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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근사한 느림의 움직임
이승범 필의원 원장 2013년 11월호

직장인들은 바쁘다. 야근을 수시로 하고, 여차하면 주말에 나와서도 일해야 한다.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 처리해야 한다. 높은 생산성과 효율을 위한 멀티태스킹 능력, 이것은 도스가 아닌 윈도적 후기산업사회의 미덕이 됐다. 인류는 이런 높은 긴장도 속에서 인간성의 진보를 이룬 것일까?

 

동물행동학이 말하는 동물의 특성은 산만함이다. 풀을 뜯어 먹으면서 포식자가 오는지 경계해야 하고 주변의 동물들과 좋은 먹이를 두고 경쟁하고 배우자를 감시하고 새끼들을 보호해야 한다. 모든 일이 동시적이다.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는 산만함은 야생에서 생존의 필수요건이다. 빌딩 숲속 우리의 처지도 정글 숲속 동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생활이 정글과 같다는 오래된 비유적 표현이 객관적인 표현이 돼버린 요즘, 깊은 사색의 기회가 없이 일련의 반사반응에 대한 예민성이 강화되는 환경은 동물적 환경에 가깝다. 멀티태스킹의 업무환경은 인간의 고유성과 능력이 확장된 형태가 아니다.

 

배고픔에 허기를 채우고 성적 매력에 이끌려 파트너를 구하는 등 삶의 대부분 문제들에서는 동물과 다른 인간의 고유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창조적 과정을 수행하면서 주로 인간성의 방점이 찍힌다. 매우 당연하게도 그런 창조적 과정은 깊은 사색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느림과 심심함의 환경을 필요로 한다. 넓고 얕은 주의집중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는 최악의 환경이다. 마치 출근 시간에 가위 눌려야 하는 시인이 좋은 시를 쓰기는 어렵듯이 말이다.

 

이러한 유해 환경에 맞서 ‘인자한 시장(市場)’은 슬로시티나 템플스테이처럼 ‘느림’을 차별화한 새로운 상품들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인간성 회복과 자기 성찰의 기회인 듯 주장하는 체험프로그램들. 이제 성찰도 입맛에 따라 골라서 소비하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최선은 스스로 계기를 만들어 느림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관성상 쉽지 않다면,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장바깥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시장을 굳이 멀리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성찰 상품의 소비를 통해 자기반성을 기회를 갖는 것이 흉내내기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흉내내기와 진짜(실재)는 생각보다 구분이 상당히 모호하고, 또한 흉내내기인 ‘체험 삶의 현장’식 경험을 통해 진정한 통찰의 기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소로의 「월든」도 1년 남짓 콩코드에서 소박한 대안적 삶을 실험하고 보여주면서 큰 울림을 주지 않았던가.


예술 자체를 하나의 큰 느림의 움직임이라고 보았을 때, 예술을 향유하는 경험 역시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핵심은 그런 느림의 경험을 통한 성찰의 결과가 삶의 전체성과 결합하여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가이다. 섬광 같은 사랑의 순간들이나 정치적 승리의 순간들처럼 회화ㆍ음악ㆍ문학 등을 통한 예술적 경험은 그 이전의 우리와 이후의 우리를 구분지을 만큼의 깊은 울림을 준다.

 

글을 마치면서 근사한 느림을 대표할 얼굴이 하나 떠오른다. 느긋한 태연함과 무심한 진지함의 얼굴. 지난 반세기 중 가장 창조적 성취를 이룬 천재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 고인이 된 그녀의 얼굴은 빔 벤더스의 영화 <피나>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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