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통영의 미륵산 중턱 즈음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에서 간벌이 진행됐다. 정말 빽빽하게 나무가 심어져 있어 한낮에도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숲. 그곳에서 일부러 나무를 베어낼 것이라는 예고를 접했을 때는 못내 서운했다. 아니나 다를까. 간벌이 끝난 숲을 찾았더니 예전의 그 은밀할 정도의 짙은 편백나무 그림자는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 속살을 보이고 있는 밑동에선 진한 피톤치드 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 항상 걷던 오솔길을 돌고 되돌아 나올 때쯤에야 그리고 숲의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절집에 들어가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고 난 뒤에야 나 역시 내 삶을 스스로 간벌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간벌(間伐). 검색을 해보니 “수풀 내 나무 상호간의 경쟁을 완화시키고, 알맞은 생육공간을 만들어 주며 남아 있는 나무의 지름 생장을 촉진하고, 건전한 수풀로 이끌어 우량한 목재를 생산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설명 중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그리고 시선이 오래 머문 부분은 바로 ‘상호간의 경쟁 완화’였다.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나무들 역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간벌은 그 경쟁을, 다시 말해 생존에 대한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과 생명 사이의 물리적 간격을 넓혀주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간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형질이 좋지 못하거나 목적에 맞지 않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나 그리고 나의 아내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었을까? 일반적인 기준에 비춰 보자면 그렇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경쟁이나 성공에 큰 관심이 없는 ‘이상형질’인지도 몰랐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정도. 식물에게도 필요한 그래서 동물에게는 응당 보장돼야 하며 만약 침해받았을 경우 꽤나 심각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는 상호간의 개인적 공간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는 거대공간이다. 나와 아내는 그런 공간에서 우리 스스로를 간벌했다.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부대끼는 삶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경쟁이 무엇보다 인생을 보람되게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포기 혹은 탈락처럼 보이겠지만, 우리 부부는 서울을 떠남으로써 그리고 남쪽 끝의 작은 도시에 새로운 뿌리를 내림으로써 삶을 달리 보게 됐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걷는 속도가 모두 제각각이라는 걸 발견했다. 한 곳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이라도 사용처가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점심시간부터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 앞을 배를 몰고 나아가고 있었으며 그런 느린 풍경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여유롭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이곳 통영에서 서너 달을 보낸 후에야 깨닫게 됐다. 이곳 사람들의 느긋한(도시 사람들이 보기엔 느슨한) 삶의 속도는 서로 간의 느긋한 물리적 거리에 기인한다는 것을. 물론 이곳에도 아파트도 있고 대형마트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일상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생활의 간격은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여유롭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낯선 이와도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며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겐 계산 없이 다가선다. 서로에게 알맞은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모습들이다. 그리고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내내 모르고 있었을 모습들이다. 어쩌면, 서울 밖에선 모두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지금도 종종 공감하곤 한다. 서울을 떠나왔기에 우리는 사람의 고마움에 대해 알게 됐다고. 그래서 서울은 떠나면 더 좋은 곳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