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_2017년 3월 17일 오전 10시 곳_서울역 스마트워크센터 참석자_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좌장 겸)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
김흥종_브렉시트 충격 이후 2017년 유럽연합(EU) 주요 회원국들의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늘 토론에서는 EU 포퓰리즘의 확산 배경과 영향, 그리고 이 흐름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 논의해보자. 먼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네덜란드 총선 결과가 나왔는데, 극우당인 자유당이 의석을 5석 늘리는 데 그쳤다. 현황에 대해 한번 짚어보자.
채인택_네덜란드는 17세기부터 개방과 관용을 통해 통상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왔고 사회도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나라에서 이슬람 모스크 폐쇄, 국경 폐쇄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이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획득한 것 자체가 독특하다. 1인당 GDP가 유럽에서 거의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갑자기 국민들이 왜 이렇게 분노했을까? 먼저 기존 정당이나 사회체제가 ‘내 이익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 같다. 그리고 EU 확대 과정에서 지나치게 비용도 많이 들고 비효율이 생기다 보니 이를 일부 포퓰리스트들이 걸고 넘어졌고, 여기에 기득권 세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네덜란드는 개방, 관용, 전통의 나라인데 여기에서도 이러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싶다.
김흥종_네덜란드의 특수성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니 프랑스나 독일에서도 과연 중도파의 승리가 이어질 수 있을지 조금은 더 비관적으로 보게 되는 측면이 있다.
전혜원_채 위원님이 재미있는 단어 세 개를 언급했다. 개방, 관용, 전통. 그런데 제가 보기엔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은 지금 이 세 가지를 한 묶음으로 보지 않는다. 대립된 것으로 본다. 개방과 관용이 자유주의·범세계주의를 말한다면, 전통은 포퓰리스트들이 얘기하는 ‘우리(us)’, 소위 사회주도세력이다. 1980년대, 1990년대 들어 개방과 관용이 규범(norm)처럼 된 서구사회에서 소외된 계층, 특히 노년층이 문화적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포퓰리즘이 발생했다고 본다. 유로존 위기 등 유럽 통합에 틈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문제 제기에 대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됐고, 포퓰리즘 정당들이 이러한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전통주의다. 유럽 포퓰리즘 정당들은 ‘우리의 영광스러웠던 과거로 회귀하자’고 한다. 우리 전통을 EU, 이민자, 세계화(globalization)가 망치고 있다는 것이 맞아떨어졌다. 네덜란드에서 포퓰리즘은 프랑스에서 발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류 세력이 개방과 관용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감으로 더 발호하기 쉬웠다고 생각한다.
채인택_미디어의 발달도 관계가 있다. 네덜란드 자유당의 빌더르스 대표는 처음부터 “모로코인 쓰레기를 치우겠다”는 등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 노이즈 마케팅은 흔히 ‘사이다’로 불리며 SNS를 통해 파급된다. 예전 같으면 주류 언론에서 이성적이지 않은 것, 증오를 촉구하는 것은 다 걸러지는데 지금은 누구나 미디어를 만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퍼트릴 수 있다. 흔히 영광스러운 옛날이라는 구호 때문에 노인들이 극우정당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빌더르스에 대한 지지율을 보면 60대에서 가장 낮고 20대에서 높았다.
김흥종_유럽 정치인들을 만나 보면 파티 데모크라시(party democracy·정당정치)가 끝난 것 같다고 얘기한다. 정당정치는 유럽 민주주의를 구현해온 안정적 기반이었는데, 이것이 미디어 데모크라시(media democracy)로 바뀌었다. 어떤 이념이나 정책, 지향하는 바보다는 개인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됐다. 올해 유럽에 선거가 굉장히 많이 있는데 포퓰리즘 정당의 집권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그들의 공약이 얼마나 기존 정당에 흡수될 수 있을지 살펴보자.
전혜원_독일은 지금도 기독교민주동맹(기민당)과 사회민주당(사민당) 연립정부이기 때문에 결국 이번 선거에서 사민당이 기민당보다 표를 더 많이 얻을지, 메르켈이 집권을 계속할지의 문제인 것 같다. 독일 대안당이 표를 얻어봤자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본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게 프랑스인데 프랑스는 5월 대선이 끝나고 6월에 총선이 있다. 대선이 ‘반체제(anti-establishment) vs 이민자 vs 새로운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된다면, 총선은 국민전선이 이민자에 관한 통제를 얼마나 더 내세울 것이냐에 따라서 향후 경제정책 방향까지도 정해질 수 있다고 본다. 프랑스는 경제개혁이 상당히 중요한데도 올랑드 대통령이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제개혁에서 프랑스가 해야 될 것이 크게 보면 복지, 산업, 노동 관련 문제다. 마린 르펜이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이런 문제들은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했던 사람들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 실업급여를 잘못 건드리면 젊은 층을 자극할 것이고, 연금개혁을 잘못했다가는 노년층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채인택_프랑스는 지금 2차 선거에서 충분히 좌우 합작으로 극우, 르펜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이 된 당시는 그게 가능했다. 1차에서 20%였던 것이 2차에서 80% 이상 득표했다. 행동하는 좌파·우파가 극우는 막아보자는 의식적 행동을 한 결과였다. 문제는 지금은 좌우의 대결이라기보다 ‘엘리트 vs 민중’의 싸움이라는 거다. 극우가 2차 투표에서 당락에까지 영향은 안 미치더라도 굉장히 큰 세력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해본다.
