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알파고 충격’은 산업·고용·서비스·삶 전반에 사회적 변화를 예고했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 중반 인터넷과 IT혁명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미 기술혁명이 시작되고 있음은 회자됐지만 이러한 기술이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과 기대 그리고 불안도 교차하는 시기였다.
뒤돌아보면 IT혁명의 결과는 상당했다. 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을 헤매고, 문서를 보내려 팩스 앞에 서 있고, 카탈로그를 보며 신상품을 파악하는 일은 불과 10년 만에 추억이 돼버렸다. 도서관 사서도, 팩스로 문서를 정리하는 행정원도, 카탈로그를 프린트하는 제본업체도 이제는 희귀 직업·산업군이 돼 버린 것이다.
1990년대 IT혁명에 이어 인공지능(AI)의 혁신은 또 다른 차원의 변혁을 예고한다. 바로 전문가 직종의 위협이다. 인간 퀴즈쇼 챔피언을 이긴 IBM의 인공지능 머신 ‘왓슨(Watson)’은 이미 해외 유수 병원에서 진단전문 인공지능 컴퓨터로 응용돼 상용화 단계에 와 있다. 이미 폐암을 진단하는 능력은 일반 영상의학과 의사의 수준에 이르렀단 평가를 받는다. 이외 왓슨은 세금·회계서비스, 금융·자산서비스 영역과 법률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구글의 ‘딥 마인드’도 비슷한 영역에서 응용서비스 개발을 진행하고 여기에 교육서비스 영역을 추가해 개발 중에 있다.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인식돼 온 영역이 인공지능에 역습을 당한 것이다.
사실 컴퓨터가 사람의 기억력과 연산능력을 넘어선 지는 이미 수십년 전이다. 사람의 암산보다 디지털 계산기가 훨씬 빠르게 계산하고 사람의 노동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로봇의 생산성이 높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컴퓨터와 로봇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지시한 특정 업무만 가능했지 그 외의 일을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반복적인 단순 업무에서는 사람의 능력을 능가했지만 사람이 지닌 인식능력과 ‘감’으로 이야기되는 직관력을 로봇으로 구현하는 것은 한계였다. 이로 인해 단순 노동력은 기계로 대체됐지만 경험과 직관, 복합적인 통찰력이 중요한 영역은 전문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가 이제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인간의 직관을 모사하고 인간보다 더 뛰어난 논리연산을 가진 지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지능의 탄생이 어떤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에 대한 명확한 방향과 답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1990년대 IT혁명과 같은 변혁의 쓰나미가 오는 것만은 확실하다.
1990년대 IT혁명에서 우리는 빠른 인터넷과 인터넷 보급률이란 기술적 이슈에 집중했다. 이 부분에서는 나름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성공이 진정한 성공일까? 당시 변혁의 물결을 타고 탄생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초거대기업이 기술로만 탄생된 것은 아니었다. 구글은 ‘최고경제학자(Chief Economic Officer)’란 직함을 만들어 ‘할 바리언(Hal Varian)’이란 학자를 기업 성장 초기부터 최고 임원으로 영입해 심도 있는 경제 패러다임을 고민했다. 페이스북은 기업성장이 시작될 무렵 공유란 철학의 개념을 정립했다. 또 아마존은 사물과 인터넷의 결합이란 당시 매우 생소한 개념을 초기에 설정했다. 이처럼 IT혁명으로 인한 정보의 공유, 이로 인한 공유경제 개념, 정보의 유통과 사물의 유통을 접목하는 새로운 차원의 물류혁신, 그리고 달라진 산업 패러다임에 대한 정부의 정체성 확립 등이 조화를 이뤘을 때 IT혁명의 큰 과실을 획득할 수 있었다.
1990년대 한때 ‘IT와 인터넷 전문가’란 칭호가 있었다. 당시 그 칭호의 주인공은 인터넷 네트워크 전문가에만 국한돼 있어 철학자·경영자, 행정가·정치가는 늘 기술영역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혁의 쓰나미는 파괴적이고 기존의 모든 것을 바꿀 정도로 혁명적이라 변혁의 촉매제가 되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기술뿐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논하는 철학자,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정치가와 행정가가 필요하다. 아울러 인공지능 공학자들이 타 영역의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아고라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