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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삭제가 증거인멸? 해외 소송 시 e-Discovery 모르면 낭패
장완규 용인송담대 법률실무과 교수 2016년 09월호

우리는 디지털 아카이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기업법무는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최근 미국에서 소송을 벌이는 한국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한국의 변호사들도 e-Discovery(전자증거개시제도)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3년 전 우리나라에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미국의 모 디지털 증거검색 전문기업의 최고 운영책임자가 전자증거개시제도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전자증거개시제도는 기존 종이문서 중심이었던 증거개시절차에서 전자적으로 저장된 정보(ESI; 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까지 증거개시의 대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늘날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세계화 전략에 따라 세계 곳곳에 진출해 사업을 영위하면서 해외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의 해외진출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기업과의 법적분쟁에 휘말려 미국, 영국, 유럽 등지에서 소송까지 가는 사례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소송에 임하는 국내 기업들은 전자증거개시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컨대 소송에 대비해 보존해야 할 이메일이나 데이터, 관련 자료들을 삭제하거나 파기한다든지, 혹은 기업의 영업비밀이나 기술자료 등을 부주의하게 상대방에게 노출해 소송 외적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는 국내 소송절차에 없는 증거개시절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800억원대의 배상금 합의로 분쟁이 마무리된 코오롱과 듀폰의 사례에서 소송 증거자료로 요청한 이메일과 관련 자료 등을 코오롱이 폐기했다가 소송에 대비한 자료보전조치를 소홀히 한 점이 인정돼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낭패를 보기도 했다. 또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삼성·애플 간의 특허분쟁 소송에서도 삼성 측의 이메일 시스템이 정기적으로 자동 삭제된 것이 고의삭제(증거보존의 실패)로 간주돼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하이닉스와 램버스 간 소송에선 하이닉스는 램버스의 특허출원 당시 오고 간 이메일과 보고서 등 관련 서류들을 모두 제출해줄 것을 요구했고, 램버스 측의 불리한 증거에 대한 삭제 및 파기를 이유로 하이닉스가 승소했다.


이와 같이 미국 등 해외에서 벌어지는 법적 분쟁에서는 소송 대비자료보전조치(Litigation Hold)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것이 본안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 또한 소송당사자가 얼마나 성실히 증거개시절차에 임했고 또 증거를 제출하려고 노력했는가에 따라 소송의 승패가 좌우된다. 따라서 전자증거개시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조치는 평소 방대한 양의 전자정보를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보관리시스템으로 유지 및 관리하는 것과 사건관련성 있는 ESI에 대한 보존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앞으로 기업은 디지털 아카이브시대를 맞이해 전자정보개시제도에 대한 대응계획을 반드시 마련해 둬야 한다. 소송과 관련성이 명백하지 않은 방대한 양의 전자정보를 매일매일 관리하고 보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이 법적 분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선 기업 내 문서 및 정보처리방침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ESI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빠른 시대적 변화 속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나라에도 증거개시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사실심 충실화 사법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해 이른바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라고 할 수 있는 ‘소 제기 전 증거조사제도’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입법화까지 이뤄지지는 못했으나 최근 언론에서 대법원은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 입법 재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어 앞으로 전자증거개시제도는 소송에서 일반적인 절차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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