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텐션! 어텐션! 당신이 헝가리 국경에 있는 것을 경고합니다.” 세르비아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 남부의 뢰스케와 아소탈롬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같은 방송이 흘러나온다. 10여km에 걸친 길고 높다란 철조망 울타리, 동작감지 센서와 열감지 카메라까지. 마치 비무장지대를 떠올리게 한다. 난민유입방지 장벽이다. 방송은 인적이 감지되면 자동 재생된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변명조차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 영어뿐 아니라 아랍어, 페르시아 어까지, 이른바 ‘라우드스피커(loudspeaker)’로 불리는 이 장비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관문 헝가리의 반난민 정책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다. 여기에 헝가리는 최근 무려 173km 길이의 난민 장벽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반난민 노선이 가장 강경한 나라가 바로 헝가리다. 야노시 아데르 대통령이 지난 3월 서명한 새 법은 난민이 망명을 신청하면 승인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국경지대 컨테이너에 억류하도록 하고 있고, 단속 경찰에게는 난민 강제추방 권한도 부여해 국제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반난민 정서는 유럽 전역에서 확인된다. 독일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지난해만 하루 평균 10건 가까운 난민 수용소 공격 사건이 발생해 난민 대상의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직후인 지난해 7월부터 석 달간 1만4천여건의 증오범죄가 발생했고, 프랑스에서는 2015년 무슬림을 노린 증오범죄가 전년 대비 200% 이상 급증했다. 사실상 무슬림과 난민을 동일시하는 발상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테러에 대한 공포로 읽힌다. ‘우리는 난민이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는 난민들의 외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테러 피해가 너무나 끔찍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또 있다. 무슬림이 절대 다수인 난민 수가 늘어날 경우 유럽의 전통적 사회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경제적으로는 일자리 감소 등에 대한 불안감도 팽배해지고 있다. 소득 규모가 중위층 이하로 내려갈수록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건 선거다. 포퓰리즘 성향을 보이는 유럽 각국의 정당들이 반난민 정서를 선거전략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다. 3월 총선을 실시한 네덜란드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PVV) 대표, 4~5월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의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 여기에 대통령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놓고 유럽과 대립이 격화하자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난민송환협약 재검토 카드를 다시 꺼내든 터키 등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반난민 정서에 대한 반발과 자성의 기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집에서 난민과 함께 생활하며 정착을 돕는 이른바 ‘난민맞이’ 가정이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에만 8천여가정이 난민맞이를 신청했다. 난민맞이 가정 중에는 세계대전이나 내전 등의 시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의 후손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과 약자에 대한 ‘연대’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농부가, 스웨덴에서는 방송기자가 난민의 입국을 도와줬다 사법처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들이 의인인지, 죄인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 밖에도 유럽 다문화 정책의 실패다, 난민·이민자들과 섞여 오늘을 만든 유럽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난민 노동력을 정체된 유럽경제를 일으킬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들려온다.
지난해 유럽에 온 난민 수는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라는 말이 엄살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몰려드는 난민 앞에 요새화가 최선인지, 새로운 가치 통합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유럽은 지금 그야말로 난민 딜레마에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