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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도둑 맞은 시간, 템포 루바토
정우진 대구가톨릭대 기초교양교육원 전공교수 2013년 11월호

 

음악은 어디에 있는가? 악보 또는 음반에 아니면 연주회장에? 음악은 미술작품처럼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고정된 형태나 시각적인 이미지가 없다. 가사나 어떠한 표제가 없는 경우 음악은 문학처럼 구체적인 스토리도 없다.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음악, 그것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부드러운 음성 사라질 때, 기억 속에서 진동”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소리, 음악은 우리의 기억 속에 ‘살고’ 있다. 음악은 우리의 잃어버린 시간, 지나간 삶을 되살려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또 다시 봄이 오듯 흐르는 시간을 반복하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사건, 엇나간 만남, 위기의 순간 같은 삶의 악센트들을. 우리가 사는 시간은 음악의 시간이 되고 음악은 우리의 삶을 압축한다.


시간을 다루는 예술가인 작곡가는 똑같은 시간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방법을 늘 모색해왔다. 바로 리듬을 통해서 말이다. 두근두근 반복되는 심장 박동 소리처럼 음악은 가장 기본적으로 ‘탁 탁 탁 탁’ 맥박을 기준으로 하여 시간을 헤쳐 나간다. 맥박은 비트로 다양하게 쪼개질 수 있는데, 비트를 몇 개씩 묶느냐에 따라 박자가 결정된다. 비트를 세 개씩 묶으면 삼박자가 된다. 가령 베토벤 말년의 ‘현악사중주곡 No. 13’의 마지막 5악장이 그렇다. 베토벤은 이 악장에 ‘가락이 고운 단순한 노래’를 뜻하는 카바티나(Cavatina)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곡의 빠르기, 즉 템포(tempo)는 ‘아다지오 몰토 에스프레시보(Adagio molto espressive)’다. 마음을 느긋하게 누그러뜨리는 아름다운 가락이 영혼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아닌 게 아니라, 아다지오는 그저 ‘느린 템포’가 아니라 ‘여유롭고 편안하게’라는 뜻도 포함한다. 이렇듯 한 곡의 템포는 긴장, 흥분, 여유 같은 느낌을 좌우한다.


영화 <플래툰>(1876)과 <아멜리에>(2001)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쓰인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1936년에 미국의 작곡가 사무엘 바버가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곡이다. 약 8분가량의 이 느린 비가(悲歌)는 숨이 멎을 듯한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 클라이맥스에서 분출하는 네 개의 화음에 뒤이은 긴 휴지(休止). 이 곡의 정점은 이 침묵이 아닐까. 침묵은 그저 음악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을 가능케 하는 근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다지오보다 훨씬 더 느린 ‘렌토’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게’(Lento ma non troppo) 연주하는 쇼팽의 ‘마주르카 Op. 17의 No. 4’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세 박자의 곡은 남다른 느낌을 준다. 바로 ‘도둑맞은 시간’을 뜻하는 ‘템포 루바토(tempo rubato)’로 연주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를 채운 오른손의 15개 음은 나올 때마다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약간 빨라진 다음 서서히 느려지는 리듬의 자유를 허락받는다(악보 참조). 한 마디나 패시지의 음으로부터 ‘빼앗은’ 시간을 또 다른 음한테 주는 것, 그것이 바로 템포 루바토이다. 그것은 얼추 ‘애드리브(ad libitum)’와 견줄 수 있지만, 쇼팽의 전매특허로 거론될 때면 표현을 강조하고 유연성을 도입하여 기계적인 연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템포 루바토는 리듬의 움직임을 더욱 미묘하게 돋보이도록 하며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나른함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경직성을 탄력성으로, 불변성을 가변성으로 변모시키는 템포 루바토, 과연 그것은 제3의 정서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악센트라 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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