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가 올해의 인물을 퍼스널컴퓨터(PC)로 선정했던 1982년의 이듬해 봄, 대학생이던 김현 소장은 PC로는 타자기로 칠 수 없었던 한자를 타이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후 디지털 네트워크의 지식 전달·생산 가능성을 깨달은 그는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 달려가 컴퓨터 연구를 시작했다. 융·복합으로 창조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시대, 김현 소장의 디지털인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인문학’은 생소한 이름이다. 디지털과 인문학이 어떻게 연결되나?
데이터를 갖고 디지털환경에서 인문학을 하자는 것이다. 인문학은 공자나 소크라테스시대의 담론을 똑같은 방법으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연구방법과 형식을 만들어왔다. 강의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박물관,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인터넷’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삶 자체를 디지털에 의존하고 있는데 삶의 의미를 찾는 인문학만 디지털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디지털세계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인문학이 제시해줘야 한다.
ICT가 인문학에 적용된 대표적 사례가 궁금하다. 미 하버드대와 중국 북경대가 ‘Chinese Biographical DB’라고 중국인물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이름과 성별, 가족관계와 학력, 주량 등을 기술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고대에서부터 중세와 근대까지 누가 학술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후원했고 문집의 발문을 써줬고 상소에서 언급을 몇 번 했고 하는 식으로 500가지 정도의 관계를 모두 연결한 레퍼런스까지 나아갔다. 중국의 인적관계를 모두 네트워크로 만들어서 학문의 흐름과 정치적 견해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하고, 지역정보와 결부시켜 지역의 시간적 동향을 볼 수 있게 한 것인데 워낙 자료가 방대해서 디지털기술이 없었다면 상상조차 못 했을 영역이다.
「조선왕조실록」 디지털화 이후 <별에서 온 그대> 같은 히트작이 나와도 디지털인문학이 아직까지 일반인의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 듯하다.
사람들이 ‘인문학’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지만 일반인들은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인문학을 향유한다. 유적지에 가서 거기가 어떤 유적이고 역사적 인과관계는 어떻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인문학적 논의고 상당한 고급지식이다. 더구나 SNS로 공유까지 한다. 인문학의 황금기다. 인문학의 위기는 사실 인문학자의 위기고, 인문학자들의 먹고사는 문제다. 학자들이 디지털인문학을 만든 게 아니라 인문학이 이미 디지털세계로 갔기 때문에 학자들이 따라가는 것이다.
인문학 연구자에게도 기술적인 소양이 필수가 될 것 같다.
자료가 전산화가 돼야 그걸 분석하고 확산시키는 디지털인문학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 연구자가 전산화를 시킬 필요는 없지만 기술자와 함께 일할 줄도 알고 전산화된 자료를 읽고 다룰 줄도 알아야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운로드받아 거기에 자신의 연구 성과를 더해 간다. 공유와 소통이 키워드다. 디지털환경에서의 접근방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지식생산이 너무 열려 있으면 오류가 많아지지 않을까?
교육으로 해소될 수 있는 우려 아닐까. 소수의 훈련된 사람들만 지식을 생산할 때는 그들이 지식의 무오류를 책임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몇십년 전의 연구를 보면 오류가 숱하다. 현실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인터넷에서의 불확실한 얘기도 토론하고 서로 검증하며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지점을 찾아나가면 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월드와이드웹(www)을 개발한 버너스 리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지능형 웹, 시맨틱웹의 지향점이 트러스트(trust)다. 곧 신뢰인데, 온라인시대처럼 권위자의 통제로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접근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서 정보를 비교·분석해 어떤 것이 내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걸 목표로 한다.
인문학 연구자가 기술적 소양을 갖추는 데 필요한 지원정책이 있을까?
체계적이고 과정 중심적인 육성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미국은 2008년부터 대학 전역에서 디지털인문학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덮어놓고 논문을 쓰라고 요구하지 않고 랩을 설치하고 하드웨어를 배우는 데서부터 지원을 해줬다. 그 다음에는 디지털인문학자들이 전산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프로그램설계를 할 수 있도록 여름마다 공유프로그램 세미나를 했다. 또 그 후에는 그보다 발전된 프로젝트를 만드는 식이었다. 특징적인 것은 이 모든 연구지원프로그램이 교수나 기성 인문학자가 아니라 청년학자에게 집중됐다는 점이다.
한국이 디지털 기록문화 분야에서는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사용률이나 무선인터넷 사용률이 최고 수준이어서 그럴 거다. 정보업무가 디지털환경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한 전자정보화율도 정부자료 접근율도 무척 좋다. 하지만 그러한 자료들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의미를 갖게 문맥화되는 일들, 즉 디지털인문학적인 활용이 돼 있느냐 하면, 아주 취약하다. 접근성은 높지만 활용률이 없다. 그냥 저장만 돼 있는 거다.
다른 나라에서 참고할 점이 있다면?
외국의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유물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도표, 설명을 보면서 감동받는다. 큐레이션이 잘돼 있는 거다. 기록학도 그냥 기록을 갖다가 쟁여놓기만 하는 거라면 보존기술이지 학문이겠나. 아카이빙을 하고 그 문맥 속에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이해하게 하는 데 인문학의 생명이 있는 거다. 기록문화 선진국은 디지털화율은 우리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대상을 문맥화·체계화한 경험이 있다. 우리는 고등학교에서부터 이과와 문과를 나눠놓고 서로 대화를 안 시킨다. 이런 부분들이 문맥화의 경험부족을 불러온다. 심각한 문제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디지털인문학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영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디지털화 당시 자문을 해줬었다. 그 분들은 최고의 편집자가 엄선된 정보를 편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그런 숭고한 정신이 이 시대엔 맞지 않는다. 기존 인문학에서 학문적 권위는 학문적 방법론과 주제를 정하고 거기 가장 충실하게 따르며 경쟁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 경쟁의 주된 지향점인 엄밀성을 추구하다보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지엽적인 문제를 아주 깊이 가다 보니 일반인에겐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은 학자들이 좁게 연구해도 네트워크 안에서 유관한 것들이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숲이 된다. 연구도 개별연구가 공동의 성과가 되도록 지향해야 하는 개방형 지식공유의 시대다. 최근 기록학자들은 기존 기록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디지털세계에서 새롭게 의미를 갖게 되면서 아카이브가 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뿐 아니라 나의 여행담, 내 가족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디지털은 무의미한 창고일 수 있었던 개인의 자료더미에 서사와 의미를 부여하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해줬다. 학자의 큐레이터화, 큐레이터의 학자화를 이뤄 지식의 관문으로서 학문을 확장시켜 나가자는 것이 디지털인문학의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