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는 바둑천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이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번 대국으로 인간 최고수와의 기보까지 탑재하게 된 알파고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우리 앞에 재등장할지 기대되고 있다. 사실 알파고의 능력은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해 이를 토대로 한 딥러닝 기술로 만들어진다. 즉 축적의 산물이다. 축적은 다른 말로 ‘아카이브(archive)’다. 아카이브는 수집하고 모아서 저장·보존하는 정보개체 또는 그 저장소를 의미한다. 인터넷 포털기업인 네이버와 구글은 디지털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아카이빙 역량이 기업의 핵심가치가 돼야 할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인류의 새로운 역사는 늘 기록매체의 혁신으로부터 시작됐다. 기록매체가 돌에서 파피루스로, 다시 종이로 변화하면서 인간의 지식축적과 활용능력이 발전했고 이를 통해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산업혁명이 가능했다. 이제 머지않아 디지털과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시대가 열린다. 해 아래 새것은 없듯이 인간의 창조는 결국 지나온 경험을 토대로 이뤄진다.
또 다른 면에서도 축적은 중요하다. 요즘 같이 협업이 보편화돼 이해관계가 복잡해진 사회구조 속에서는 자신이 이행한 영역의 정당성 확보 여부는 개인과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수 있다. 모든 사건, 사고의 주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설명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정당성은 자신이 결정하고 이행한 과정을 투명하게 남겨서 언제든 근거로 제시될 수 있을 때 확보된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반복되는 인재(人災)는 불투명한 의사결정과정과 모호한 책임소재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다행히도 오늘날 디지털 환경은 우리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투명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아카이브는 더 이상 종이시대처럼 생산자들이 주는 대로 받아 보관하는 수동적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인공지능시대의 아카이브는 미래의 재창조자원과 조직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경험자원이 종합적으로 축적되는 곳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아카이브는 모든 생산과정에 대한 기록화를 유도하고, 효율적인 축적체계를 구축하며, 자신의 미션에 부합한 정보보호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앞으로 디지털 아카이브가 풀어야 할 과제는 그리 만만치 않다. 특히 디지털의 편의성 이면에는 기록의 장기보존과 정보보호문제가 있다. 이는 국내외를 초월한 공통의 고민이다.
때마침 9월 5일부터 10일까지 전 세계 아카이브 전문가들이 서울에 모여 2016 세계기록총회를 연다. 세계 약 190여개국의 국가기록원 원장과 전문가들이 모여 급속하게 변화하는 IT와 디지털 기록의 효율적인 축적과 보존 그리고 디지털 기록의 증거력 확보와 정보보호전략 등에 대해 각국의 정책과 경험을 공유한다. 구글과 네이버의 기조 발표는 국내외 인터넷 포털 대표기업들의 디지털 아카이빙 정책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될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계에 대해서는 기존의 경험자원 축적의 문제점과 향후 발전방향이 제시된다. 특히 이번에는 총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만큼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전통 기록보존에서부터 전자기록까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주제 발표가 준비돼 있고, 관련 분야 산업전시회, 기록전시회가 동시에 열린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기록관리 발전의 대전환기가 되고, 각 분야에서 축적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