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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평생 수업자료로 모은 것 공유하니 박물관 됐네요”
신명순 연세대 명예교수 2013년 10월호

 

헤이리 예술마을에 정치ㆍ우표박물관 ‘아고라’를 만든 지 7년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직접 민주정치를 하던 곳의 이름을 딴 ‘아고라’는 민주국가에서 시행되는 정치의 다양한 자료들을 갖고 있다. 미국 유학시절 1976년 대통령선거 때 받은 포드와 카터의 홍보물을 모은 것이 어느덧 국내외 정치자료 2천여점, 우표 8천여장에 이르렀다. 정치학 강의는 교과서 중심으로 강의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라 실제 사용되는 자료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정치자료들을 꾸준히 모았고 자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일반인이나 중고교 학생들에게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박물관을 짓게 된 것이다.

 

1층의 세계정치관에는 희귀한 자료들이 몇 가지 있다.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 플로리다주에서 사용했던 컴퓨터 카드 펀치식 투표기계다. 조지 부시와 앨 고어가 겨뤘던 이 선거는 선거가 끝난 후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당선자가 결정되지 않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이 기계 때문이었다. 또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차고 다니며 위세를 떨치던 홍위병 완장과 포스터,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북한의 김일성 배지도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는 투표용지들도 볼 수 있는데 후보자의 사진이 인쇄된 것, 정당의 로고가 인쇄된 것이 있는가 하면 기표방법도 후보나 정당의 이름을 유권자가 직접 쓰는 나라, O표가 아니라 X표나 ·를 쓰는 나라, 못으로 투표지에 구멍을 뚫는 나라 등 다양하다.

 

2층 한국정치관에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자치선거 때 붙었던 포스터, 투표용지, 선거홍보자료들과 1960년 3.15부정선거 당시 작성했던 3인조, 5인조 장부 등이 있다. 정당 관련 자료들로는 1947년 사용했던 당대표의 인장과 정당이름을 새긴 고무인, 당원신청서, 당원증, 핵심 당원관리 비밀장부, 당사 앞에 붙어있던 정당간판 등이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러한 자료들 대부분이 필자가 구입한 것이고 일부는 박물관을 직접 와본 정치인들이 자신의 자료를 기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자료보존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서 거의 모든 자료들을 쉽게 버린다. 근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과거 물건에 관심을 갖고 수집하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그동안 많은 국민들이 새로운 것만 좋아하고 오래된 것은 버리는 데 열심이다 보니 귀중한 자료들이 소실돼 버렸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자료의 귀중함을 인식하고 필요로 하는 기관에 기증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때가 된 것 같다.

 

7년간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첫째,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문화생활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아고라’의 입장료가 일반인 2천원, 고등학생 이하는 1천원인데 이 입장료를 내고 박물관을 보겠다는 용감한 분들이 극히 적다. ‘경제상황이 나쁘다 보니 어려워서들 그러는구나.’ 하면서도 카페에서는 3, 4천원 내고 커피 마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면 경제사정보다는 입장료 내고 박물관을 구경한다는 인식이 약한 것 같다. 둘째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박물관? 정치인들은 만날 싸움만 하는데 정치에 뭐 볼 게 있다고 입장료 내고 들어가?” 이것이 수많은 이들이 정치박물관을 외면하는 또 다른 큰 이유다. 많은 국민들의 문화인식이 높아지고, 우리 정치도 국민들이 좋아하는 수준이 돼 더 많은 분들이 ‘아고라’의 자료들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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