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스님> 20대 중반 불교에 입문한 일감스님은 해인사 성철스님의 문하로 들어간 뒤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선방에서 수행하기를 몇 년, 이후 멕시코로 건너가 보리사 반야선원 주지를 지냈다. 해인사 포교국장을 거쳐 금산사 템플스테이 수련원장을 지내면서 템플스테이 운영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표창(2009년)을 받았다. 현재는 조계종 기획실장으로 있으며 주말이면 전북 완주의 작은 암자로 향한다.
그랬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스님을 만나면 준비된 다기로 손수 차를 내려주시고, 선방의 문을 활짝 열면 문틀을 화폭 삼아 그림 같은 자연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스님은 서울시 한복판 조계종 사무실에 계셨다. ‘비움’에 대한 우리의 오해, 이를테면 도시를 떠나야 비워진다는 편견과 무조건 내려놓아야 편해진다는 강박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졌다.
대중이 왜 종교인에게 열광하는지, ‘스님의 주례사’와 ‘토크콘서트’가 왜 인기인지 스님과의 대화 끝에 조금은 이해가 됐다. 스님은 오랜 스승처럼 우문(愚問)에도 선답(禪答)을 내놓으셨다. 종교인에게서 풍기는 자애로움과 대중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는 공감력, 거기에 자연인으로서 갖는 고민과 소탈한 모습이 더해졌다. 바빠서 차를 직접 내려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모습엔 정감이 어렸다.
‘비움’을 화두로 인터뷰를 진행해놓고는 올해 연중기획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은 욕심 앞에 괴로워했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비움을 곱씹다 보니 욕심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곤 스님의 말씀을 날 것 그대로 옮기는 데 집중했다.
어떻게 승려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요. 애인이 도망을 가서 그랬다든지 하는 근사한 출가동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진 않고요(웃음).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는 걸 잘 못했어요. 경쟁이 어렵다 보니 경쟁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고 저절로 불교를 알게 됐어요. 불교는 무엇을 만들고 쌓아나가고 획득하는 게 아니고 버리는 것이더라고요. 이건 내 성품과 맞아요. 그래서 택했지요. 그랬는데 불교 안에서도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웃음).
‘일감’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혹시 하나의 감동(一感) 아닌가요?(웃음) 그런 해석도 좋은데요! 한자로 날 일(日), 거울 감(鑑)이예요. 늘 거울을 보면서 자기 모습을 살펴보듯이 부처님을 거울이라고 여기고 자신을 성찰해 세상에 더 많은 빛을 내라는 뜻인데,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템플스테이를 기획, 진행하시면서 인기도 많으셨는데요. 처음엔 사찰에서 참선하고 수행하고 검소하게 지내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점차 ‘힐링’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구가 커졌어요. 거기에 맞게 ‘깨어 있는 휴식’, ‘도란도란 템플스테이’, ‘내비둬 콘서트’ 등을 기획했고요. 가장 인기 있는 건 내비둬 콘서트였어요. 직장인들은 날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찰에 오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음악도 틀어 줄 테니 와서 쉬어라 하고 만든 것이 금산사의 내비둬 콘서트였어요. 2박 3일 일정 중 마지막 날 저녁에는 토크콘서트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죠. 지금도 매월 넷째 주엔 금산사로 가요.
템플스테이에서 스님과의 차담 시간을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어떤 고민이 많던가요? 스님이 해주신 조언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젊은이들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미래가 보장되는 건지, 아니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많이 물어요. 그건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만족은 어디에도 없어요. 자기가 만족의 요소를 찾지 않는 한. 그걸 찾아낸 사람은 뭐든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일이 즐겁지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본인도 괴롭고 집중하지 못하니 티가 나고요. 그러면 저는 그럽니다. “네가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너의 인생이다. 지금 일하는 현장에서 갖는 몸과 마음의 상태, 그게 바로 네 인생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것을 귀하게 여겨라. 네 기준에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너의 삶의 총체적 결과라는 걸 인정해라.” 하고요. 그러면 일에 집중하게 되고 일이 즐거워지고, 일을 귀하게 여기게 되니 결과도 좋아지죠. 나머지 고민들도 이와 비슷해요.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현실로 돌아가면 또 잘 안 되고 그러겠지요. 그러면 다시 템플스테이 와서 비우고 채워가고 그래요.
스님, 우문입니다만 비움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무언가를 채우려고 욕망하면서도 왜 비우려 하는 걸까요? 거꾸로 한번 물어볼게요. 기자님은 왜 비우려고 하지요?
(사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겠지요? 그렇지요. 다들 사는 게 힘들어서 내려놓고 비우려 하지요. 흔히들 ‘마음 비워라.’ 그러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요. 직장에 미운 사람이 있어서 그 미운 마음 때문에 내가 힘들어져 그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고 해봅시다. 그럴 땐 그 동료를 다시 바라보는 겁니다. 나를 혼내고 지적하는 건 아직 애정이 조금이라도 있는 거고 내가 일을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건 고마운 마음이죠. 미움을 열 번 생각한 만큼 고마움을 열 번 생각하면 그 마음이 똑같아져서 나중에는 괜찮구나 싶어질 거예요.
저만 해도 북적한 도시를 떠나서 살고 자연에 들어가고 그래야 비워질 것 같거든요. 스님도 요즘 서울에서 바쁘게 지내시는데 일상에서 비움의 방법으로 추천해주실 만한 것이 있으신지요? 도시 안에서 비움의 공간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직장인들 점심시간 있잖아요? 코스 먹으면 비싸고 오래 걸리니까 간단하게 국밥 한 그릇 뚝딱 먹고 5천원짜리 커피 대신 천원짜리 커피 한 잔 뽑아서 근처 조용한 곳을 찾아봅시다. 다른 데 방해받지 말고 10분을 앉아 있더라도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그 시간 동안 내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거죠.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은 그 순간에도 불만을 갖고 부족한 것을 찾고, 그래서 불행해지죠. 이 감사함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면서 주위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 주변 세상도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거기에도 감사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10분도 짧을 걸요?
수행하시면서 중요하게 잡고 있던 화두(話頭)가 있는지요? 금강경에 보면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한 바가 없다는 뜻이죠. 이미 자기 마음속에 정해 놓은 기준이 있으면, 세상 모든 일이 그 기준에 맞아야 좋고 안 맞으면 기분 나쁜 게 되요. 저 사람이 약속을 지킬 수도 있고 어길 수도 있고 나에게 친절할 수도, 나를 화나게 할 수도 있어요. 하나로 정해진 것은 어디에도 없고 조건에 따라 변하기 나름입니다. 이걸 늘 마음에 갖고 있어야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어렵지 않게 받아 넘길 수 있어요. 그래야 행복합니다.
저희가 일년 동안 붙들고 있었던 주제가 느림인데요.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느리게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요? 높은 자리에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현재 위치에서 자기만의 만족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행복임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요. 무조건 만족하고 적당히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자신의 만족을 더 키우고 싶다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부지런해져야죠. 대신 그로 인한 무게는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행복을 키우기 위한 희생이나 투자가 더 필요한 거죠. ‘희생보다는 지금의 만족함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이대로 살면 되고 발전하고 싶다면 더 고생하면 됩니다. 모두가 고생해야 되고 모두가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지금의 분위기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