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제불황 속에서 경제·사회적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동시에 세계 각국이 국가 생존 차원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 바이오 및 오프라인 기술을 융합한 제4차 산업혁명의 경쟁에서 앞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은 복지확대, 부자증세, 일자리창출 같은 직접적인 방법보다 소통과 협력을 통한 신뢰사회 구축,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한 사회적 책임기업모델 구축 같은 근원적 방안모색과 시설 및 연구개발 투자확대,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창의성, 감성 등 인간 본연의 존엄성 유지 같은 문화적·창조적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지는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모든 업무를 정당하고 투명하게 처리할 때만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업무 정당성과 투명성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기록과 정보를 생산하고 보관할 수 있을 때 보장받을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고 기존의 생각이나 모방을 뛰어넘는 창조적 능력을 가진 조직이 되려면 남보다 많은 고급지식과 정보를 조직 내부에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사업수행과정에서 겪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과 지식은 나만의 고유한 창조적 정보가 된다. 학교에서 배우거나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는 이런 창조적 정보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생산된 회사의 내부문서에 기록돼 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기록정보를 잘 축적하고 경영하는 것이 창조적 조직이 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거리가 먼 듯한 두 해결책을 관통하는 핵심단어는 기록정보다. 업무수행 과정을 기록한 문서는 그 본질상 객관적 증거인 동시에 정보가 되며, 기록경영은 이런 기록정보를 다루는 전문지식과 기법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21세기 현재 디지털기록정보를 제외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디지털기록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종이기록과 달리 0과 1이란 비트(bit)로 구성돼 있어 기계에 의존해 볼 수밖에 없다. 또한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 발전하는 IT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때맞춰 지속적으로 형식 변환, 마이그레이션(migration; 한 운영체제에서 발전한 다른 운영체제로 옮기는 과정), 에뮬레이션(emulation; 특정 시스템용으로 쓰인 프로그램이 다른 시스템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호환성을 갖게 함.) 등의 조치를 취해야 기록의 신뢰성과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기록만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기에 1998년 국제표준화기구(ISO)는 TC46/SC11 기록위원회를 구성하고, 2001년 최초의 국제기록표준인 ISO 15489-1의 발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8개의 표준을 제정했다. 우리나라는 이들 대부분을 국가표준으로 채택했으나 기업이나 산업계에서 실제로 적용하는 사례는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와 기업은 종이문서시대의 규정과 절차를 그대로 둔 채 전자문서관리시스템만 도입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오해로 국제표준을 충족하는 기록경영체계를 수립하지 못하고 혼란 속에서 기록 활용과 지식 창조에 실패하고 있다.
해결책은 자명하다. 기업은 경영진부터 인식을 새롭게 해 전사적·종합적 기록경영체계를 수립하고 적용해 기록정보의 활용역량을 키워야 하며 정부는 법과 제도를 통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국제적 모범에 따른 기록경영체계의 수립에는 2012년 발행된 국제표준 ‘ISO 30301 기록경영시스템’ 시리즈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표준은 디지털기록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영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정보로 활용할 수 있는 기록경영체계 수립에 대한 요건을 제시하고 있어 조직의 비전과 목적성취에도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