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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투명성 높인 조선왕조 기록문화 전통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6년 09월호

조선왕조는 1392년 개국 이래 1910년 일제에 강제 병합될 때까지 519년간 존속한 왕조였다. 동시대 동양, 서양의 다른 왕조와 비교해봐도 조선왕조의 장수는 이례적이다. 조선왕조의 장수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록문화의 전통을 확립한 것도 중요했다.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13건 중 조선왕조에서 생산된 기록물은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 「의궤(儀軌)」,「동의보감」, 「일성록」, 「난중일기」, 유교 책판 등 총 8건이나 된다. 보유 건수로 세계 4위이며, 아시아에서는 당당히 1위다. 조선왕조의 기록물은 정치에서의 공개성과 투명성을 유도함으로써 왕부터 모범적으로 정치행위를 할 수 있게 했다. 이 중에서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조선왕조 「의궤」는 건국초부터 작성하기 시작해 왕조의 멸망 때까지 단절됨 없이 쓴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왕조 내내 선대에 마련한 기록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사망한 후에 전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생전에 사관들이 쓴 사초(史草)와 관청의 업무일지 등을 모아 중요한 내용을 실록으로 남긴 것이다.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 25대 472년간의 기록이 모두 남아 있는 것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실록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상까지 망라해 조선시대판 타임캡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기록물이기도 하다. 「승정원일기」는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쓴 기록으로 1623년부터 1910년까지 288년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왕의 언행과 동선을 비롯해 신하들과의 구체적인 대화, 왕의 건강과 기분까지 기록해 당시의 역사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는 세밀한 기록이다. ‘의궤’는 의식의 궤범(軌範)을 뜻하는 말로 조선시대 국가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이것을 기록과 함께 필요한 경우 그림을 첨부한 기록물이다. 혼례식, 장례식, 왕실 잔치, 활쏘기 행사 등 당시의 현장모습을 생동감 있게 입체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기록물은 기록도 중요하지만 보관하는 시스템 확보도 중요하다. 조선왕조는 사고(史庫)를 여러 곳에 배치하고, 정기적인 포쇄(曝 ; 책을 바람과 햇볕에 말림.) 작업 등 보관 후의 관리에도 만전을 기함으로써, 기록물이 시기별로 단절되지 않고 전해올 수 있게 했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지방의 중심지 대신에 태백산, 오대산, 정족산, 적상산 등 산간지역에 사고를 설치하고 인근의 사찰이 관리하게 했다. 산간사고에 보관된 실록이나 의궤가 거의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에는 분산 보관과 철저한 관리 점검이 큰 몫을 했다. 의궤의 경우에도 행사가 끝나면 보통 5부에서 9부를 제작했기 때문에 외규장각에 보관됐던 의궤는 프랑스군에게 방화되고 약탈당하는 수난을 겪었지만 대부분의 의궤는 보존될 수 있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의궤」는 서로 다른 특징과 개성을 지니면서 조선시대 역사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록물은 조선왕조의 문화수준과 더불어 정치적인 투명성이 매우 높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기록물의 내용을 철저히 분석해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켜 주는 문화콘텐츠로의 활용 가능성도 계속 타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제 선조들이 남겨준 뛰어난 기록유산을 계승해 우리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기록물 편찬과 보존의 전통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선조들이 남겨준 치열한 기록유산의 전통을 단절됨 없이 계승해 그 지혜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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