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이례적으로 ‘불평등’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만 해도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꺼내며 성장 이슈에 방점을 찍었지만 저성장 고착화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 신정부의 보호무역주의·민족주의 광풍이 불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WEF는 「2017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서 10년간 세계를 위협할 요소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꼽았다.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은 실업으로 분석했다. 실제 2년 연속 수출이 하락하고 성장률이 2%대로 고꾸라졌던 지난해 국내 실업자는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넘어섰다. WEF는 이 위기의 해법을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에서 찾았다.
포용적 성장은 불평등 완화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의미한다. 포용적 성장을 먼저 주목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 주체인 모든 국민들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기회를 공평하게 갖고, 성장을 통한 경제적 혜택이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공정한 규칙에 따라 분배되는 것을 포용적 성장이라고 규정했다. OECD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사회 양극화를 줄이는 동시에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포용적 성장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삶의 질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중국보다 3배 많았지만 삶의 질은 61개국 중 47위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45위)보다 낮았다.
2000년대 초 거론되기 시작한 포용적 성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논의가 본격화됐다.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그 과실이 저소득층 등 전 계층에 골고루 나눠지는 ‘낙수 효과’가 일어나야 하는데 생산성과 1인당 GDP가 늘어났음에도 실상은 상위 계층에만 부가 집중되고 서민과 중산층은 소득이 늘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 재무장관 출신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에드 볼스 전 영국 노동당 예비내각 재무장관이 공동의장을 맡았던 포용적 번영위원회는 ‘포용적 번영’ 성장론을 주창하며 이 부분을 지적했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WEF에 맞춰 발표한 「99%를 위한 경제」 보고서에서는 부의 불평등이 해마다 심해져 지난해 세계 최상위 부자 8명이 전 세계 인구 절반인 36억명의 재산(약 500조원)과 같은 부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소득 분배로는 꼴찌다. 하지만 제 밥벌이를 해야 할 나이가 된 청년들의 실업률은 지난해 9.8%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소득 양극화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 소비 위축, 출산율 악화 등으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혁신이 가속되고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포용적 성장을 처음 언급한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국가의 성패는 포용적 경제제도에서 갈린다고 봤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포용적 성장론을 내세웠다. 그해 중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포용적 성장이 정상선언문으로 채택됐고 올 6월에는 OECD 도시 내 포용적 성장 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이제 포용 없이 성장할 수 없고, 성장 없이 포용할 수도 없음을 인식하는 시대가 됐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 터널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선 기회의 형평성을 높여 경제성장의 성과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성장과 분배 정책을 정교하게 선순환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경제성장의 핵심인 혁신을 통해 탄생한 제품을 구매해줄 수요 계층이 넓게 존재해야 결국 경제성장도 지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