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총선은 서유럽에서 불고 있는 극우 세력의 향방을 가늠할 시험지로 불렸다. 지난 3월 15일, 일단 그 바람은 네덜란드에서 멈춘 듯 보인다. 거침없이 내달리던 극우 ‘자유당’은 원내 제1당이 되는 데 실패했다.
진정 바람은 멈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돌풍으로 번지지 않았다고 잠잠해졌다 할 수 없다. 네덜란드 총선은 전체 150개 의석을 놓고 무려 28개 정당이 경합을 벌이는 구도다. 때문에 자유당이 얻은 20석은 ‘돌풍’은 아니더라도 ‘강풍’ 수준은 된다.
이런 이유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서유럽 극우 바람의 진정한 시험무대는 오는 4월 23일부터 치러질 프랑스 대선 투표가 될 거라 주장했다. 바람은 다시 불 것으로 보인다.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가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가 투표에서 패한다 해도 서유럽의 극우 바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체 왜 선진국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결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많은 연구가 ‘세계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로 인한 국가 간, 계층 간 불평등의 심화가 극우 세력을 부활시키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부터 프레카리아트(precariat)를 양산해내고 있다. 즉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처해있는 노동자 집단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불안정한 직업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배제돼있다. 서구의 실질임금은 수십 년 동안 정체돼왔으며 노동 유연성은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수백만명 이상이 ‘안정성’이란 보호막을 잃었다.
시장 주도 경쟁과 신자유주의를 철학으로 하는 ‘세계화’의 영향이다. 이제 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프레카리아트는 새로운 괴물을 탄생시키고 있다. 낙오한 실패자라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이들은 극단적 포퓰리스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들은 현실이 아닌 과거에 집착한다. 따라서 과거의 영광을 강조하는 극우 국가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의 투표권과 돈을 밀어준다. 신파시스트 포퓰리즘은 이들의 ‘공포’를 이용해 세계 곳곳에서 득세를 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극우 바람이 거셀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EU)은 고상한 ‘꿈’이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렵다. EU는 이질적인 문화와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의 연합이다. 서로 다른 주체가 연합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욱이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는 곳에서 진정한 연합은 불가능하다. 승자는 독일이다. 패자는 나머지 유럽국이다. 승자독식에 대한 불만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EU의 국가 간 격차 심화가 분열을 낳고 있다. 게다가 이런 국민들의 불만을 이용해 자신들의 세를 넓히려는 극우 정치인들이 발호하고 있다. EU는 분열의 씨앗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마린 르펜이 당선된다 해도 프랑스가 EU를 탈퇴하는 ‘프렉시트’는 현실화되기 어려울 거라 한다. 맞다. 르펜이 이끌고 있는 국민전선의 하원 의석은 577석 중 2석에 불과하다. 르펜이 당선돼도 프렉시트를 실제로 추진하기엔 불가능한 의석이다. 총선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을 얻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프랑스 헌법엔 ‘공화국은 EU의 일부’라고 명시돼 있다. 프렉시트는 헌법까지 개정해야 하는 지난한 길이다.
하나, 이로써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극우 바람의 근본 원인은 계층 간 불평등, 국가 간 불균형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유럽의 극우 바람은 나날이 그 강도를 키워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