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대학 입학을 앞둔 10대 오토바이 배달원이 버스에 치여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사고 원인은 버스 운전기사의 신호위반이였다. 사고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지만 이 사고로 제기된 사회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배달 30분제’다. 음식을 주문하면 30분 내로 빠르게 배달해주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에서는 ‘배달 30분제’ 폐지운동을 촉구하였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속도 경쟁의 부작용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하는 안타까운 사고였다.
한 기관에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빠른 생활문화 행동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외국인들이 뽑은 빠른 행동 유형을 몇 가지 소개해보면, 커피자판기에서 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리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동시에 양치질하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 버튼 누르기, 그리고 편의점 등에서 음료수를 미리 마신 뒤에 계산하기 등이 있었다. 외국인들의 답변이 재치 있어 재미있긴 하지만 무심코 하는 이러한 급한 행동이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해 봐야겠다.
물론 빠름의 문화가 역기능만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은 빠른 속도의 결과이며, 그로 인해 물질적인 풍요로운 삶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풍요로운 삶이 가능해졌는데도 사람들은 행복하지가 않다. 욕심이 생겼는지 더 빨리 달리고 싶어 한다.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물질을 소비하기 위해 주변은 둘러보지 않고 급하게 살아가고 있다. ‘사고’는 ‘행동’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어느새 빨리 빨리 사고는 ‘이기적인 나’를 만들었다. ‘이기적인 나’만 만족한다면 자연이 병들어 가는지, 내 이웃이 불편한 것은 없는지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고 있다.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쓴다’라는 의미다. 빠른 생활 속에서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는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조금은 천천히 살아야 한다. 나 혼자만의 빠른 삶은 결국 나에게 부정적 결과로 되돌아오게 된다. 오늘날 빠른 삶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사고들이 말해주듯이 세상에서 행복한 ‘이기적인 나’는 존재할 수 없음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느림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느림은 개인의 자유를 일컫는 가치이다. 느림, 느림이야말로 나를 자유롭게 하고 나를 풍요롭게 하고 나의 경박한 비장주의를 뭉개 뜨릴 수 있는 해방철학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가치 있는 느린 삶을 강조한 꽤 유명한 구절이다.
이제 느린 삶을 통해 자연과 사람 곧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서로의 배려로 관계를 회복해 나가야 할 때다. 우리 주변에는 자연을 생각하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조금은 천천히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불편함을 자청하면서도 마음의 쉼표를 갖고 ‘배려가 있는 느린 삶’을 맘껏 즐기는 사람다운 사람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