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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 시작할 때···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강화하자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 그린스쿨 교수 2017년 03월호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은 현세대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CO2나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는 일단 배출되면 대기 중에 머무는 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이다. 후세대에 가서 온실가스를 감축한다고 해도 시기적으로는 이미 늦게 된다. 이미 과학계는 2040년대에 접어들면 겨울에 여름 기온을 보이는, 소위 ‘기후이탈’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소비를 줄여야 하며,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에 투자가 이뤄져야 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동안 우리는 값싼 화석연료에 중독돼 있었으며, 어려운 방법보다는 쉬운 방법(low-hanging fruit)을 택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시도하기 위한 유인책이 필요한데, 그 대표적인 유인수단으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들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르는 환경비용이 배출권가격의 형태로 화석연료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우리의 화석연료 중독을 부분적으로 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비용을 내부화한다는 기후변화의 경제학 원리를 적용한 정책이다. 흡연에 따르는 사회적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담뱃세를 부과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2005년 유럽에서 본격 시행됐으며, 20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그동안 미국의 주요 주와 호주·뉴질랜드, 최근에는 중국도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는 등 그 규모가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행국마다 내부적으로 정치적·경제적으로 부침을 겪으면서 순탄한 과정만을 밟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는 성장통이며 배출권거래제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앞에서 담뱃세 비유를 들었는데, 과연 담뱃세 증대가 흡연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반론을 피할 수 없었듯이 배출권거래제를 둘러싼 논란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배출권가격이 너무 높으면 시장이 과열됐다고 비판하며, 배출권가격이 너무 낮으면 배출권시장이 죽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배출권거래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종종 비약되기도 한다.


우리는 주식시장이 과열 또는 냉각됐다고 해서 그 거래시장을 아예 철폐하는 극단적인 정책은 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환경과 후생을 위한 배출권거래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가벼운 관점을 취하기 일쑤다. 배출권가격이 과도하게 높거나 낮게 형성되면 제도의 재설계를 통해 시정해나가야 할 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배출권가격은 탄소비용이 고정된 탄소세와는 달리, 경기변동에 따라 가격 등락이 허용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배출권가격 변동의 상당 부분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요즘 들어 더 우려스러운 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기후변화 정책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배출권거래제 역시 유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후변화 정책보다 우리가 결코 앞서 나갈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기후변화 이슈는 국제사회가 주목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굴곡을 보이긴 했지만 눈에 두드러지게 후퇴한 시기는 한 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 내의 배출권거래제는 연방 정부 차원과는 별도로 주요 주에서 강력한 형태로 오래전부터 시행돼오고 있으며, 주 정부에서 집행하는 신재생에너지 투자 역시 연방 정부에서 개입할 수 있는 폭이 크지 않다. 또한 최근의 인공지능과 전기차 등 신기술의 개발은 궁극적으로 저탄소 에너지 기술과 연관 있으며, 그러한 기술진보의 흐름 역시 우리가 거스를 수 없다.


기후변화 이슈와 신기술 경쟁 추세를 무시하고 미국 연방 정부 정책만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의 온실가스 감축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을 축소하고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화석연료 재편노력을 게을리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갓 태동한 우리나라의 배출권거래제가 저탄소 에너지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탄소비용을 시장에 반영하는 제도를 인내하고 강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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