김흥종_유럽 정당정치의 이러한 변화는 결국 대외관계에까지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상하게 포퓰리즘 정당들은 왜 푸틴하고 사이가 좋은지 궁금하다. 그리고 포퓰리즘 정당의 부상이 유럽의 대미·대러시아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전혜원_이념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고 봐야 될 것 같다. 전통에 대한 향수, 국수주의 측면에서 러시아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편 유럽 포퓰리즘 정당 입장에서 트럼프의 공격적인 언사가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포퓰리즘 정당이 유럽에서 성공을 거뒀던 이유는 바로 멀쩡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옷도 멀쩡하게 입고, 말도 멀쩡하게 하고, 굉장히 부드러운 이미지를 구축했기 때문인데 어떤 면에서 트럼프는 이와는 완전히 반대의 전략으로 갔다.
김흥종_그럼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는 오래갈 수 있을까. 새로운 흐름으로 대세가 될지 아니면 기존 정당이 이를 진화할지 짚어보자.
채인택_서구사회가 역사적 교훈도 있고 사회적 탄력성이 있어 이러한 쏠림현상을 복원하는 힘이 내재돼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유럽 통합 과정에 숨어있던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대한 반발이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이게 내셔널리즘(nationalism)으로 가면 유럽 통합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고 다시 이전의 갈등 상황으로 간다는 얘기다. 유럽인은 그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불만’이라는 묘한 상태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복원성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지만, 기존 질서와 규범에 대한 수정이라든지 대대적인 수리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전혜원_포퓰리즘 배경에 지난 5, 6년간 경제적으로 안 좋았던 것이 작용한 것은 확실하다. 특히 젊은 세대의 높은 실업률이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기 때문에 경제가 좋아지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젊은 세대는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노년층은 가치관의 문제라 입장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복지국가 모델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주류 정당끼리는 복지나 국가 거시경제 문제에선 어느 정도 중도(centric)로 간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좌파 정당이 우파 정당에 비해 특별히 어필할 수 있는 복지혜택을 줄 기회조차 없어졌다.
김흥종_재미있는 것이 요즘 언급되는 기본소득이 유럽에선 좌파의 어젠다가 아닐 수 있다는 거다. 유럽같이 복지체계가 잘 구축돼있는 국가에서는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복잡한 복지시스템은 좀 줄이고 여기에 공무원 수도 줄여 작은 정부로 가자는 식으로 논의가 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이 기본소득이 우파의 어젠다가 될 수 있는 복잡한 양상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좌파가 고유하게 내세울 수 있는 어젠다가 무엇일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혹자는 이렇게도 얘기한다. 1980년대까지는 소련이 있어서 체제 경쟁을 하다 보니 정당들이 국민들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1980년, 1990년대에 세계화되면서 정당들이 대적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나태하고 무관심했던 것 아니냐는 반성도 있는 것 같다고. 그럼 앞으로 포퓰리즘이 EU체제엔 어떤 영향을 주고 EU는 어떻게 대응할까.
전혜원_포퓰리즘 정당은 ‘우리’와 ‘그들’의 문제다. 여기서 EU는 ‘그들’이다. 결국 EU의 과제는 ‘그들’이 아닌 ‘우리’로 갈 수 있느냐다. 지금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EU가 ‘우리’로 인식되기 어렵다면, EU가 갈 길은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좀 더 강력하게 ‘EU가 바로 우리다, 당신들에게는’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과연 EU가 거기서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가 문제라고 본다.
김흥종_4대 이동(노동·자본·상품·서비스)의 자유가 EU의 근간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조정하면서 타협해 나갈지가 문제다. 지금 EU는 굉장히 강경하더라. 4대 이동만큼은 절대로 손댈 수 없다고 얘기하는데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유럽에서 시작되는 이런 새로운 흐름이 결국엔 전 세계적으로 또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데, 유럽 포퓰리즘 정당의 발호가 대외정책 면에서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
채인택_앞서 언급했던 현대 미디어정치로 돌아가 보면, 네덜란드는 이번 선거에서 28개 정당이 나왔다. 우리나라 정치도 SNS를 통한 대중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져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정당 자체가 조직화라기보다도 네트워크 정당 같은 형태를 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는 좌우를 떠나 그냥 작은 그룹이 하나의 제한된 어젠다를 가지고 정당을 꾸리고 선거를 치르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한국에 글로벌 포퓰리즘 시대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보지만, 그 영향이 최종적인 결과로 나오기까지는 시간과 단계와 화학반응이 더 필요할 것이다.
김흥종_우리나라도 극우 정당이나 극좌 정당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SNS를 보면 정말 놀라운 얘기가 많이 있더라. 또 요즘 일자리 문제 등으로 20~30대 젊은 층이 느끼는 것들이 어떤 식으로 해소되고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 걱정도 되고 주목도 된다. 그런데 포퓰리즘 정당들이 내놓는 공약을 보면 어필하는 게 있더라. 결국 기존 정당들이 이러한 부분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닌지, 그래서 새로운 반성의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