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인생이 바쁘고 숨이 찬 것일까? 과거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차를 소유하며 살면서 말이다. 세상은 5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다를 것이 없는데 마음의 여유는 점점 없어지고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이 모든 것이 남과 비교하면서 앞서가려는 마음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인생 주머니를 선택할 때부터 이미 남과 비교를 시작한다. 자기 몸에 맞는 옷을 고르듯이 자기에게 맞는 주머니를 선택하면 될 텐데, 어김없이 남과 같거나 더 큰 것을 고른다. 큰 주머니는 채워지는 날이 거의 없다. 늘 부족하게 마련이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매일 “빨리 빨리”를 재촉하며 살아간다.
‘평생토록 길을 양보하더라도 백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양보의 미덕을 가르치는 말이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남보다 먼저가려고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사람이 있다. 바쁜 일도 없으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주라도 하듯이 과속으로 운전을 한다. 그래봐야 몇 십분 일찍 도착하는 정도다. 모든 것이 빠르고 급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즘 어디서나 이른바 ‘힐링(healing)’ 바람이 거세다. 이런저런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세는 ‘빌 허(虛)’, ‘마음 심(心)’, 허심(虛心), 즉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부터 쉽게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도를 닦은 고승이나, 유학자들도 쉽지 않은 일을 일반인이 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게 더 스트레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가? 억지로 마음을 비우려고 하지 말고, 쉽게 마음을 채우는 연습을 해보는 거다. ‘가득 찰 만(滿)’, ‘넉넉할 족(足)’, 만족(滿足)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 일단 인생 주머니를 조금 줄인다. 그런 다음에 남과 비교하느라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이제는 나 자신에게로 돌려본다.
물론 처음에는 많이 낯설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당당하고 수려할 줄 알았던 모습보다는, 삶의 경쟁에서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초라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흡사 봄이 왔는데도 꽃 한 송이 제대로 피지 않는 황량한 정원을 바라보는 심정일 것이다. 그만큼 자신을 위해 배려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빠름을 재촉하는 시대에 느린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 할지라도 빠르지 않아도 될 때 아니 빠르지 않아야 할 때, 남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간만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았으면 한다.
유대인 랍비 조셉 텔루슈킨(Joseph Telushkin)은 말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대가 식당 종업원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살펴보라. 그것이 나중에 나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가 그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살펴보라.”라고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인생 주머니를 조금 줄이고 스스로를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