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0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은평품앗이공동체를 찾았다. 그곳에서 품앗이공동체와 사랑에 푹 빠진 장형선 공동체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장 운영위원장은 현재 초등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면서 동시에 품앗이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좋아서 개인적인 공간도 사랑방으로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있었다. 은평품앗이공동체는 2011년 5월에 발족했는데 서울시에선 노원구, 양천구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단체가 아닌 개인이 직접 추진한 사례는 은평품앗이공동체가 처음이다. 품앗이는 과거 농업시대에 이웃 간 농사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는 노동교환 형식을 말한다. 빠르고 각박한 도시의 삶에서 품앗이공동체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에게 물어 봤다.
품앗이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추진하는 서울지역 품앗이공동체사업 광고를 접하게 됐다. 평상시 이웃 간에 알 수 없는 장벽을 두고 사는 것이 안타까웠던 저에게는 반가운 광고였다. 해당 기관에 노크를 했지만 개인 자격으로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고 해 동네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아 품앗이공동체를 구성하게 됐다. 요즘 사람들은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으며 시간을 채찍질하면서 빠르게 빠르게만 살아간다. 물론 돈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만들어 그동안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어서 품앗이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공동체는 어떻게 운영되며 이웃들은 어떤 도움을 주고받는지. 공동체에 가입하면 은행통장처럼 ‘품앗이통장’이 주어진다. 회원 간 거래 시 도움을 받으면 준문(-)란에, 도움을 주면 받은문(+)란에 기록한다. ‘문’은 공동체 내의 화폐단위다. 통장에 기록된 잔액을 토대로 이웃 회원들 간 도움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도움형태로는 크게 품과 물품이 있다. 품 도움으로는 돌봄, 학습지도, 지식상담, 수리제작, 가사, 미용, 의료, 도우미(운전, 심부름) 등이 있다. 물품은 사용 가능한 물건을 서로 교환하거나 지역화폐로 구입하면 된다. 품과 물품을 주고받는 도움도 가능하다. 또한 공동체에 회원으로 가입한 상점을 이용하면 결제금액의 10% 정도를 ‘원’이 아닌 지역화폐 ‘문’으로 결제할 수 있다. 공동체에 가입하는 개인과 상점이 많아질수록 이웃 간에 서로 도울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 품앗이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공동체 화폐단위인 ‘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은 품 거래의 척도다. 이웃끼리 현금 거래 없이 품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도입했다. 현금 대신 품이 오고 가면 그만큼 이웃 간에 실질적인 사랑과 정도 함께 오고 간다. 품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누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지역화폐 ‘문’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액수만큼 현금이 필요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돈을 벌기 위한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그 시간을 이웃이나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다.
재능이 없는 사람도 이웃을 도울 수 있나? 이웃들을 만나면서 모든 사람이 한 가지씩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본인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악기 연주, 요리, 집수리하기 등 직업이나 취미생활로 배운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공동체 소모임을 구성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저도 취미로 목공기술을 배웠는데, 관심 있는 회원들에게 재능을 나누고 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에 대해 공동체 회원들은 삶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조금만 시간을 내 이웃을 만나면 그 안에서 자신의 소중함도 알게 될 것이다.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이웃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 회원 중에 외국에서 시집온 다문화 여성이 있는데 한국에 온 후 이웃과 대화가 없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저희 공동체의 문을 두드려서 상담을 하게 됐는데 영어에 재능이 있었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회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영어 소모임을 구성해 다문화 여성에게 강의를 요청했다. 다문화 여성은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됐고, 이웃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돼서 외국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고 했다. 또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대가로 떳떳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더라. 그녀는 무조건적인 도움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웃 간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이웃과 나누면서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나? 이웃 중에는 서로 친해지기를 희망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또는 방법을 몰라서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쁜 도시생활 속에서 이웃과 어울리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당장 자신의 회사 업무시간을 줄이면 수입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빠르게 살아가는 것도 돈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커서 그렇다. 물론 물질만능 사회가 그 원인이기도 하다. 이웃 간에 생겨날 수 있는 불편한 점을 고려해 이웃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사회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이웃과 마음의 벽을 쌓고 살 수는 없다. 벽이 높을수록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더 보람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가 다가올수록 품앗이공동체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도 중요하지만 곁에 있는 이웃이 각자의 삶에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품앗이공동체는 자녀의 사회성을 키워주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웃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의 삶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다. 내 이웃과 웃음을 나누면서 조금은 천천히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