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국회에서 전기자동차(이하 전기차)시장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가 있었다. ‘글로벌 전기차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내 전기차 정책은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부는 언제까지 국내 자동차제작사를 바라만 볼 것인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전기차보급이 가장 성공적이라 평가받는 노르웨이의 정책과 비교하면 버스전용차선 진입 등 일부를 제외하고 국내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전기차 정책은 뭔가 더디고, 2%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입할 때 디자인이나 정비서비스도 고려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가격이다. 그리고 가격은 경쟁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노르웨이는 글로벌 OEM(자동차제작사)이 없기 때문에 해외 OEM 간 경쟁을 유도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여지가 많다. 반면 한국과 같이 OEM이 있는 나라는 전기차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막대한 자금이 투자된 엔진차 조립라인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고 고용불안, 세수감소 등 경제ㆍ사회적 문제도 야기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국내 전기차시장의 틈새를 잠식하기 위해 혈안이다. 그렇다면 전기차 보급확산을 위한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런 맥락에서 해외의 주요 정책사례를 통해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독일은 ‘e-Mobility 국가계획’을 세우고 충전인프라 확충 및 차량성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을 위한 플랫폼(NPE; National Platform Elektromobi)을 조직하고 정책당국자, 민간기업, R&D 기관, 관련 협회, 소비자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NPE는 부처 간 전기차 정책 조율은 물론 갈등관리도 하는 ‘조정자 역할’을 맡고 있다. 전기차 보급확대는 물론 석유자원의 해외 의존도 축소 등 에너지ㆍ환경 정책목표의 실현 등 융복합 정책을 추진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기차 보급을 위해 보조금에 의존하기보다는 충전인프라 구축 및 차량성능 향상 등 보다 지속 가능한 정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최근 디젤차 게이트로 얼룩진 자국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향후 전기차 보급확대에 더욱 전력할 전망이다.
프랑스 역시 유럽 내 자동차강국으로 전기차 경쟁력도 비교우위에 있다. 친환경차보급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제도로는 전기차공유사업(AutoLib)과 탄소비례부담금제도(Bonus-Malus)가 있다. 단순히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면 주차난과 혼잡난이 야기되는데, 카셰어링으로 이 문제를 해소했다. 또한 국내에서 시도하려던 ‘저탄소협력금제도’의 원형인 탄소비례부담금제도는 재정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친환경차 보급확대에 큰 효과를 거둔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은 우리처럼 글로벌 기업(자동차, 배터리, ICT)은 없지만 강력한 정책시행으로 전기차 보급을 획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사례로 전국 주요 도시마다 일반적 예상을 뛰어넘는 보급목표를 세우고 과감하게 추진 중이다. 이런 정책으로 중국 내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전기차 원가를 낮출 수 있어 판매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전기차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 글로벌시장에서 낮게 평가받던 중국산 전기차의 품질도 크게 향상돼 전통적인 자동차 선진국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 전기차 관련 글로벌 기업을 보유하고도 전기차시장에서 선두주자로 선뜻 나서질 못하고 있다. 대외적으론 전기차에 집중한다고 홍보하면서도 엔진차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많은 기업은 정부가 골든타임을 놓칠까 염려하면서 어제의 ‘후발주자’였던 중국을 오히려 부러워하는 상황이다. 이젠 경쟁국을 관망하는 시기는 지났다. 현재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자동차 포트폴리오 구조에 집착하다간 미래 시장을 놓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적자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하고 과감히 실천해야 할 마지막 시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