죠. 아주 시원해요. 창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봐야 바람이 잘 통합니다. 따라오세요. 직접 보여드릴게요.” 이제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맞바람의 위력을 직접 느끼게 해준다. 급기야 이런 제안을 받는다. “누워보세요.”


천장을 바라보며 하는 인터뷰는 난생 처음이다.


“처마가 적당히 빛을 가려주니 또 다른 느낌을 줄 겁니다.”


친구집에 놀러온 것처럼 편히 누워 질문을 던진다.


“지금 누워 있는 ‘길고 좁은 방’은 현관에서 제일 먼 곳에 있는데 불편하지 않나요?”


보통의 집이 거실과 방으로 단순하게 공간이 연결된 데 비해 잔서완석루는 거실을 통해 방으로 가고 또 방을 지나 다른 층으로 가는 등 어느 한 곳을 가기 위해서는 다른 공간을 거쳐야 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선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기보다 오히려 최대화하려 애썼다. 가장 먼 중심에서 탄생한 서재나 공중서가도 마찬가지다.


“만족합니다. 집에서 불편해봐야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몸이 조금 불편해도 마음이 편안한 것이 낫다고 봐요. 물리적인 불편함, 심리적인 편안함이죠. 빠르게 사는 것은 물리적으론 편한데 마음이 편치 않아요.”


느리게 살자는 맥락은 결국 마음이 편안히 살자는 뜻이 아닐까.


“마당에 텃밭을 가꾸면 시멘트를 바르고 생활하는 것보단 불편합니다. 마트에서 채소나 과일을 사는 것보다 느리고요. 그러나 안전하고 기르는 즐거움, 따먹는 기쁨이 대단하죠. 귀찮고 느리지만 재미가 있어요. 조금 더 돌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이 편해집니다.”

 

때로 멈추어 서거나 주저 앉아서 무언인가를 할 마음이 들게 하는 곳, 걷다가 문득 눈에 뜨인 책을 집어들면 멈춰서 책을 볼 수 있는 곳, 바람이 잘 통하고, 처마 그늘이 좋아서 걸터앉아 쉬고 싶은 곳, 느림이 있는, 기다림으로 지어진 잔서완석루다. 


1. <잔서완석루> 대문에 걸린 현판
2. 1층과 2층의 잇는 길을 길게 늘이고 그 벽 양쪽을 책장으로 만든 책의 길
3. 남쪽 툇마루에서 바라본 텃밭. 옥수수, 토마토, 누리대, 곰취, 호박, 콩, 오이, 상추, 고추, 블루베리, 매실, 산사나무, 살구, 자두, 보리수, 앵두, 두릅나무, 복분자 등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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